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by 백경

하루가 지났다.

오늘은 할아버지 입관식이 있는 날이다.

하지만 나는 갈 수가 없었다.

무서웠다. 너무나도 무서웠다.

어제 보았던 그 휜 천 아래,

할아버지의 모습을 나는 차마 마주할 수 없을 거 같았다.

나는 아직 차마 할아버지를…

입관식이 끝났다.

다들 할아버지가 좋은 곳에 가셨을 거라고 하셨다.

좋은 곳? 그곳은 어디란 말인가.

“무슨 생각 하고 있어?”

죽음이었다.

“… 내가 이러고 있어도 될까?”

“왜?”

“오늘 입관… 가야 하지 않았을까?”

“네가 힘들어서 못 간 거 아니야?”

“… 그렇지.”

“근데?”

“그래도… 할아버지를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기도 하고…”

“그리고?”

“그리고, 할아버지가 좋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좋은 곳으로 간다는 게 죽은 자를 위한 말이 맞을까?

“좋은 곳으로 간다는 게… 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

“왜 그렇게 생각해?”

“좋은 곳이 대체 어딘데? 천국? 그런 곳이 존재하지는 않잖아. 그런데도, 사람들은 할아버지가 좋은 곳에 가셨다고 말하고 있단 말이야. 다 본인들 편해지려고 하는 말인 거 같아.”

“천국이 왜 없다고 생각해?”

“그건 다 종교적인…”

“그러면 사람들은 왜 그걸 믿는 거 같아?”

“그건… 그건 다 본인들 마음이 편해지려고…”

“그게 잘못된 걸까?”

“죽은 사람은 얼마나…”

“죽으면 감정을 느낄까?”

“… 아니”

“그러면 산 사람이 중요하지 않을까?”

말문이 막혔다.

죽음이 질문에 뼈가 있었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죽은 자를 보낼 의무가 있다.

죽은 자를 보내주기 위해선 살아있는 우리의 마음이 편해야 하겠지.

“이해했어…”

“뭘?”

“네 질문의 뜻 말이야.”

“그래?”

“… 근데, 아직 의문인 게 있어.”

“뭔데?”

“호상이라는 게 존재할까?”

“음… 그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삶이 아무리 좋아도 죽는 건 나쁜 거잖아.”

“왜 그렇게 생각해?”

“죽으면 아무것도 없잖아. 호상이라는 것도 살아있는 사람들이 편해지려고 만든 개념 아닐까 해서…”

“좋은 삶을 살았으니 호상이라고 평가하는 건 아닐까?”

“그건… 모르겠어.”

“아직 삶에 대해 못 찾았구나?”

“…”

“조금 더 생각해봐.”

그 말을 끝으로 죽음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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