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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디지털 퇴거

by 안나

꼬다리

아파트 정문과 현관문을 드나들 때 쓰는 열쇠가 있어요.

중국에서는 먼진카 门禁卡라고 불러요. 아무나 들어가는 것을 막는다는 뜻에서 금할 금 禁를 쓴대요. 저희는 보통 꼬다리라고 불러요. 동그랗거나 네모, 카드형태도 있어요. 사람들이 많이 오고갈 때 꼬다리가 없어도 드나들 수 있어요. 새벽이나 한밤 중에 드나드는 사람이 없으면 그때는 진짜 꼬다리가 있어야 해요. 조그맣게 생겼지만 없으면 집에 못 들어가니 힘 있는 꼬다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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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는 아파트는 꼬다리가 없어요.

안면인식으로 문을 열어요. 2년 된 신축 아파트라 출입 통제 시스템도 새 거예요. 집 현관문은 전자키라 비번이나 지문으로 열고 아파트 동 현관문과 정문은 안면인식 시스템이에요. 중국 안면인식 기술 수준은 당연 세계 원탑이에요. 13억 인구 얼굴로 데이터를 쌓으니 그 양을 누가 따라가겠어요. 머리모양을 바꾸어도 안경을 써도 마스크를 써도 다 인식해요. 아이폰은 못 만들어도 안면인식 기술은 아이폰의 FACE ID 보다 뛰어나요.


재입장 가능한 관광지는 안면인식으로 해요.

티켓 위변조와 타인사용을 방지할 수 있어요. 배를 탈 때로 안면등록해요. 휴대폰을 개통하려면 여권 들고 사진 찍어야 가능해요. 어떨 때는 티켓, 열쇠 없이 다니니 편하지만 어떨 때는 제 생체 정보는 내 것이 아니라 이 나라 거구나 생각하면 불편할 때도 있어요.


며칠 전, 집에 들어가는 데 안면인식이 안 되네요.

누구나 빨리 집에 들어가서 쉬고 싶잖아요. 아파트 현관에서 다른 사람 들어가면 따라 들어가면 되는데 늦은 밤이라 나오거나 들어오는 사람도 없네요. 아파트 정문까지 다시 씩씩거리고 돌아가 경비보고 문 열어달라고 했어요.

그다음 날도 안 되네요.

어제는 시스템 에러이구나 했는데 오늘 또 안되니까 짜증이 퐁퐁 솟구쳐요. 다시 아파트 정문으로 볼멘 목소리로 문 열어달라고 하고 왜 시스템이 안 되냐고 했더니 저보고 인증 기간이 지났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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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정문과 현관 안면인식패널

뭐..라..고..요.



늦었으니 일단 집에 들어갔어요.

허마에서 배달시킨 게 있어요. 아파트 현관에서 인터폰으로 문 열어달라고 해 출입관리 컨트롤패널(컨트롤 패널이라고 하긴 매우 허접하지만)에서 문을 열었는데 안 열려요.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서 제가 아파트 시스템의 모든 권한을 삭제했네요. 1층까지 제가 내려가 물건을 받아왔어요.


Weixin Image_20231204093059.jpg 허접한 아파트 출입 관리 컨트롤패널

다음 날, 집주인에게 연락했어요.

관리 사무소에서 제 출입권한을 삭제해 지금 출퇴근하기 불편하다고요. 집주인이 확인해 본 결과 제가 2021년에 계약했을 때 기간을 2년 3개월로 했어요. 보통 아파트 임대 계약 기간을 1년, 2년 이런 식으로 하니까 관리사무소에 가서 안면인식을 등록할 때 제 계약서 만기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2년으로 등록했고 만기가 지나면서 자동으로 제 모든 아파트 시스템 권한이 삭제된 거예요. 집주인이나 제게 물어보지도, 확인하지도 않고요.


저는 디지털퇴거를 당했어요.


다시 등록하려고 해도 아파트 관리 사무소가 오후 5시까지만 근무해요.

주말에서야 임대계약서하고 여권 들고 가서 다시 출입권한을 등록했어요. 자기네들 맘대로 확인도 안 하고 저를 디지털 퇴거시킨 관리사무소에 가서 항의했지만 귓등으로도 안 듣죠. 애꿎은 집주인에게 살짝 짜증 부려줬어요. 저를 아파트에 가두는 것도 자기네들 맘대로 하더니 집에 못 들어가게 하는 것도 자기네들 맘이에요.


안나는 자고 일어나서 출근하려는데 아파트 현관문을 잠근 `자다가 봉쇄`도

배타적, 독점적 소유, 사용권 있는 제 집에 못 들어가게 하는 `디지털 퇴거`도 가능한 아파트에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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