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그들은 가족이 되었다

둘로 시작해, 다섯으로 이어진 삶

by 이유정

서로의 아픔을 무심한 듯 감싸 안고,

딸 하나와 아들 둘을 품었다.

그렇게, 가족이 되었다.


첫째 딸은 말괄량이였지만,

할아버지를 닮아 누구보다 책임감이 단단한 아이였다.

둘째 아들은 마음이 유난히 여려
별명조차 ‘소’라고 불릴 만큼 순한 아이였다.

막내 아들은 장난과 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집안의 웃음과 걱정을 동시에 떠안고 자랐다.

세 아이가 그렇게 이 집의 자리를 채워갔다


아이가 셋이라는 사실은 기쁨보다 생계를 먼저 떠올리게 했다.

할아버지는 한 번도 쉬지 않는 삶을 택했고,
그 무게는 할머니의 어깨로,
그리고 엄마의 어린 손끝까지 번져갔다.

버티는 일이 곧 사랑이었던 시절이었다.


가끔 할아버지는 후회했다고 한다.
“내가 친구들처럼 은행에 들어갔다면….”

그 말에 담긴 속뜻은 누구도 완전히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가 살아오며 버텨야 했던 무게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선택을 부정하지 않았다.
선택한 인생을 견디며, 그 무게를 혼자가 아닌 둘이서 나누어 짊어졌다.


이제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가 짊어진 무게는
언젠가 다섯 사람이 함께 나눌 무게가 되었다.

그 시대의 가족들이 그러했듯,
부모님이 늦게까지 일하고 돌아오면
남아 있던 아이들은 서로에 대한 믿음과 기댐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한 순간에도
서로의 존재만으로 버텨 나갔다.

어린 첫째 딸은
동생들의 보호자가 되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밥을 챙기고
모든 것을 양보하며 자랐다.
어린 동생들에게는 엄마였고,
부모에게는 든든한 딸이었다.

둘째 아들은
유난히 순한 아이였다.
엄마가 기억하는 삼촌의 눈은
늘 맑고 부드러웠다고 한다.
소처럼 순한 눈동자를
꿈뻑꿈뻑 뜨며 엄마를 올려다보던 동생.

화를 내는 법도,
때를 쓰는 법도 모르는 착하고 착실한 아이.
어디 가서 맞고 돌아와도
“내가 잘못했겠지”라며
먼저 웃던 사람이었다.

철부지 막내는
누나와 형의 보호를 받으며 자라
어느새 동네에서 제일 센 아이가 되었고,
형제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든 나서서 맞섰다고 했다.

세 아이는 그렇게 서로의 빈틈을 채우며
하나의 가족으로 자라갔다.


엄마는 그 시절을 떠올리면
“그래도 행복했어”라고 말했다.
가진 것은 많지 않았지만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
아이들은 부족함을 몰랐다고 했다.


엄마는 그 시절을 떠올리면
가족이 함께 둘러앉아 밥을 먹던 기억이 가장 먼저 난다고 했다.
별다른 반찬도 없었지만
서로의 이야기에 깔깔 웃던 시간들.

그 시절은 힘들었지만,
분명히 따뜻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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