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난날, 우린 남이었다

모르는 사람에서, 삶이 되어가기까지

by 이유정

내 기억엔 우리 할머니는 소녀였다.

그 누구보다도 예쁘고 아기자기한 걸 좋아하는 소녀.


그녀는 3남 5녀의 막내딸로 태어나 어머니를 일찍 잃었다고 하셨다..

그래도 좋은 새어머니를 만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철없는 막내딸로 살아오셨다.


그 시절은 그랬듯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만남은,

누구도 설레지 않는 방식이었다.

맞다.. 바로 중매였다.

정해진 날, 정해진 자리에서 앉아 서로를 바라보는 일.

그것이 두 사람의 첫 만남의 전부였다.


세 살 차이의 남자와 여자.

하지만 거기엔 나이나 조건보다 더 큰 간극이 있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못생겨서가 아니라,

가난해서도 아니라,

그저 어두워 보였다고..

그때 그렇게 느꼈다고 나는 여러 번 들었다.


할머니는 원래 맑고 이쁘고 수줍음이 많은

그런 맑은 사람이었다..

잘 웃고, 말이 많고,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 사이의 공기를 밝게 만드는 티 없이 맑은 사람이었는데

그날 마주한 할아버지는

마치 오래된 그림자처럼

말없이 앉아 있었다고 했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할머니는 그날,

할아버지의 성격이 아니라

할아버지의 아픔을 먼저 본 건 아니었을까.


설명할 수는 없지만,

가까이 가기엔 너무 깊어 보이는 어두움과 마음의 상처.

괜히 마음이 무거워지는 느낌.

그래서 할머니는 집으로 돌아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 사람이랑 결혼하기 싫어요”


하지만 그 말은 선택이 되지 못했다.

그러자 할머니의 새어머니와 아버지는 조용히 대답하셨다고 한다.


“살다 보면 괜찮아져.”


그렇게 두 사람의 인연은,

좋아하는 마음이 아니라

정해진 마음으로 시작되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결혼했다.


내 기억에 나에겐 그렇게 한없이 다정했던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겐 그렇게까진 다정다감한 사람은 아니었다고 한다.

표현도 서투르고,

말로 마음을 전하는 법도 몰랐던 사람.

아픔이 많은 사람은 대개 그렇게 강해지는 법이니깐.

시대가 할아버지를 그렇게 강인하고 무뚝뚝한 사람으로 만든 것은 아닐까..


대신 할아버지는

책임감이 강했고,

생활력이 아주 강한 사람이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고,

집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묵묵히 채워 넣었다.

사랑한다는 말 대신,

살아내는 방식으로 가족을 지켰다.


할머니는 누구보다 헌신적이었다.

불평도 많지 않았고,

티 내지 않고 가족을 먼저 두는 사람이었다.

다정한 말은 많이 듣지 못했지만,

밥을 먹으며 음식을 할머니와 자식들 앞에 먼저 놓아주는

우리 할아버지의 무심한 사랑을 보며..

그 사람의 등을 의지하며 평생을 함께 버텼다.


서툰 사랑이었지만,

도망치지 않았고

각자의 자리에서 끝까지 책임을 다했고,

그 책임이 쌓여 하나의 인생이 되었다고.


혹시 이것이

할머니가 처음 느꼈던 그 ‘어두움‘의 정체가 아니었을까..

슬픔이 많아서 더 강해질 수밖에 없었던 사람.

그래서 사랑도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사람.


좋아하지 않는 마음으로 시작된 인연은,

그렇게

평생의 시간으로 이어졌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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