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레퍼런스

소제목

by mica

남의 삶을 보는 것이 좋다.


삶의 레퍼런스를 보고 영감을 모아 하나의 작품을 빚어내기 위한 작은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최근 고전 소설에 빠진 뒤로 지금은 카뮈의 작품을 읽기 시작했다. 읽으며 중점적으로 생각한 사항은 '죽음'이다. 그의 작품에는 죽음의 레퍼런스가 많다. 그 의도가 궁금했다. 나는 평소 죽음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주변인의 죽음을 경험한 적도 없을뿐더러, 평소에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겉핥기식 생각에 머물러 있었을 뿐이다. 보기 좋은 말을 적어내고 나의 것이라 주장해도, 그것이 진정 나의 것임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이름 짓기'와 '그 본질을 이해하는 영역'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겉에서 보아도 분별하기 쉬운 것이다. 나는 그런 껍질들을 다 벗겨내고 싶다. 스스로를 껍데기에 가득 휘감긴 사람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어제 『이방인』을 읽으며 새롭게 느꼈던 점은, 모든 철학의 근원적 개념은 "인생이 살만한가", 즉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에 기초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철학 책을 읽어도 늘 느껴지던 쿰쿰하고 이질적인 느낌이 해결되는 기분이었다. 나는 평소 그저 자기계발서나 철학 책을 읽으며 정보를 채우기만 하던 사람이었다. 지난 두 달 정도 고전 소설에 천천히 빠져든 것은, 군 생활 동안 계속된 얕은 정보의 확장을 멈추고 그 깊이를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내 인생에서 '독서'라는 장르의 다음 챕터로 넘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4년 전 고등학생 시절의 나는 알았을까? 한국어보다 영어를 더 잘 이해하고 글 읽기를 싫어하던 사람이, 글을 읽고 이해하는 과정을 이토록 아끼고 사랑하게 될 줄을. 이렇게 사는 게 맞는지 늘 알고 싶지만, 한편으론 알고 싶지 않다. 그것을 알고 싶어 한다는 것 자체가 여전히 타인과 비교하며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한다는 의미 아닐까? 참 힘든 생각을 벌써 해버린 기분이다. 이런 고민이 들 때면 나이가 많으신 분들과 대화할 기회를 만들어 이야기를 쏟아내고 답을 찾으려 노력한다.


삶의 레퍼런스를 많이 알아야 한다. 그래서인지 나보다 어린 사람보다는 나이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나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무언가 말해주기에는 내가 아직 너무 어리고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요즘 느끼는 건 나이가 참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던 많던 인간이란 모두 다르기에 배울 점들이 분명 있다. 우리나라도 영어처럼 존댓말이 없었으면 어땠을까? 음... 아니, 그건 좋지 않은 생각이다. 만약 나이라는 개념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각자 서로의 마음과 생각을 이해하려고 더 공을 들이지 않았을까 하는 이런 맥락의 판타지적이고 과분한 생각을 나는 자주 한다.


글을 자주 쓰기 위해 한번 쓸 때 정보의 배출 양을 줄이기 위해 그 양을 최대한 줄이려고 했었다. 하지만 내 지식의 크기가 이 글을 읽을 독자분들보다 크고 귀중한가 생각하면 아니다. 나는 지금 출발선에 서있다. 글을 쓰는 목적은 단순히 글을 계속 쓰기 위함이 아니라, 내가 아는 정보를 스스로 조합해서 사고와 창작의 폭을 키우기 위함이다. 글을 쓰는 형식에 초점을 둘 게 아니라, 머릿속 정보를 한계까지 꺼내어 몰아붙이고, 더 나올 것이 없을 정도로 스스로를 확장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것이 내 진짜 목적이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