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독재

26.1.21

by mica

나는 대화를 즐긴다.

공격적인 토론이나 본인의 광기에 대한 대화를 말이다.

<아테나 학당>에서 철학가들이 각자의 신념을 가지고 토론을 하며 서로를 발전시키는 것은 인간 지성의 본질이다. 오늘 다시 배운 건 허풍과 거짓은 소설가에게만 유용한 특징이라는 거다.


생각해라 그 생각의 순간을 즐기고 다른 사람의 속도에 매몰되지 말자

최강록의 말하기를 보며 대강 이래서 이러시는 거 같다 생각한 것이 맞았다.

생각을 정리하시는 것에 시간을 쓰시기에 답변에 시간이 걸리신다.


그는 불편함을 표하는 익명성에 숨은 댓글들을 들어왔기에 나보다 그 중요성을 맞닿아 알았다.

나도 많은 생각을 급하게 정리하지 못한 상태로 말하기보단 정리하고 말하되 그 속도를 빠르게 하도록 연습해야겠다.




표면적인 생각에 머무르길 바라는 사람들 그것도 옳은 삶이다.

뭐 광기에 가득 찬 삶도 옳은 삶이다.


누가 옳은 삶이라는 기준을 정의했는가

누가 그 기준을 정의할 수 있는가

독재자만이 국민에게 그 기준을 정의할 수 있다.

온전하지 않고 평생 가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북한을 보라 파시즘과 나치를 보아라


세상이 말하는 평균은 순간일 뿐이다.

인류는 광기와 신념 그리고 평균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공존하며 각자의 세상을 살아왔다. 언제나 그랬다.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고 싫음이 있기에 좋음이 있다.


서로가 서로에 생각에 대해 자랑하거나 변호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상대방의 생각에 안된다며 본인의 신념과 생각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당신이 그 관계의 독재자의 위치라면 가능하다.

부모나 상사 그런 관계라면 본인이 원한다면 철저하게 하라

다만 평생의 통제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엇나가기 시작하면 그 감정은 매우 강하게 튀어나가 가까운 관계일수록 본인에게 닥쳐올 것임을 인지하길 바란다.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에서 흔히 보이는 풍경이다. 강요하지 말고 은은하게 흐름을 일으켜라 자식의 흐름을 읽고 이끌며 본인의 생각을 배제하고 자식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위해 그 마음과 무의식을 보는 것에 최선을 다하되 나타내지 말아라 그러면 본인의 생각이랄 게 자식의 생각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유연한 사고란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자라나는 본인의 생각의 벽을 계속해서 부수는 고통과 시간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민의 과정은 답을 알고 법인 듯 말하는 것과 다르다. 매우 주관적이지 그러나 주관적이기에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다. 서로의 주관적인 것에 대해 토론하고 발전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과의 대화는 즐겁다.


나는 이런 현실을 살고 싶다.


현실을 살라고 다른 주변인에게 남발하는 사람을 보았다.

세상은 이러니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강요를 한다.


세상의 당연함을 많은 고민과 시간들 그런 희생이 감수되어 누군가 남긴 당연한 생각을 펼친다.

이런 사람도 있기에 세상은 돌아간다.

누군가는 구원받는다.


그러나 그 사람은 알지 못한다.

왜 본인이 그런 생각을 할 줄 아는지를 말이다.


나는 극히 유연한 사고는 주관적인 것의 극에서 그리고 그에 이르기 위해 인간적이고 동시에 본인을 혐오함으로써 그것을 마주하고 고민하고 생각해냄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것을 배우고 성장하는 것에 인간 지성의 본질이 있다. 그 성장의 끝에 약간의 새로움이 지금 내 세상의 마지막이다.


나는 극히 주관적인 길의 끝에는 새로움이 남는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고민을 통해 광기 또는 신념을 쌓아나가야 한다.

죽기 전 들이키며 생각하는 마지막 공기 한 줌을 위하여 나는 생각한다.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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