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시작

아무런 예고도 없이, 조용히,

by 이유정

사람에게는
견딜 수 있는 고통만 준다는 말,
나는 끝내 받아들일 수 없었다.


가난 속에서

열심히 노력하며 자식들을 공부시키고,

대학을 보내고,

졸업해 직장을 얻고,

또 다른 가정을 이루어 독립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큰 행복일까.


아직 미혼인 나로서
상상만 해보아도
분명 뿌듯하고 자랑스러워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일 것 같다.


그런 행복의 한가운데서
비극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는
첫째 딸에게서 손녀 둘,
둘째 아들에게서 손자 하나를 얻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과
그 자식들이 낳은 손주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는 말이
매일같이 입 밖으로 흘러나오던
그런 나날이었다.


가난했지만
서로를 의지하며
가족이라는 이름 하나로
버텨내던 시간들이었다.


그런 행복함 속에 갑자기 불행이 드리 닥쳤다.

영화 속의 비극적인 이야기처럼

어느 날 한 순간에 찾아왔다.


부모님께 유난히 다정했던,
맑은 영혼을 가졌던
할아버지, 할머니의 둘째 아들.


여느 때처럼 일을 마치고

귀여운 아들을 보러

집으로 돌아가던 그날,


급히 걸려온 업무 전화를 받고

회사로 향하던 중

음주운전 차량과 사고가 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엄마는 삼촌에 대한 기억은 흐릿해졌지만

그날의 기억 만큼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날 저녁,

할어버지와 할머니, 엄마, 막내삼촌과

함께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할아버지가 말없이

눈물을 흘리셨다고 했다.


또르르..


세상이 멈춘 것 같은

그 정적.


이윽고 할아버지는
숟가락을 내려놓으시고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며
벌떡 일어나셨고,


그 순간
병원에서
큰삼촌에 대한 전화가 걸려왔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어린 나이였음에도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끈이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어떻게 아셨을까.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목숨과 바꿔도 아깝지 않을
자식에게 닥친 비극을
할아버지는
어떻게 그렇게 바로 알아차리셨을까.


우리 삼촌은
그렇게 사랑하던
자신의 아들과 아내를 남긴 채
이 세상을 떠났다.


삼촌은 생전에
할머니께 습관처럼 말했다고 한다.
“○○이(아내)
엄마 아빠한테 잘할 거예요.”


이승에서의 효도를
끝내 마치지 못할 걸
알고 있었던 걸까.


삼촌의 말처럼
그렇게 되어버렸다.


그 비극적인 사고 이후,
가족은 망가졌다.


그것이
불행의 시작이었을까.


전쟁도 이겨내며
강인하게 가족을 지켜왔던
우리 할아버지는
그날 이후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술로 버티며
자신을 망가뜨려 갔고,


여리고 여렸던 우리 할머니는
매일을 울며
스스로를 죄인처럼 여기며 살아가셨다.


그리고
마음의 병을 얻으셨다.


우리 할머니는
본인이 웃으며 지내면
아들을 보내고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감정을 깊이 숨긴 채
그렇게 평생을 살아가셨다.


왜 이들에게
이토록 큰 시련을 주신 걸까.


신은 인간에게
견딜 수 있는 고통만 준다는 말,
나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고통을
과연
‘견딜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곁에서 지켜본 나로서는
그 누구도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가난 속에서
자식들을 키우고,
공부시키고,
사람답게 살아가길 바랐던 부모에게,


그 결말이
이별이라면.


그 모든 순간을
끝까지 함께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이 비극의 진짜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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