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화살 하나를 잃어버리면 난 그 화살을 찾기 위해 모양과 무게가 같은 화살을 같은 방향으로 좀 더 조심스럽게 바라보며 쏘았네. 그리고 난 둘 다를 잃어버릴 수도 있는 모험을 통해 화살을 모두 찾곤 했지.
셰익스피어 | 베니스의 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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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철우의 전화에 헐레벌떡 달려온 현정이, 놀이터 그네에서 새벽 찬 바람을 쐬고 있는 그를 발견한다. 이 학생을 마주할 적마다 왠지 모를 불쾌감이 들긴 하나, 그렇다고 쉬이 무시하기엔 뭔가 걸리는 게 있다. 무슨 일일까? 진지한 분위기에 비하면, 소년의 첫 마디가 다소 엉뚱하다. ‘저는 저에 대해 누가 모르는 이야기를 하면 불안한데, 선생님은 어떠세요?’ 오는 길에 혹시 몰라 챙긴 생수 둘 중 하나를 건네고, 나머지를 한 병을 따서 들이킨다. ‘부모님 때문이니?’ ‘꼭 그런 건 아니에요.’ 그가 손에 쥔 물병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때는, 네 성적 이야기만 했어.’ 조금 당황스럽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로 불러내다니. 하지만, 그렇다고 곧장 집을 나선 그녀 자신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냥 전화로 말하지 그랬니라는 대사가 턱 언저리에서 간질거린다. ‘그런 게 아니에요.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뻔히 보이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래요.’ 현정이 헛기침을 뱉는다. ‘무슨 일 있니?’ 그제야 철우의 시선이 생수로부터 그녀에게로 향한다. ‘비밀이 하나 있거든요. 들켰어요.’ ‘누구한테?’ ‘선생님한테요.’ ‘나?’ ‘네.’ 짧은 정적 끝에, 현정이 첨언한다. ‘뭘 들켰는데?’ ‘전에, 고양이.’시신이 이 녀석의 작품이었나보다. 그 때, 우산 너머에 있던 아이가 지금 다시 물병으로 눈길을 옮긴다. 공포에 떨고 있다. ‘왜 그랬는지 말해줄래?’ 녀석이 불안하게 다리를 떤다. ‘그게요. 가끔씩 너무너무 화가 나서요.’ ‘어디에 화가 나는데?’ ‘모,모르겠어요.’ 그녀가 동정의 한숨을 내쉰다. ‘그래서, 힘드니?’ 그가 울먹인다. ‘부모님께도 들켰어요.’ ‘혹시 여기서 밤을 새웠니?’ 고개를 끄덕인다. ‘어떻게 설명할지 생각이 안 나서, 집을 나왔어요.’ ‘계속 여기 있었구나. 감기 걸리겠다.’ 현정이 철우를 이끌어 차에 태운다.
뒷좌석에서 담요를 집어 그에게 건넨다. ‘이거 덮고 있어. 부모님께는 내가 한 번 설명해볼 테니까, 너희 집에 가자.’ ‘네.’ 작고 소심한 목소리가 돌아온다. 집까지는 금방이다. 문자를 미리 받은 아버님이 대문 앞에 서 있다. 그녀가 조수석을 흘깃 보고, 먼저 내린다. 철우는 나오지 않을 양인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안녕하세요. 아버님.’ ‘네. 안녕하세요. 선생님. 안사람도 곧 나올 거예요.’ 현정은, 본인이 보기에 큰 문제가 있는 행동은 아닌 거 같다고 말한다. 물론, 언젠가 마주한 고양이 사체 이야기는 쏙 빼고. 그즈음, 아침에 우연히 깬 동생을 어쩔 수 없이 안고 나온 어머님이 등장한다. 셋은 차창 너머의 소년을 곁눈질하며 심각하게 논의 중이다. 그 와중에 막내의 초점은, 다들 감히 똑바로 바라보지 않는 SUV 정면에 고정되어 있다.
한창 진행하던 대화에 어느 정도 결론이 난다. 가족들은 일단 아무 일 없던 양 지내기로 했다. 다만, 날이 밝으면 정신과에 철우를 데려가 상담을 해 볼 생각인가 보다. 안심하라 다독여 들여보내기 위해 차로 돌아온 그녀가 조수석 문을 연다. 순간 깨닫는다. 녀석이 방금까지 확실하게 웃고 있었다는 걸. 아득하다. 앞발을 잃은 포유류의 피가 빗물에 씻겨나가고 있다. 어서 빨리 철우를 들여보내고, 다시 여행이라도 가야겠다. 잠시 후, 녀석이 짐짓 공포에 질린 모양으로 차에서 제 부모에게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