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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영 Mar 26. 2024

나그네방, 대체 그게 뭐야?

나그네방이 궁금하신가요? 

오늘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 더 이상 나에 대한 질문을 멈추자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끝없이 '왜'에 대한 질문을 하다가는 가슴이 터져 버릴 것만 같았어요.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무언가를 해야만 저 질문을 멈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발걸음을 옮기며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 해보았어요. 그리고 새로운 질문이 아닌, 이미 오래전부터 나를 찾아왔으나 내가 답하지 못한 질문들에 대답을 적어 보자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제 사서함에 들어와 있는 질문이란 무엇이 있을까요. 우선 그 질문부터 정리해 봅시다. 

첫 번째, 나그네방에 관한 것. 사람들은 여전히 나그네방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하영 님 그게 뭐예요?라고 묻습니다. 네, 물어봐주시니 저도 설명을 해야겠지요. 물어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부터 설명을 시작해 볼게요. 너무 갑자기 시작하는 감이 있지만 따라 읽다 보면 재미있을지도 모릅니다. 


나그네방은 2018년에 시작했습니다. 

제가 호주 퍼스에서 선교사 훈련을 받았는데요. 그때는 내 삶의 뿌리 깊은 기둥인 종교와 신에 대한 궁금증에서 선교사 훈련을 받아보겠다고 선택했어요. 아버지가 목사님이고, 거의 매일 성경을 읽으라는 소리를 듣는데, 성경은 잘 읽지 않았고. 그런데 성경 말씀은 내 삶에 너무나 유효해서 그게 무엇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결론만 말하면 선교사 훈련은 제 삶을 바꿔 놓았는데. 실제적인 삶의 변화, 내면의 변화가 크게 일었죠. 호주에서의 시간을 통해 나는 하나님을 실제적으로 받아들였고, 그 마음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나는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내어 맡기는 존재가 되었지요. 이렇게 말하면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무언가를 선택할 때 기도를 한다거나, 내 생각대로만 삶을 좌지우지하지 않고 한두 번 멈춰서 신은 내가 어떤 선택을 하길 원하실까?라고 생각합니다. 본론으로 다시 돌아와 호주에 다녀오니 삶에 희망이 가득 찼습니다. 친구와 가족들은 변화된 제 모습을 보며 호주에 다녀온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고 입을 모아 말했지요. 


그중에 친구가 있었습니다. 생활이 지긋지긋해서 어디로든 도망치고 싶다고 말하던 친구였죠. 


그래? 그럼 너도 호주로 도망쳐볼래? 

그 당시 저에게는 호주라는 경험이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곳의 환경과 그 환경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 제게 가져다 준 회복과 행복의 기운이 매우 유의미 했지요.  가장 소중하고 좋은 경험이었던 호주를 그녀에게 제안했고, 그녀는 저의 제안을 선뜻 뜻받아들였습니다. 마치 선물을 안고 가듯 그녀는 저의 말을 가슴에 품고는 훌렁훌렁 떠났지요. 


그리고 1년이 흘러 그녀가 호주에서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그녀가 호주에 있는 동안 자주 안부를 주고 받았는데요. 그녀에게도 호주라는 도피처는 유의미하게 작용했습니다. '나 변화했어. 사랑이 뭔지 알 것 같아'.

사랑을 알게 된 그녀는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마지막으로 나눈 통화에서 제게 말했습니다. '언니 복학 안 해? 나랑 복학하자' '아.. 나 복학하기 싫은데.' '우리는 이제 하나님을 알잖아. 그 사랑으로 치유받았잖아. 근데 우리 친구들은 어떡하냐. 친구들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 없을까?' '사랑해버려. 사랑에 푹 담가 버려'. 


선교사 훈련도 받은 우리가 복학을 앞두고 이전과 똑같은 삶을 살아갈 수는 없으니, 변화한 만큼 변화된 삶을 실제적으로 살아보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도 뭔가를 해보자고 의기투합 한 게 나그네방의 시초가 된 '하빈하우스'였습니다. 하빈하우스는 하영과 예빈이 사는 집이자, 친구들이 쉬어가는 사랑방이었고, 우리가 작정하고 친구들을 섬기기 위해 만든 공간이었죠. 우리는 하빈하우스를 사회선교지라고 불렀습니다. 사회를 위한 선교 공간. 


그렇게 2018년 여름, 하빈하우스가 시작될 집을 찾기 위해 우리는 온수역으로 떠납니다. 

꽤나 더운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업합니다. 부동산 사장님을 따라 몇 개의 매물을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방문한 집이 우리의 첫 하빈하우스가 되어준 오류동 화랑빌라였습니다. 1990년대에 지어진 오래된 연립빌라는 온화하고 목가적인 분위기를 품고 있었습니다. 빌라 안에는 초등학교 나이 즈음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까르르 웃었고, 아카시아가 피는 계절에는 지하철역에서부터 집에 오는 길까지 아카시아 향기가 은은하게 대기를 채웠습니다. 우리 집은 연립 발라 가장 안 쪽 3층에 위치했습니다. 집안에 들어서자 거실 베란다 창으로 엄청나게 환한 햇살이 들어왔지요. 거실을 가득 채운 햇살에 '와 햇살' 하며 들어가 '여기가 우리 집인가 봐'하고 계약할 마음을 먹었습니다. 

집을 찾을 때는 늘 그런 식이었습니다. 내가 머물 공간을 발견하면 '여기다'라는 확신이 들곤 했지요.


2018년 여름, 첫 번째 하빈하우스를 발견한 날


이 집으로 계약하자고 결심한 뒤 친구 어머니에게 보증금을 빌렸습니다. 친구와 저는 월세를 반반 부담하며 살기로 했지요. 운 좋게 햇살이 가득 비추는 우리의 첫 집은 쓰리룸 빌라였습니다. 쓰리룸이라.. 우리는 투 휴먼인데 방이 쓰리이면, 남은 하나를 어떻게 쓰면 좋을까? 자연스럽게 고민이 생겼습니다. 친구와 저는 텅 빈 거실 바닥에 앉아 아침이면 기도와 묵상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 방을 어떻게 쓰면 좋을까요?'라고 고민합니다. 어느 날 기도를 하다가 '저 방은 우리의 것이 아닌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게 돼요. 이 공간은 우리의 선교지이고, 우리가 하늘로부터 받은 사랑을 흘려보내는 공간이고, 우리의 것은 딱 각자의 방까지만. 거실과 부엌, 나머지 방 하나와 화장실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것이 아닌 건 타인과 나누어야겠다고 자연스레 생각했지요. 


'자 저 방을 나그네방이라고 부르자.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면 얼마든지 편안히 머물다 갈 수 있도록 하자'


나그네방을 시작하게 된 건 저 생각 하나, '저건 우리의 것이 아닌 것 같은데?' 였습니다. 

저 방은 우리 것이 아닌 것 같아. 그럼 누구한테 나눠주지? 방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잖아. 여러 연유로 잠시 머물 곳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저 방을 내어주자. 안전하게 머물러 갈 수 있도록. 


나그네방은 2024년 현재까지 6년을 꽉 채워 운영되어 오고 있습니다. 그 사이, 스무 명이 넘는 나그네가 방에 머물다 갔고, 그들의 방문 덕분에 나그네방과 나그네방을 운영하는 제 삶도 다양한 역동을 가지고 여러 에피소드를 만들며 살게 되었죠. 그리고 이 방에 가장 오래 살고 있는 (현재 1년째 거주 중) 나그네 강산님과 나눈 최근 대화는 이랬습니다. '강산님, 나그네방 정말 신기하지 않아요? 매번 누군가 떠날 때 즈음 새로운 사람이 방이 필요하다고 찾아오잖아요.' '맞아요. 저도 이제 나그네방이 돌아가는 게 신기해요.. 매번 어떻게 때맞춰 사람이 들어오고 나갈까요.' 


나그네방의 규칙은 단 한 가지인데, 그것은 나보다 이 방이 더 필요한 사람이 나타나면 방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 번도 '나보다 이 방이 더 필요한 사람'이 나타나지는 않더군요. 누군가 살만큼 살고 이제는 저도 독립하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하면, 그때 그제야 누군가 '혹시 나그네방에 자리가 있을까요?'하고 어디선가 물어왔습니다. 


그리고 최근 1년 간 나그네방에 들어온 이들 중 제가 직접적으로 알고 지낸 지인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모두 어디서 이야기를 듣고 왔는지,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나그네방 문의를 지속적으로 받고 있어요. 만나 보면 다 진짜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점이 신기합니다. 하지만 어떤 인연인지 몰라도 어떤 인연이 있기에 서로에게 닿게 된 우리들이었죠. 나그네방은 오늘도 순항 중입니다. 이제는 문의가 들어와도 방이 없어서 내어주지 못하고 있스니다. 아.. 정말 나그네방을 100개 할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말이에요. 저는 여전히 나그네방 100개의 꿈을 꿉니다. 그런데 그 꿈이 몇 년 전만 해도 늘 꿈이었는데, 이제는 이룰 수 있는 계획 언저리로 들어온 것 같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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