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크—생리학적 감각으로써의 숭고

숭고의 계보 3

by 오경수
쿠르베_절망적인 남자.jpg <절망적인 남자> 구스타프 쿠르베, 1844-1845년.

에드먼드 버크는 『숭고와 아름다움의 이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연구』(1757)에서 미와 숭고를 같은 범주 안에 넣지 않는다. 그는 두 경험이 서로 다른 정동과 감각의 작동 방식에서 나온다고 본다. 아름다움이 부드러움과 친밀함, 완화된 자극을 통해 마음을 풀어주는 쾌를 만든다면, 숭고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작동한다. 숭고는 우리를 편안하게 하지 않고 위협하며, 몸을 긴장시키고 정신을 몰아붙인다. 그래서 버크는 숭고의 핵심 원리를 “공포”라고 단언한다.¹


중요한 점은, 이 공포가 도덕적 위대함이나 고상함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버크에게 숭고는 감각이 ‘고통과 위험’의 관념에 맞닥뜨릴 때 발생한다. 다시 말해 숭고는 대상의 가치 판단이 아니라, 신체가 위험을 예감하고 자기 보존의 취약성을 체감하는 순간에 촉발된다. 동시에 그는 위험이 너무 가까우면 그것은 단지 끔찍함(terrible)으로 남지만, 일정한 거리가 확보되면 동일한 위험의 관념이 역설적인 만족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² 숭고의 조건은 ‘위험의 존재’만이 아니라 ‘위험과 나 사이의 거리’까지 포함한다.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 카라바조,1594년.

이때 숭고는 공포라는 단일 감정으로 끝나지 않는다. 버크는 숭고가 최고도로 작동할 때 인간이 ‘경악(astonishment)’에 빠진다고 말한다. 경악은 생각을 통해 결론이 난 뒤에 생기는 감정이 아니다. 오히려 사유를 “선행하여” 멈춰 세우는 힘에 가깝다. 숭고는 판단의 결과가 아니라 판단의 가능성을 잠시 중단시키는 감각적 사건이며, 이 때문에 “이해되기 이전에” 먼저 몸과 정신을 사로잡는다.³


여기서 버크의 핵심 개념인 delight가 등장한다. 그는 숭고가 고통 자체로 환원되지 않는다고 본다. 위험이 실제로 나를 해치지 않는 조건에서—즉 위험이 제거되었거나 유예되었거나 충분한 거리로 통제될 때—인간은 독특한 만족을 경험한다. 버크는 이 만족을 일반적인 쾌(pleasure)와 구별해 ‘기쁨(delight)’이라 부르며, delight를 “고통이나 위험이 제거될 때 동반되는 감각”으로 정의한다. 또한 그는 숭고의 정조를 “공포가 스민 평정” 혹은 “기쁨 섞인 공포”처럼 모순적으로 묘사하고, 공포·고통이 신체적으로는 신경의 비자연적 긴장과 결부된다고까지 설명한다.⁴ 요컨대 숭고는 의미의 문제라기보다, 긴장과 완화가 교차하는 신체적 리듬의 문제로 제시된다.


이 논변은 미와 숭고의 분리를 정념의 분류학 수준에서 확정한다. 버크는 강렬한 정동을 크게 자기 보존(self-preservation)과 사회(society)라는 두 목적 아래 배치하고, 숭고를 고통·위험과 연동된 자기 보존의 정념으로 묶는다. 반대로 아름다움은 타자와의 관계를 촉진하는 ‘사회적 성질’로 규정된다.⁵ 이렇게 보면 숭고는 예술적 규범이나 도덕적 숭고함의 문제가 아니라, 특정한 조건에서 신체가 경험하는 위기와 유예—거리, 안전, 통제—의 구조다.


박정자는 이 급진성을 간명하게 요약한다. 그는 버크가 인간의 마음이 “고통도 아니고 쾌도 아닌 상태”에 놓일 수 있음을 확인했고, 더 나아가 “고통이 더 큰 쾌감을 준다”는 통찰에 도달했다고 설명한다.⁶ 결국 버크가 말하는 숭고는 대상에 붙어 있는 성질이 아니라, 인간과 대상 사이의 관계가 특정 조건으로 조직될 때 발생하는 생리학적-정동적 사건이다.


Endnotes

1. Edmund Burke, A Philosophical Enquiry into the Origin of Our Ideas of the Sublime and Beautiful (London: R. and J. Dodsley, 1757), Part II, Sect. II.

2. Ibid., Part I, Sect. VII.

3. Ibid., Part II, Sect. I.

4. Ibid., Part I, Sect. IV; Part IV, Sect. VI; Part IV, Sect. III.

5. Ibid., Part I, Sect. VI; Part I, Sect. X.

6. 박정자, 『숭고 미학』, (서울: 기파랑, 2023), 38.


Bibliography

Burke, Edmund. A Philosophical Enquiry into the Origin of Our Ideas of the Sublime and Beautiful. London: R. and J. Dodsley, 1757.

박정자. 『숭고 미학』. 서울: 기파랑,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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