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공대생은 왜 군대에서 책을 쓰기로 했는가

책을 읽기 너무 나도 좋은 환경, 군대

by 최우준

솔직히 말하면, 저는 책을 읽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카이스트 공대생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보통 이렇게 생각합니다.


'공부 엄청 했겠네', '책 많이 읽었겠다', '독서광이겠지?' 천만에요.


입대 전까지 제가 읽은 책은, 전공교재를 제외하면 아마 10권도 안 될 겁니다.


소설? 관심 없었습니다. 철학책? 그게 뭔지도 잘 몰랐습니다.


그런 제가 지금 브런치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전역을 90일 앞둔 지금, 군 복무 중 100권 이상의 책을 읽고, 반도체 교양 도서를 집필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공학부 3학년. 전형적인 뼛속까지 이과인 공대생.


고등학생 때 국어를 5등급 이상 받아본 기억이 없고, 글보다는 수식과 알파벳이 더 익숙했습니다. 솔직히 책 읽는 게 시간 낭비라고 느껴졌습니다.


그러던 제가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대한민국 20대 남성이라면 피할 수 없는 그곳.


군대입니다.



저는 조금이라도 편하게, 그리고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싶어 공군에 지원했고, 2024년 8월 5일에 입대했습니다.


'이제 내 인생에서 1년 9개월이라는 시간이 사라지는구나...'


무한한 자유가 주어졌던 대학 생활과는 달리, 군대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통제되는 환경입니다.


'이곳에서 638일을 버텨야 하는구나.' 막연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시간을... 정말 그냥 흘려보내야 할까?'



입대 전날 밤, 짐을 싸다가 책장을 봤습니다. '가면 할 것도 없을 텐데, 책이라도 읽어볼까?'깊은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냥 책장에 꽂혀있던 책 중 마음에 드는 3권을 골랐습니다.


『마음』

『양자컴퓨터의 미래』

『한입 경제상식사전』


이 선택이 제 인생을 바꿀 줄은, 그때는 몰랐습니다.




훈련소에서는 시간이 멈춘 듯 느껴집니다.


공군은 입소 첫 주, 하루 대부분을 훈련 대신 대기를 하며 지냅니다. 정말 시간이 안 갑니다.


너무 심심해서 챙겨 온 책을 꺼냈습니다. 평생 책과 안 친했기에 쉽게 읽히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볼 수도, 운동을 할 수도 없는 그곳에서 꾸역꾸역 읽다 보니 어느새 한 권을 다 읽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책을 펼쳤습니다.


이상했습니다. 시간이 사라졌습니다.


'뭐지? 이 느낌은?'


훈련소 5주 동안, 저는 3권을 모두 읽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나도... 책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구나.'



자대 배치는 공군사관학교. 저는 알라딘에 들어가 읽고 싶은 책을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목표를 세웠습니다.


'전역 전까지 책 100권 읽어보자.'


일단 마음에 드는 책 위주로 읽으면서 흥미를 가져보자.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한 권이 두 권이 되고,

한 달에 10권,

반년에 50권,

그렇게 읽은 책들이 차곡차곡 늘어났습니다.


어느새 책은 제 일상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밤. 침대에 누워 또 한 권을 덮으며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도... 쓰고 싶다.'


읽기만 하는 게 답답했습니다. 머릿속에 쌓인 생각들이 넘쳐났습니다.


반도체. 3년간 카이스트에서 배운 저의 전공을 사람들에게 '이야기'로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수 십 권의 독서가 제게 보여준 건 단순한 지식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말하는지', '어떻게 전달하는지'였습니다.


그날 밤, 싸지방에서 컴퓨터를 켜고 책의 목차를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았습니다.


군대에서. 그것도 졸업도 안 한 공대생이. 반도체 책을 쓰기로 했습니다.


2025년 9월의 일입니다.



20대 남자라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그곳. 어떤 이에게는 '잃어버린 1년 9개월'이고, 어떤 이에게는 '그냥 버텨야 하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달랐습니다. 그곳은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고, 스마트폰 없이도 몰입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며, 오히려 가장 집중할 수 있는 서재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다음 이야기에서는, 스마트폰도 자유도 없는 그곳에서 어떻게 100권을 읽고 책을 쓸 수 있었는지, 그 생생한 일상을 풀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