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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너구리 Aug 13. 2021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

대한민국에서 느린 어른으로 산다는 것

대한민국 방역에는 계획이란 없다

아빠 엄마의 1차 백신 접종이 완료되었다. 계획대로라면 부모님 두 분 모두 23일에 2차 접종을 맞게 된다.  


젊은 사람들일수록 면역 폭풍이 세니까 1차 접종으로 화이자를 맞혀주는 것, 반대로 AZ의 경우 반응 속도가 빠르니까 연세가 높은 분들을 대상으로 맞혀주는 것이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 나라는 백신 공급이 되는 족족 닥치는 대로 맞히는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후진국이라고 생각하는 나라들이 벌써 3차 접종까지 시작하겠다고 하는 뉴스를 보며, 그리고 참으로 건강한 내가 AZ를 맞고 죽을 뻔했던 시간이 떠올라서 억울하기도 고, 그냥 결과적으론 이 나라의 방역수칙엔 역시 제대로 된 프로토콜이란 없다는 것에 화가 난다. 그래 그래도 이 것도 못 맞은 사람들도 많은데. 현실에 초점을 맞추어 우리 가족은 이내 내가 의사이기 때문에 30살을 넘지 않았어도 백신을 맞을 수 있었고, 부모님이 50대이기 때문에 늦기 전에 백신을 맞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기로 마음먹었다.


부모님 두 분 모두 2주 정도 충분히 항체가 형성되는 시간을 가진 뒤에 9월 17일 언니 결혼식을 위해 출국하는 일정으로 비행기 스케줄을 예약한 상태였다. 그런데 3일 전 뉴스에서 들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 하나, 백신 공급이 어려워 2차 접종 시기가 6주로 미뤄졌다는 것. 그렇게 되면 9월 초에 백신을 맞게 되는 부모님께선 자가격리를 피할 수 없게 된다. 다행히  엄마 아빠는 해외출장, 입출국으로 백신 접종 날을 변경하기를 희망할 경우 보건소나 병원으로 컨택하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아빠는 8282의 민족 대기업 인재답게 재빨리 5주로 변경하는 민첩함을 보이셨다. 근데 기계치에, 빠름과는 거리가 멀고도 먼 느림보 엄마는.. 실패했다더라. 백신 접종일자를 변경하기 위해 1차 접종 병원에 가서 물어보니 '지금 바쁜 거 안 보여요? 저흰 몰라요 가세요'라는 높은 언성만을 들었다고 한다. 엄마는 자신에게 화를 내는 직원에게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한마디 말도 못 하고 집에 오셨고 보건소에 20통 정도 전화를 걸어 가까스로 연결되어 받은 답변은 '저희도 사실 몰라요 나라에서 내려온 공문도 없었고 일단 접종병원이랑 상의해서 날짜 변경해보세요'였다.

결국 너무 답답하다 왜 아빠는 되고 나는 안 되는 건지 딸에게 도움을 청하시며, 엄마 이거 혼자 못하겠어 이 나라 보건소와 질병청은 서로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고 울먹이셨다. 사실 이제야 생각해보니 엄마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답답하고 화도 나는데 일단 딸의 결혼식을 참석하기 위해 백신 맞는 것이 급급하니까 얼마나 총총거리시며 전화를 돌렸을지. 근데 당직을 하고 온 못된 딸은 또 너무 피곤한 상태를 핑계로 '엄만 아직도 이 나라 하는 일을 믿어? 그렇게 동동거려봤자 될 일도 안돼 엄마. 그렇게 화나면 엄마가 질청에 대통령님께 직접 말씀드리라는 거라는 거지 뭐. 괜히 엄마 속만 뒤집지 말고 침착해'라고 상처에 소금만 끼얹었지 뭐람. 엄마도 알 텐데 사실. 다 알면서도 어디서 화도 못 내고 딸 앞에서 도와달라 하는 속도 속은 아녔을 텐데 왜 그랬을까.


그래서 결국 아직도 답변만 기다리는 중이다. 5주 이후로 스케줄 변경은 가능한데, 접종기관에서 원래 접종 날짜에 초점을 두느라 이 점을 놓친 듯했다. 엄마는 매사 차분히 감사하게 살자는 마인드로 삶을 사셔서 쉽게 흥분하는 일이 없었지만 오늘은 확실히 달랐다. 일이 꼬여버려서 화도 나고, 그 걸 엄마가 생각하는 어른답지 않게 밖에도 표현해버렸으며, 결과적으로 스스로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에 에너지 소비가 과했는지 쉽게 가라앉히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침대에 돌아누워 웅크리고 있는 엄마의 작은 등 뒤로 재난지원금을 또 주겠다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이런 엄마를 두고 출근하는데 백신을 확보하는 것보다, 4단계인 상태에서 재난지원금으로 국민들의 소비를 독려하는 것이 정말 윗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내놓은 최선의, 더 우선시되는 해결안이었을까 의문이 들었다.


'내가 비엔나에 8년밖에 살지 않았지만 난 오스트리아 정부에 신뢰가 가. 내 건강에 대해서 책임져 줄 수 있겠다는 믿음이 있어 야 솔직히 그게 국가잖아. 이번에 오스트리아는 백신 수요와 공급 현황을 모두 공개했거든? 근데 k방역이라고 떠들어대 봤자 뭐 결과적으로 한국은 백신 하나 자국민 수만큼 못 들여왔잖아? k방역도 솔직히 너네 의료진들 갈아 넣어 인력으로 버틴 거고. 걔네 일한 돈은 제대로 받았다니'
문득 떠오른 지난달 언니의 말.

부럽다.

나는 이제 거의 30년을 살았는데도 이 나라에 대한 신뢰를 쥐어 짜내야 하는데. 정부 비리는 언제 어디서 존재한다는 걸 전제하더라도- 고작 8년을 산 나라에 이렇 신뢰를 가지게 한다는 것이 정말로 부러워진다. 그리고 이 나라가 나의 건강을, 나의 권리를 지켜줄 거라는 마음으로 60년을 살아온 엄마의 믿음이 어제와 오늘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졌다는 것이 참 슬프게도 대조된다.  


#코로나백신접종

#k방역 #k정부

#국가란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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