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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경수 Feb 04. 2024

길복순 평론

'요이땅'이라는 한 단어로 설명이 가능한 영화

2023년에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영화 <길복순>

  개봉한 지 1년이나 되고, 그러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영화도 아닌 이 영화에 대해 현시점에서 논한다는 것이 의미 없고, 유행이 지난 화제를 다룬다는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길복순>은 2023년 3월 31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139분 동안 재생되는 영화이다. 위의 포스터에서 명시하다시피 넷플릭스에서만 공개되고, 재생가능한 콘텐츠이며, <불한당>(2017)과 <킹메이커>(2022)의 감독으로 알려져 있는 변성현 감독의 작품이다. 

  이 영화의 주연 캐스팅은 깐느의 여왕이라 불리는 전도연 배우, 최민식, 송강호와 함께 2000년대 충무로를 대표하는 연기파 트로이카 중 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설경구 배우 그리고 패션모델 출신의 이솜 배우 등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한다. 그 외에도 많은 배우분들께서 고생해 주셨지만, 위의 세 명의 영향이 가장 큰 영화였다고 느껴졌다. 

  이 글은  <길복순>에 대해 다루며, 스포일러를 포함하므로, 만약 본인이 이 작품을 감상 예정이라 스포일러를 원치 않을 경우 뒤로 가기를 누르길 추천한다. 



왼쪽부터 길복순, 차민규, 한희성, 차민희

자존심

  이 영화는 자존심을 다루는 영화이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자존심을 챙기기 바쁘며, 그 자존심 때문에 갈등이 발생하는 영화다. 길복순과 차민희가 회사에서 만난 순간부터 자존심싸움은 이미 시작되었다.

  복순은 회사로 출근한 후 민희를 만나게 되는데, 이때 민희가 자기 체면 좀 세워달라고 부탁을 한다. 영화 초반에는 킬러 훈련생들의 정기 평가일에 전설의 킬러인 복순을 데려가서 자신과의 전설적 인물과의 친분을 통해서 자신의 체면을 세워달라는 것으로 이해할 뻔했다. 모두가 존경하는 업계의 전설적인 인물을 데려간다면 체면이 서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 초반에 그들의 신경전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앞에서 서술한 것과 같이 전설적인 인물을 모셔가는 걸로 자신의 체면을 세우는 것을 의도했다 생각했다. 


  민희는 복순을 정기 평가가 실시되는 곳으로 대동했고, 복순의 후배로 볼 수 있는 훈련생들은 환호하며, 그녀를 찬양한다. 그리고 복순 그들에게 선배로서 응원의 한마디만 해주고 복귀하려고 한다. 하지만 민희는 복순을 자극한다. 복순의 과거보다 더 나은 훈련생이 있다며 그와 결투를 진행시키게 하였다. 복순의 자존심에 스크래치 내려는 민희의 의도를 파악해서였을까? 복순의 표정이 변하며, 민희가 큰 기대를 가지는 훈련생과 결투를 승낙한다. 하지만 복순은 그 에이스 훈련생을 가볍게 이기며, 민희에게 굴욕감을 선사한다.

  이 결투신에서 훈련생이 복순에게 공격받고 민희쪽으로 쓰려졌을 때 민희의 표정은 많은 것을 말해줬다. 자신이 키우고, 장래를 기대하는 훈련생이 자신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따라서 그 훈련생을 통해서 복순에게 굴욕감을 선사하려던 민희는 되려 역으로 자신의 자존감이 스크래치를 입게 되었다. 자신의 결과물이 실패라 생각한 굴욕감과 복순을 반드시 이겨보려는 그의 원대한 꿈이 깨지자 그의 자존심은 몇 배로 더 복순에게 압살 되었다.


  그 외에도 자존심 싸움은 이 영화에서 계속된다. 킬러 등급으로 인한 자존심싸움, 사랑하지만 그걸 티 내려하지 않는 자존심, 어머니와 사춘기 딸의 갈등 등 많은 장면들이 자존심 싸움을 드러낸다. 그런데 굳이 다루고 싶지도 않고, 다룰 이유도 없어 보인다. 이 영화의 핵심인 자존심이라는 주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은 위의 예시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여러 기업의 CEO들과 함께하는 회의에서의 차민규의 태도 또한 그의 자존심을 보여주는 요소였다. 


꼬일 대로 꼬인 러브라인

  복순이 싱글맘인걸 알고 난 후 아이의 아버지가 민규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런데 나중에 민규의 대사를 들으니 그가 아버지인 게 맞더라. 그래 그럴 수 있지. 회사의 대표가 직원의 자녀의 아버지일 수 있지. 하지만 이 영화에서 복순은 희성과 육체적인 관계를 맺더라. 이 베드신이 가지는 의미는 대체 뭘까. 그들은 연인관계가 아니다. 그런데 잠은 같이 잔다. 그리고 복순과 희성은 복순의 딸의 아버지인 민규의 회사에 다닌다. 그런데, 민규는 복순에게 마음이 있어 보였다. 아 대체 뭘까.


  두 번째로 꼬인 러브라인은 복순의 딸인 재영과 그의 친구 소라의 관계다. 소라는 남자친구가 있는 평범한 중학생인 줄 알았으나, 재영과도 연인인 것처럼 보이더라. 재영은 동성애자였으며, 소라는 양성애자인가? 재영은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인정했지만, 소라는 자신이 재영과 이어온 관계가 모두 거짓이었다고 하더라. 미성년자의 동성애를 다룬 것은 굉장히 과감했다. 그런데 이 과감하고 꼬인 관계를 굳이 이 영화에 넣어야 할까? 


  세 번째로 꼬인 관계는 민규와 민희 남매다. 맞다. 그들은 차민규, 차민희로 친남매다. 그런데 그들의 관계가 의심스럽다. 민희는 민규에게 키스하며, 자존심 좀 버리고 사랑할 사람을 사랑하라 한다. 복순에게 마음이 있음과 동시에 민규는 자신의 여동생인 자신에게도 마음이 있다고 민희는 생각한 것일까? 민규의 반응은 애매했지만, 민희의 생각이 맞음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했다. 근친이라는 주제는 <올드보이> 이후로 처음 발견했는데, 굳이 넣었어야 했나 싶다.


  난잡한 관계와 미성년자의 동성애와 양성애 그리고 근친상관까지 이 작품에서 로맨스는 꼬일 대로 꼬였다. 일반적인 연인관계는 이 작품에서 보기 어려우며, 하나같이 다 금지되거나 함구하고 싶어 하는 관계이다. 사랑이라는 인간의 관계를 너무 난잡하게 한 작품에 다 때려 박은 게 아닌가 싶다.


요이.. 땅~!

  감독은 제2의 프린스송 밈을 만들고 싶었던 것일까? 비주얼적으로 뛰어난 배우가 오글거리는 대사를 하면 그게 밈이 돼서 작품의 흥행에 추진력을 가할 것이라 생각하고, 의도한 것일까?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 남는 대사가 바로 그 문제의 "요이땅"이다. 복순과 엘리트 훈련생인 영지가 결투를 시작할 때 민희가 그 시작을 알릴 때 외쳤던 대사다. 어디서 굴러들어 온 요이땅인지 모르겠는데, 이 대사가 이 작품을 설명해 주는 좋은 경구인 것 같다. 

  너무나도 많은 주제를 139분의 러닝타임에 다 넣으니 관람객의 입장에서 그 모든 의도를 깊게 파악할 수 없었다. 모든 주제가 그냥 스쳐가는 하나의 주제였다. 미성년자의 성 정체성 문제, 부모와 사춘기 자식의 갈등, 명문 사립고와 공립고의 격차, 청소년 흡연과 스킨십 등 너무 많은 주제가 난잡하게 공존했다. 139분 동안 액션을 즐기는 것은 가능했으나, 이 영화에서 진지한 무언가를 생각할 수는 없었다. 액션 자체만 다룬다면 이 작품을 보는 관람객은 액션만 즐기면 된다. 하지만 감독이 난잡하게 넣은 수많은 주제들은 관람객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고자 하지만 짧은 러닝타임과 스쳐가는 문제의식 제기로 사유할 기회를 충분히 주지 못했다. 짧고 굵게 많은 것을 복합적으로 다루고자 했던 이 작품은 그야말로 '요이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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