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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키포스트 Mar 23. 2022

“운전면허, 하나론 아쉽잖아?” 대형면허 취득기

버스와 필자의 첫 만남은 이랬다. 면허증에 한 줄이라도 더 적어 보고 싶은 게 자동차 애호가 아니겠는가! 이런 생각으로 무턱대고 면허시험장을 찾아갔다. 첫 시험은 딱 세 가지로 정리됐다. “부우웅, 끼이익, 덜컹” 경계석 침범 그리고 ‘실격’이었다.

참 경솔했다. 


아무리 운전을 잘한다고 해도 승용차만 몰다가 갑자기 커다란 버스를 자유자재로 몰 수 있을 리 없는데 말이다. 2년 전의 실패를 거울삼아, 다시 대형면허에 도전했다. 이 글은 필자의 눈물겨운 취득 과정을 증언하는 글이 되겠다.


대형면허 따는 법

대형면허는 1종 보통 취득 후 1년 이상 지나면 도전할 수 있다. 필기시험은 따로 치지 않으며 적성검사, 학과교육 3시간, 장내 기능교육 10시간 수료 후에 기능시험을 통과하면 취득하게 된다. 


장내 기능 코스는 면허 간소화 이전의 기능시험처럼 크게 경사로, 굴절, S자, T자로 구성되어 있고, 이를 12분 이내에 80점 이상으로 통과하면 대형면허를 손에 쥐게 된다. 필자가 찾아간 학원에서는 학과는 하루 3시간, 기능교육은 하루 2시간씩 5일 동안 수업을 받는다. 그리고 커리큘럼 마지막 날에 시험을 치르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기능 1일차] 운전이 뭐죠?

새로운 운전을 배우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수동 운전만큼은 자신 있었던 필자는 자신 있게 운전석에 올라, 대우 BS 버스와 합격의 그날을 그려보고 있었다. 이윽고 등장하신 강사님과의 첫 2시간은 필자의 그런 생각을 무참히 깨버렸다.


“성격이 너무 급해! 천천히, 부드럽게 가야지!” 

“클러치를 누가 그렇게 확 떼 버려? 운전 안 해봤어?” 


평소 변명의 귀재인 필자는 7년 운전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애타게 (속으로) 항변해 보았다. 


‘기어가 뭐 이리 크게 움직여… 와이퍼 스위치를 때려야 1단이 들어가네….’

‘무슨 클러치가 이렇게 깊어…? 이래서야 뭐가 반 클러치인지 모르겠잖아….’


그러나 수십 년간 필자 같은 사람을 수도 없이 접했을 강사님 입장에선 필자는 그저 운전 못하는 ‘수강생 1’일 뿐… 그저 억울한 마음을 안고 첫 수강을 마칠 수밖에 없었다.


[기능 2일차] 버스와의 교감

사실 필자는 지병이 있다. 옆에서 누가 간섭하면 운전을 못하는 기묘한 병이다.

놀랍게도 2번째로 승차하신 강사, 아니 사부님은 필자의 이런 지병을 대번에 간파하셨다. 필자가 정말 엇나가게 운전하기 전까진 거의 지적을 삼가셨다. 다 돌고 나서 뭐가 문제였는지 잡아 주시는 사부님 덕분에 필자는 비로소 버스를 제대로 느껴볼 수 있었다. 

필자가 느낀 버스는 이런 느낌이었다.


① 버스는 생각보다 뒤가 잘 따라온다. 오버행이 길고 휠베이스 또한 길기 때문에 크게만 돈다면 경계석을 밟아 실격하는 불상사는 안 일어난다.

② 버스 클러치는 깊은 게 맞다. 그렇지만 반 클러치 부근을 제외하면 안정적이라 시동이 잘 꺼지지 않는다. 큰 차, 큰 핸들, 큰 힘 덕분에 생각보다 운전이 즐겁다.


이렇게 버스와의 교감을 충분히 이뤘다고 생각한 필자지만, 아직은 많은 부분이 미숙한 ‘버스 어린이’였다. 그저 ‘내일은 잘할 것 같은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학원을 나설 뿐이었다.


[기능 3일차] S자 지옥

3일 차부터는 실력이 좀 붙었다는 전제하에 혼자서 운전해 보는 시간이 생긴다. 본격적으로 코스 주행을 익히게 되는데, 필자가 다닌 학원의 코스는 [경사로 - S자 - P 턴 - 철길 가속 - T자 - 굴절 - 주차] 순이었다.


사실 면허 간소화 시기에 승용차 면허를 딴 필자는 S자나 굴절 코스는 밟아 본 적이 없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이 코스의 악명도 모르고 무턱대고 들어가서 여기에서만 50점을 실점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나머지 코스에서도 주르륵 실점하는 처참한 상황을 만들었다. 이후 S자 코스는 교육받는 내내 발목을 잡았다. 사부님께서는 제발 좀 천천히 들어가라, 그러면 문제없을 거라고 강조하셨지만, 성질 급한 필자에게는 그 말이 들리지 않았다. 


차분히 노란 선에 차를 붙이고 선을 따라 부드럽게, 그리고 천천히 돌아 나가는 게 그땐 왜 그리 어려웠을까? 그날을 촬영한 영상 속 고집쟁이는 매우 씩씩거리고 있었다.


[기능 4일차] 멘탈과의 싸움

모든 시험은 멘탈과의 싸움이다. 한두 개의 실수를 너그럽게 넘기지 못하면 계속 실수가 이어지게 되고, 결국엔 전체 시험을 망친다. 면허시험은 더더욱 그러하다.


이날은 유독 가속-변속 코스가 말썽이었다. 이유도 가지각색이다. 가속 속도 미달, 변속 실패, 감속 실패 등… 여전히 시원치 못한 S자 코스와 더불어 변속 코스마저 실점하자, 멘탈은 가루가 되기 직전이었다. 이렇다 보니 T자와 굴절 코스에서도 어이없는 실점이 이어졌다. 2번째 시간 전까지는.

2번째 시간에 타는 차가 바뀌었다. 운명 같은 버스 27번, 전에 탔던 차와 같은 ‘대우 BS106’이지만 이 차의 클러치를 밟는 순간 이거다 싶었다. 필자는 주로 오래된 차를 타온 터라 유격이 큰 클러치에 익숙해져 있었다. 이런 이유로 제대로 된 클러치가 장착된 차를 타면 변속을 잘 못하는 기묘한 왼발을 가지고 있다. 


신께서 점지하신 듯한 27번 버스의 착 붙는 클러치 감각 덕분에 필자는 날개 단 듯이 코스를 하나하나 격파해 나갔고, 기능 교육 수강 이래 처음으로 95점을 얻으며 시험 전날의 교육을 마쳤다.


[기능 5일차] 시험은 운7기3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다. 대부분 호재는 운이 크게 작용한다는 말이다. 이날 필자는 이 말을 절절하게 체험했다.

계속된 낙점에 불안하고 실망한 필자는 시험 전의 기능 교육에서도 처참한 운전을 보여주었다. 실점이 적던 굴절이나 T자에서 큰 실점이 계속된 것이다. 오늘 면허 따기는 글렀구나 싶은 반쯤 포기한 상태에서 시험이 시작돼 버렸다. 


이런 케이스는 필자만이 아니었다. 시험 직전 말을 걸어온 한 학생은 이번이 세 번째인데 오늘도 떨어질 것 같다고 푸념해, 필자를 더욱 불안하게 했다. 시험 중 필자보다 앞서서 시험에 응한 사람들도 점수 미달, 코스 이탈, 경계석 침범 등으로 탈락해 시험장의 우중충한 분위기를 한층 무겁게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 떡인가! 필자 앞에 주어진 시험 차량은 전날의 27번 차량이었다. 발에 꼭 맞춘 듯한 편안함을 느꼈던 바로 그 차다. 필자의 운이 제 할 일을 다 한 것이다.

자, 남은 것은 ‘기삼’이다. 연달아 기합을 넣으며 교육 첫날의 모습처럼 호기롭게 차에 올라 시험을 시작했다. 발에 맞는 차를 타니 경사로? 이런 것쯤은 문제도 아니었다. 27번과 필자는 한 몸처럼 코스를 빠르게 빠져나갔다. 이어지는 S자 코스, 처음부터 끝까지 ‘천천히’라는 말을 계속 되뇌며 진행했다. 노란 선을 부드럽게 타는 버스를 본 강사님들은 저게 어제의 그 학생이 맞나 싶으셨을 것이다. 무실점으로 깔끔하게 S자에 작별을 고했다. 

철길을 넘어 이어지는 가속-변속 구간, 레이싱 만화 주인공이 된 것처럼 “가자! 풀 악셀!”을 외쳤다. 재빨리 가속, 3단 변속, 감속, 다시 2단 변속을 하는데 성공했고, 운전 자존감에 스크래치가 나있던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비로소 대형면허 시험에 정통하게 된 것이다. 


연속으로 T자, 굴절코스를 빠르게 격파한 뒤, 대망의 마지막 코스 주차가 눈에 보였다. 이상하게 그날따라 주차에서 떨어지는 응시자가 많아, 겁먹을 만도 했다. 하지만 필자는 ‘주차’만큼은 5일 내내 한 번도 실점하지 않았던 유일한 코스였다. 여유롭게 차를 밀어 넣고 나니, 필자의 등 뒤로 다른 응시자들의 환호성이 들리는 듯했다. 

부드럽게 종료 선을 넘어간 27번 버스와 필자, 백 점이 찍힌 채 합격을 알리는 채점기기, 정차한 버스의 문 앞에 사부님이 계셨다. 

“감사합니다, 강사님 덕분에 붙었습니다!” 
“천천히 하면 된다고 했잖여~~”

여기까지가 필자가 대형면허를 따게 된 한편의 모노드라마다.


에디터 한마디

정말 운전에 정통하신 분들은 면허시험장에서 2~3번만 쳐 보시고 합격하는 경우도 많다. 시험장에서 응시하면 1회 응시 비용도 저렴하고 (20,000원), 별도로 교육을 수강할 필요가 없어 절차도 간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형면허 시험엔 은근히 코스마다 암기해야 할 사항이 많다. 또 운전자가 큰 버스에 적응하는데 걸리는 시간 또한 적지 않다. 


그런고로 대형면허에 도전할 독자가 있다면, 코스에 따른 공식이 정해져 있고, 교육시간을 통해 보다 긴 시간을 버스에 적응하도록 돕는 학원을 다니길 권하고 싶다. 분명 돈은 더 들지만, 확실히 혼자 하는 것보다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차분히 강사님들 말씀대로 하나하나 따를 수 있다면 쉽게 취득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처럼 고집 세고 성격 급한 사람은 어떡하느냐고? 부디 천천히만 하시라!






“운전면허, 하나론 아쉽잖아?” 대형면허 취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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