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6와 EV9은 기아에서 판매 중인 전기차다. 이외에도 전기차 라인업이 더 있지만,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쓰는 모델은 현재까진 이 차들뿐이다. 데뷔 연차로는 몇몇 내연기관차에 비하면 짧지만 존재감만큼은 나름 괜찮은 편이다.
그런데 이 중에서 EV9의 수요가 최근 몰리고 있다고 한다. 출시 이후부터 지금까지 상황만 놓고 보면 뜻밖의 근황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걸까? 함께 살펴보자.
‘국내 최초 대형 전기 SUV’
이것은 EV9에게 붙은 타이틀이다. 반도체 대란에 따른 재고 부족 사태 등의 영향이 있긴 했지만, 출시 당시만 해도 이 차는 사전 예약 대수만 1만 대를 넘는 신기록을 세우며 흥행 길에 바로 오를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흥행의 초입에 닿기도 전에 발목이 잡혔다.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다. 그중 두 가지만 꼽는다면, 가격과 품질이다. 하나씩 살펴보면, 야심차게 내놓은 모델이었지만, 너무 비싼 가격 탓에 출시 이후 빠르게 소비자들에게 외면을 받았다.
품질과 관련해선 출시 직후부터 따라붙은 이유다. 실제로 EV9은 출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동력 상실로 인해 주행 중 차량이 멈추는 현상이 여러 차례 발견된 바 있다. 또한 측면 유리 떨림 현상 등의 결함들도 잇따라 발견되면서 품질 문제가 불거졌다.
발목을 잡은 문제들은 ‘실적 부진’이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후 부진이 계속해서 이어지더니 결국 반년도 안되어 쌓이는 재고들 털어내기 위한 할인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참고로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10월까지 EV9 생산 대수는 총 2만 1,216대였다. 업계에선 이 가운데 내수 물량 4,989대와 수출 물량 1만 1,371대를 제외하고, 약 5000대가 재고로 남았을 것으로 예상했다.
할인의 폭은 생각보다 컸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4일부터 EV9 일부 모델 가격이 최저 5,000만,원 중후반대로 계약이 이뤄지고 있다.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인증글들을 종합해보면, 먼저 EV9 7인승 어스 2WD 모델을 2,600만 원 정도 할인받아 5,800만 원에 샀다는 오너가 있었다.
놀라운 점은 다음이다. EV9 4WD 에어 6인승 모델을 2,200만 원 할인받아 6,000만 원대에 구매했다는 인증 글도 있었다. 심지어는 기본 가격이 8,598만 원(친환경 세제혜택 전)인 더 높은 모델(어스 트림 4WD)을 재고 할인, 전기차 보조금 지원 등 각종 혜택을 모두 적용해 최대 2,600만 원까지 할인받아 5,000만 원 후반까지 떨어뜨렸다는 후기도 목격됐다.
생각보다 큰 폭의 할인에 좋은 반응만 있을 순 없었다. 할인 소식이 매체를 통해 본격적으로 퍼지자, ‘이들’사이에서 적잖은 원성이 터져 나왔다. 바로 제값을 주고 산 오너들이다. EV9은 보조금 수령 범위를 넘어선 비싼 가격 때문에 제값을 다 주고 구매한 오너들이 많다. 이를 고려하면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은 아니었다.
특히 이번 대규모 할인 판매 탓에 EV9이 중고차보다 신차 가격이 더 싼 기현상까지 벌어진 것은 소비자들을 분노에 가까운 불만이 나오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주요 커뮤니티들을 살펴보니 다수의 소비자들이 ‘대체 전기차 원가가 얼마길래 이렇게 싸게 파는 건지 궁금하다’는 뉘앙스의 질문들이 많았다.
일반 소비자들을 위한 할인 외에도 기아는 임직원, 대리점 대표, 영업사원, 정비 협력사, 계열사·관계사·협력사 직원에 심지어는 그들의 배우자 및 사촌 이내 친인척까지 대상으로 적용해 특별 할인을 하고 있다.
업계에선 이번 EV9 할인으로 당초 5만 대로 설정했던 이 차의 올해 목표치를 어느 정도 채울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선 기아도 어느 정도 손해가 있을 것이란 말도 있다. 하지만 이윤을 남기는 기업이 앞뒤 안 가리고 할인 카드를 내밀지는 않을 터, 결국 손해는 소비자, 그중에서도 제값 주고 산 고객만 입게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