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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영 Feb 11. 2024

햇살을 좋아하는 내가 태양이 떠오르는 곳으로 갔다

고성에서 보낸 시간의 단편


처음 속초에 가던 길, 차에 생활짐을 한가득 싣고 200km가 넘는 거리를 덜컹거리며 달려갔어요. 짐 틈 사이에 몸을 욱여넣고 혹시라도 멀미가 날까 봐 다급히 잠을 청했던 기억이 나요. 동진리조트오피스텔, 그곳에 도착했어요. 첫인상은 어느 웹툰에 나오는 이상한 등장인물이 많이 나오는 오피스텔 같았어요. 1992년에 세워진 이곳은 오픈 초기에는 속초에서 꽤나 유력한 사람이 머물렀겠다는 인상을 줬어요. 긴 복도식 오피스텔에 여러 사무실 현판이 붙어 있곤 했거든요. 지금은 단기간 속초에 머무는 이들이 거주하는 경유지와 같은 공간이 되었지만요. 우리 오피스텔의 경비아저씨는 양푼의 밥을 드시곤 했는데, 그 밥 양이 어찌나 많던지 제 하루 식사 양을 한 끼 식사로 드시는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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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에서 맞이한 첫날 쓴 일기예요.

햇살을 좋아하던 내가 이번에는 태양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동해로 오게 됐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이곳에서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받게 되다니, 아침마다 떠오른 태양빛에 눈이 부실 생각에 두근거림을 감출 수 없다. 하지만 막상 혼자 살려니 두려움이 든다. 내가 설계한 환경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야 하는 시간 앞에 막막함도 든다. 매일 친구들과 함께 살던 생활에서 나 홀로 머무는 집으로, 내 소리가 아니라면 어떤 소리도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나는 무엇을 경험하고 만나게 될까. 사랑을 경험해야겠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필요한 물건을 하나 둘 들여놓고, 나를 아끼는 마음으로 이 공간을 가꾸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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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진리조트오피스텔에서 일터까지 편도 10km. 처음에는 어떻게 출퇴근을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어요. 버스가 자주 오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출근 첫날 일찌감치 숙소 앞 버스 정류장에 나갔죠. 한참을 기다려도 고성으로 향하는 버스는 오지 않았어요. 8시 40분, 지금이라도 택시를 타지 않으면 첫 출근에 늦을 수 있겠다는 조급함이 들었어요. 택시를 타고 장사항을 지나, '여기부터 금강산입니다'라는 표지판을 지나 봉포와 천진, 아야진을 지나 교암리에 다달았어요. 나의 목적지, 나의 일터가 있는 곳. 택시를 타고 가는 길에 본 강원도 고성의 길은 서울과 온통 달랐어요. 바다와 산, 논과 들판이 펼쳐져 있었지요. 앞으로 이곳에서 생활하게 되겠구나, 신기함을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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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에서 속초로 향하는 버스가 하루 다섯 대라는 이야기를 듣고 '이러면 일을 할 수가 없겠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고성에서 속초를 나가는 시내버스는 20분에 한 대씩 자주 있어요. 하지만 그 사실을 몰랐던 저는 출퇴근용 자전거를 사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죠. 고성 출근 세번째 날, 속초 시내에 위치한 전기 자전거 소매점을 찾아갔어요. 

'아저씨 저, 전기 자전거를 구매하러 왔는데요'

'무슨 용도로 타실 건가요?'

'출퇴근하는데 필요해서요. 속초에서 고성까지 왔다 갔다 할 거예요'


강원도에 사는 로컬 분과 처음 나눈 대화였어요. 자전거 사장님도 원래는 서울 동대문구에 사셨다고 했어요. 어쩌다 양양에 땅을 조금 사게 됐는데 서울에서 왔다 갔다 하며 양양 땅을 돌보기에는 시간이 많이 들어서 몇 해 전부터 속초에 내려와 살기 시작했고. 지금은 생활을 위해 자전거 소매점과 운동화 빨래방을 겸해서 하고 계셨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저씨가 전기 자전거를 모두 조립해 주셨어요. 검은색 매끈한 전기 자전거, 장본 짐을 싣을 수 있는 앞바구니와 오랜 시간 달려도 멈추지 않을 강력한 배터리가 장착되어 있는 자전거였어요. 자전거 사장님에게 넋두리를 좀 피워서, 휴대폰 거치대와 물병 거치대를 서비스로 받았어요. 이후, 전기 자전거는 제 넓은 발이 되어 주었지요. 한겨울이 오기 전까지 여름과 가을, 자전거를 타고 온 동네를 넘나 들며, 이 거리 저 거리를 누비었어요. 자전거를 타면 가지 못하는 길이 없었고, 덕분에 제 생활의 반경은 자연으로 더 깊이깊이 확장될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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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구매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 핸드폰 배터리가 다 되어서 네비게이션을 사용할 수 없게 됐어요. 낯선 도시에서 숙소까지 향하는 초행길을 느낌에 의지해 찾아가야 했지요. 이 위로 올라가면 어느 아파트가 나오겠지? 그 아파트에서 왼쪽으로 꺾어서 내려오면 버스 터미널이 나오고, 버스터미널 아래로 더 가면 숙소가 나올 거야. 기억을 더듬어 가며 집에 도착해 핸드폰을 충전하자마자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왔어요.

'아니 아가씨 여기 자전거 집이에요. 돈을 덜 냈어. 80만 원을 받아야 하는데 8만 원을 받았지 뭐야'

'네에!? 왜 덜 받으셨어요?? 제가 어떻게 돈을 드리면 될까요?'

'나도 퇴근길이니까 아가씨 집 쪽으로 갈게요. 카드 결제 가능하죠?'

'네 그럼요, 여기는 동진리조트 오피스텔이에요'


막상 전화를 끊고 나니 모르는 사람에게 집 위치를 알려 준 것 같아 불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하지만 80만 원짜리 전기 자전거를 8만 원 주고 사 오는 파렴치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사장님이 오실 때까지 1층에 내려가 기다렸죠. '운동화 빨래방 80만 원' 카드 결제를 마치고 나서야 안심이 되었어요.

이제 자전거 비용도 모두 지불했고, 속초에 내려와 첫 소유물을 갖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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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산 자전거의 이름을 붙여 보았습니다.

이름은 포터, 성은 서

서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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