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잘린 고양이의 용서(1)

짐승

by 이채

기억의 난간 위, 위태로이 걷던 고양이의 자취가 간혹 떠오른다. 비 오는 날이면 사라지곤 하는데, 녀석은 어디로 숨을까? 빗속에서 우비를 태운 자전거가 지나간다. 놈의 눈엔 저것도 바퀴부터 등장할 테지. 혹은 발견되지 않거나.


그토록 살금살금 내딛는 앞발을 살피자면, 무엇이 그리 불안한지 조심스럽다. 아버지는 엄격한 목소리를 흉내 내고자 애쓴다. 매번 아슬아슬하다.


고양이의 앞발이 퍼다 나르는 건, 그런 종류의 추억이기도 하다. 밤이 찾아오면 으레 그러하듯, 그가 와서 공부는 잘하고 있느냐 친구는 많으냐 말을 건네곤 하는데. 무슨 까닭인지 답할 수 없다. 그의 목청에는 호기심은 없고 그저 호소만 있다.


그가 퍼다 나르는 건, 앞발이다. 고양이의 앞발인 양 조심스럽지만, 그보다 서툰 흔적이 가끔 불호령을 남긴다. 단호한 어머니를 따라잡고자 하나, 늘 실패하는 그 앞발. 미숙한 꾸지람이 어미의 속내 또한 은밀히 증언하고 있으니, 저 둘은 각기 다르게 감추어 놓은 불안을 공유하고 있을 거 같다. 빗속을 걸을 즈음이면 사라진 고양이가 떠오르고, 어머니가 단호한 태도로 가려둔 게 이제 드러난다.


쏟아지는 폭우에 고양이가 숨었다. 그렇게 공포를 짐작한다.


고양이의 앞발이 발톱을 세운다. 물지 않는 개는 짖고, 공포에 질린 고양이는 할퀸다. 어린 동생도 장난감을 잃을라치면 노여움을 불러내고, 눈물을, 투정을, 분노를 펼쳐낸다. 끝내 애원한다. 위협하던 이빨이 뽑힌 자리에 드러나는 건 상실에 대한 두려움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니 앞발 뒤에는 그저 공포가 있을 성싶다.


발톱이 폭로한 바대로 앞발이 잘린 고양이의 뒤틀리던 몸통이 증거하는 게 있을 텐데. 내리는 비의 뒤를 그렇게 밟아간다.


이어지던 상념을 치고 들어오는 건 눈앞의 짐승이 흘리는 피다. 철우는 잘린 앞발을 집게로 쥔 채다. 녀석은 그를 노려본다. 앞발을 빼앗겼다 여기는 모양인지. 너는 돌려받아도 가질 수 없다 말해주고 싶다.


놈이 여기 숨을 법하다 여겼으나, 실상 확인한 적 없다. 습기 덕분인지 피 냄새가 진하다. 발버둥을 치면서도 밖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앞발이 없으니 그 뒤에 있던 게 나와야 할 텐데, 기다려도 나오질 않는다. 예상대로다. 재미없다. 다른 이들도 그러할지 궁금하다. 더 지체하면 학원에 늦겠다. 오늘은 시험을 치는 날이고, 아마 좋은 성적이 나오면 아버지가 치킨을 사주신다고 했다. 더 궁금해진다.


조각난 나무 파편으로도 쉽사리 잘리는 앞발은 너무 물렁거린다. 하기사, 철우 스스로 운동을 할 때도. 들고있던 아령으로 자기 정강이를 찍으면,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회복될까?


우산을 턴다.


“일찍왔네?”


“일찍 일어났거든요.”


재미없는 농담에 웃는다.


“오늘 시험치는 날인 거 알지?”


“이거 소나기일까요?”


“그럴 걸.”


이 사람의 앞발은 뭘까?


“오래 내리네요.”


“아침은 먹고 왔니?”


“아뇨, 저 원래 안먹어서요.”


“아니, 먹어야 건강하지.”


미묘하게 단호한 목소리가 누구를 닮았다. 스스로 뿌듯해 보이고, 기억해냈다. 덕분에 불편하다. 다음부터는 먹었다고 해야지. 더 듣기 싫어 시험 이야기를 한다. 어렵게 내셨냐고하자, 열심히 하면 뭐가 걱정이냐고 되묻는다. 그래도 걱정된다고, 나약한 이야기를 한다. 너는 열심히 했고, 알고 있으니 걱정말라고 보람차게 말한다. 철우는 아버지가 이번 시험을 잘 치면 치킨을 사주시기로 했다 첨언한다.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가 너무 편하다. 앞발은 여전히 주머니에 있다. 선생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간다. 어느 교실에서 시험을 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