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방이 궁금하신가요?
최근 나그네방에 대해 소개해 달라는 연락을 여러 곳에서 받았습니다. 저에 대해 소개해 달라고 하면 부끄러워서 나가지 못할 텐데, 나그네방에 대한 이야기라면 잘 전달할 자신이 있어서 기쁜 마음으로 자리에 나섰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지난 1월 중순에 있었던, 나그네방이 큰 선물을 받은 날에 관한 기록입니다.
우리는 무려 60여 명에 사람들 앞에서 나그네방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브런치에도 기록하고, 인스타그램에도 나그네방에 대해 설명한 것 같은데 여전히 사람들에게 나그네방의 존재는 낯섭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나그네방과 같은 성격의 공간이 세상에 흔하지 않기 때문이죠. 여러 계산을 하지 않고 무조건으로, 그저 사랑으로 필요한 사람에게 방을 내어주는 곳이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나그네방은 어떤 곳인가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다시 한번 대학 시절로 돌아가야 합니다. 친구들에게 힘이 되기 위해 예빈과 제가 만들었던 하빈하우스 시즌 1. 쓰리룸 빌라를 계약한 우리는 나머지 방 한 칸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가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주자’라고 다짐했습니다. 그 순간, 나그네방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집과 학교가 멀어 인근의 주거지가 필요한 사람, 여러 이유로 도피처가 필요한 사람들이 나그네방을 찾아 주었습니다. 이후 시간이 흘러 주거 문제에 더 큰 경각심과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던 제가 나그네방을 도맡아 운영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4개의 집을 거쳐 7년 간 안전한 보금자리가 필요한 이들에게 나그네방을 제공하고 있지요. 이제 몇 명이나 우리 집에 머물다 갔는지 셀 수가 없습니다. 최소 40여 명은 살다 갔을 테고, 최장 기간 나그네방에 머물렀던 사람은 1년 8개월, 짧게는 보름 정도를 머물다 간 이도 있습니다.
이 일을 왜 하냐고요?
내 한 몸 누일 곳이 있다는 것에 소중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사고파는 세상 속에서 그저 하룻밤을 안전하게 보내기 위해서 지불해야 하는 터무니없는 돈. 그 돈이 없을 때 겪게 되는 삶의 서글픔 혹은 억울함, 도태됨, 아쉬움, 온갖 부정적인 상황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왕 저도 서울에 주거 공간이 있어야 하니, 조금 더 힘을 내어 원룸이 아닌 쓰리룸을 구하고, 제 한 몸 누일 곳이 필요한 이들에게, 자신의 자립을 위해 기반을 다질 곳이 필요한 이들에게 방을 내어 주고 있습니다. 스스로 독립의 기반을 다질 수 있을 때까지 우리 집에 머물다 가라고요. 집의 보증금은 운영자가 지불하고, 나그네는 자기 수입의 10%만 내면 됩니다. 만약 수입이 없을 경우에는 함께 살아가는 데에 대한 책임비로 최소 10만 원을 받습니다.
그러면 너무 손해 아닐까요?
놀랍게도 전혀 손해가 아닙니다. 가감 없이 말해서 나그네방을 운영하는데 가장 많이 돈을 쓰면 한 달에 80-100만 원 정도를 지출합니다. 그 지출 안에는 제가 도심 속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비용이 포함되어 있고, 두 나그네에게 안전한 거처를 제공하는 비용이 포함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두 나그네의 부모님과 가족이 얻는 심리적인 안정을 덤으로 얻고, 나그네방을 운영한다는 사실만으로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서 기특하다는 칭찬을 받습니다. 백 만원을 들여 나그네방에 거주하는 세 사람을 포함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심리적인 안정과 희망 을 쉐어하며 살고 있죠. 희망을 백 만원 주고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나그네방을 통해 저는 희망을 삽니다. 그러니 수지타산을 정확히 계산하면, 인풋 대비 아웃풋이 훨씬 큰 일이 바로 나그네방입니다.
이야기를 하나 들려들까요?
작년, 12월 나그네방이 새로운 공간으로 이사하고 맞이한 하우스 워밍 파티에서 저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듣습니다. 함께 살고 있는 나그네 두 분이 원가족에서 독립해 나그네방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아버지와 혹은 그의 가족들과 관계를 회복했다’는 이야기였죠. 독립을 준비하는 딸을 가진 부모님의 심정을 상상해 보세요. 아무리 보안이 좋은 오피스텔이라도 하나뿐인 딸을 내보내기 망설여집니다. 만약 아주 좋은 오피스텔을 구해줄 수 없는 부모님이라면 어떨까요. 경제적인 허들에 마음이 답답하거나 근심이 가득할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나그네방을 만난 거예요. 착하게 생긴 친구가 7년 간이나 운영했다는 나그네방은 직접 방문해 보니 내 딸이 머물기에 아주 부족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자, 부모님의 마음에 가득했던 근심은 조금 줄어들고, 그 자리에 자식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진정한 마음이 남게 됩니다. 그리고 부모님은 이렇게 말씀하게 되시죠. ‘나그네방에 살다가, 사회에 나가서 살다가, 언제든 힘들면 우리 품으로 돌아와도 된단다’. 그 말을 들은 자식은 힘이 납니다. 세상을 살다가 너무 지치고 힘들 때, 가족의 품이라는 돌아갈 곳이 생겼으니까요.
나그네방은 누군가의 기댈 곳이자, 그 가족의 관계 회복을 돕는 공간으로 자연스레 성장했습니다. 저도 너무 놀란 일이었어요. 제 자신보다 나그네방이 크다는 사실은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제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제 의도가 닿지 않은 곳에서 나그네방이 자신의 역할을 이토록 잘 해내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도 타인과 함께 사는 건 힘들지 않나요?
반박할 여지없이 타인과 함께 사는 일은 어렵습니다. 제 인격이 부족해 관계가 깨지는 경우도 있고, 평생을 다른 사고방식과 삶의 방식으로 살아온 이들이 한 지붕 아래에 모여 사는 건 부딪힘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갈등이 생겼을 때, 그 순간부터 우리의 관계가 시작된다는 것을 말이죠. 서로가 서로의 삶에 묻어나기 시작하는 그 순간,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연습을 하게 됩니다. 혼자 살면 편하지요. 하지만 함께 살면서 우리는 더 나은 인격체가 되어 갑니다. 양보하기도 하고, 눈 감아주기도 하면서 서로를 위해 나를 내려 놓을 수 있는 더 나은 사람이 되어 갑니다.
나그네방이 한결같이 외치는 구호 같은 말이 있습니다. <너의 행복을 위해 나의 행복을 연습한다>. 우리는 함께 살기 위해 스스로의 행복을 가꿉니다. 잘 가꾼 행복으로 서로의 나약함과 미움을 보듬어 갑니다. 이 작업은 나그네방에 사는 이들에게는 모두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저에게는 평생의 수련이 되겠죠.
나그네방은 운영자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앞선 질문에서 나그네방을 운영하는 일이 저에게 전혀 손해가 아니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오히려 인풋 대비 좋은 아웃풋이라고 오버까지 했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건 나그네방은 세상이 발견하지 못한 보물이라는 생각이 제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나그네방은 행복을 내 집안으로 들이는 손쉬운 방법입니다. 모두가 찾아 헤매지만 찾지 못하는 행복의 열쇠를 저는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죠.
같이 사는 친구들이 있어서 퇴근 후 집에 들어오는 길이 외롭지 않습니다. 친구들과 거실에 둘러앉아 시시콜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즐겁고, 지혜의 피아노 연주와 하민의 기타 연주를 듣고 있으면 여기가 천국입니다. 그래서 기꺼이 제 주머니를 털어 나그네방을 운영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사람들에게 그럴싸한 말로 ‘나그네방 100개 운영하는 게 목표예요’라고 했지만, 100개가 아니어도 괜찮고, 100개가 1000개가 되어도 좋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한 나그네방을 성실히 운영해 나갈 것입니다. 보물이잖아요.
처음으로 돌아와, 나그네방이 1월 중순에 받은 선물이란 무엇일까요?
이런 제 이야기를 잠잠히 들어준 친구가 있었습니다. 지난 12월 한남동에 한 카페에서 만난 우리는 서로 안부를 주고받았습니다. ‘대체 네가 하고 있는 나그네방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는 그녀에게 저는 나그네방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친구이자 선생님인 그녀는 나그네방을 도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보겠노라고 했습니다.
친구는 우리나라에서 아주 유능한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리더였습니다. 매일 밤 전 세계에서 그녀와 함께 공부하기 위해 줌에 접속하는 사람이 50여 명, 지난 18년간 그녀가 이루어 온 커뮤니티에 들어가고 싶어서 대기한 사람의 숫자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런 커뮤니티의 행사에 저와 나그네방 초대받았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와 가치를 전달했고, 그 자리에 모인 커뮤니티 멤버 60여 명이 나그네방을 위해 기부 모금을 진행해 주셨습니다. 기부금 영수증도 드릴 수 없고, 세액 공제도 되지 않는데 많은 분들이 자발적으로 마음을 모아 주셨습니다. 그날 모인 후원금이 나그네방의 반년 운영비에 버금가는 금액이라니, 저는 얼떨떨한 상태로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하고 돌아옵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그 자리에 모인 모두가 모금액보다 더 큰 선물을 저에게 주셨거든요. 나그네방을 운영하며 때때로 <나는 과연 나그네방을 운영할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의심합니다. 지난 가을은 그 물음이 제게 너무나 큰 형벌처럼 다가온 시간이었죠. 그런데 행사장에 모인 모두가 한 목소리로 제게 말해 주셨습니다. <너는 사랑받기에 충분한 사람이야>. 그 말은 <네가 아무리 부족해도 나그네방과 함께 해도 괜찮아> 라는 말로 들리기도 했고, ‘그러니까 계속해봐’ 라는 다정한 격려로 다가왔습니다.
마무리하며,
나그네방이라는 녀석이 어찌나 대단한지, 어쩌면 저보다 더 오래 이 세상에 남을 것 같습니다. 아직 방 세 개짜리 공간이지만, 나그네방의 가치가 세상에 퍼지고 또 나그네방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우리의 몸집도 그에 맞게 커지는 날이 오겠지요? 나그네방의 문지기로서, 저는 앞으로도 성실하게 방을 운영하겠습니다. 이 일을 건강하게 오래오래 해나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