산사 마당에 말이 잠시 멈췄다. 그날의 질문은 너무 날카로워 누구도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판사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연다. 판사: 법정에선 중립이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그런데 신은 중립을 넘어서—우리의 편이라 말합니다. 하지만 어떤 전쟁이나 재판에서도 모두가 ‘신은 우리 편이다’라고 주장하죠. 그래서 저는, 신은 ‘편’이라기보다… '사람을 놓치지 않는 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신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잇는다. 신부: 신은 약자의 편에 서십니다. 가난한 자, 슬퍼하는 자, 버려진 자— 예수님이 가장 자주 만난 사람들이었지요. 하지만 동시에 신은, 힘 있는 자에게도 돌아오라 하셨습니다. 신은 편을 고르지 않고, 사람을 다시 불러들이는 분이라고 믿습니다.
목사는 조용히 성경을 내려놓는다. 목사: 우리가 ‘신은 누구 편인가’라고 묻는 순간, 사실은 우리 안에 경계가 생긴 겁니다. 하나님은 그 경계를 없애시고 싶어 하세요. 그래서 저도 설교할 때 ‘신이 우리 편이신 게 아니라, 우리가 신의 편이어야 한다’고 말하곤 합니다.
스님이 침묵 끝에 입을 연다. 스님: 부처는 편을 갖지 않습니다. 중생 모두에게 향할 뿐입니다. 편을 가지는 순간—자비가 갈라지지요. 자비는 흐르는 물 같아야 하니, 편을 들기보다 머물러주는 쪽을 선택합니다.
심리학자가 메모를 정리하며 말한다. 심리학자: 사람들은 고난 중에 ‘신은 왜 내 편이 아니지?’라고 느낍니다. 그건 외로움의 표현입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애착의 상실’이죠. 신이 실제로 편을 들었는지보다, 내가 신에게 배제되었다는 감각이 더 아픕니다.
철학자가 잔잔히 말을 잇는다. 철학자: 저는 편이라는 단어가 이미 철학적으로 파편적이라 생각합니다. 신이 존재한다면— 그분은 관찰자보단 감싸는 자여야 하니까요. 그래서 편보다는, ‘함께 있음’이라는 말이 더 가까워요.
정치인이 천천히 말을 꺼낸다. 정치인: 저는 국민 전체의 편이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실제론 어느 순간 누구의 목소리를 더 듣는지로 갈라지죠. 신도 그렇게 들릴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신이 침묵했다고 느끼고, 누군가는 응답받았다고 느끼죠. 아마도 신은 편을 드는 게 아니라— ‘누구도 포기하지 않는 방식’을 선택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맨 구석에 앉아 있던 화석학자가 눈을 들며 조용히 입을 연다. 화석학자: 지층을 보면, 어느 생명은 오래 살고 어느 생명은 갑자기 사라집니다. 신이 어느 쪽의 편이셨는지—화석은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느 생명도 의미 없이 사라지진 않았어요. 그 흔적이 남아 누군가를 움직이니까요. 신은 편을 드시는 게 아니라, 흔적을 남기게 하시는 분 같아요. 누가 누구 편이었는지는 결국, 시간이 말해줍니다. 그날, 말은 천천히 멈췄고 아무도 신의 편을 증명하지 못했지만, 모두가—자신이 신에게 잊히진 않았다는 걸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