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의 계보 4
서구 전통에서 숭고가 최초로 정식화된 사람이 칸트였던 것은 아니다. 현존하는 서구 전통의 이른 고전 텍스트로는 수사학자 롱기누스에게 전해지는 『숭고에 관하여』가 자리하며, 그 텍스트는 숭고를 웅변과 문체의 문제로 붙잡는다. 근대에 들어 칸트는 숭고를 수사학적 효과나 강렬한 감정의 수사로 두지 않고, 판단력이 자기 자신을 반성하는 장치로 옮겨 심는다. 버크가 숭고를 공포와 긴장 같은 생리학적 정동의 메커니즘으로부터 설명하며 ‘미’와 분리시켰다면, 칸트는 그 경험을 더 이상 감각의 반응으로만 두지 않고 판단력의 구조로 재정식화한다. 칸트에게 숭고는 자연물의 속성이 아니라, 자연을 계기로 상상력과 이성이 충돌하고 재배열되면서 드러나는 주관 내부의 사건이며, 바로 이 점에서 숭고는 근대 미학에서 독자적 영역으로 확정된다. 따라서 칸트의 숭고론은 ‘강렬한 감동’의 기술이 아니라, 감각의 한계가 노출되는 자리에서 이성이 스스로의 요구(무한·전체·무조건적인 것)를 의식하게 되는 과정을 개념적으로 포착한 철학적 정식화로 읽혀야 한다. 『판단력비판』에서 숭고는 대상이 “숭고한 성질”을 지녀서 생기는 감정이 아니라, 대상이 우리의 능력들, 특히 상상력과 이성을 일정한 방식으로 충돌시키고 재배열할 때 성립하는 주관 내부의 사건으로 규정된다.
칸트가 숭고를 설명할 때 가장 먼저 고정하는 것은 쾌의 성질이다. 칸트는 숭고의 쾌를 직접적 쾌로 두지 않고, 생명력이 순간적으로 억제되었다가 곧이어 더 강하게 분출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간접적 쾌로 설명한다. 숭고의 정서는 매혹과 결합하는 감정이 아니라, 경탄 또는 존경에 가까운 부정적 쾌의 형식을 띤다. 이때 상상력은 어떤 대상을 감각적으로 포괄하려는 시도 속에서 자신의 한계를 노출하며, 그 한계의 체험이 곧바로 숭고의 구조를 여는 계기가 된다.¹
이 구조를 더 정밀하게 제시하기 위해 칸트는 숭고를 수학적 숭고와 역학적 숭고로 구분한다. 수학적 숭고는 “크기”의 경험에서, 역학적 숭고는 “힘(자연의 위력)”의 경험에서 출발한다. 칸트는 숭고를 절대적으로 큰 것이라고 부르지만, 그 절대성은 자연물 자체의 물리적 크기를 뜻하지 않고 감각이 제공할 수 있는 모든 척도를 넘어서는 크기를 뜻한다. 상상력이 전체를 한 번에 포괄하려는 시도를 감당하지 못할 때, 이성은 무한·전체·무조건적인 것을 요구하며, 숭고는 이 요구가 감각의 실패 위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성립한다.²
수학적 숭고의 전형적 예시는 광활한 수평선과 바다, 그리고 밤하늘의 별들을 한 시야에 “다 담을 수 없음”에서 나타난다. 바다의 수평선은 시선을 끝없이 미끄러뜨리며, 별들은 무수한 점들로 퍼져 있어 ‘전체’를 직관의 한 번의 포착으로 완결시키기 어렵다. 이때 상상력은 부분들을 계속 더 큰 단위로 모아 하나의 전체로 종합하려 하지만, 감각적 표상은 끝내 ‘전체’로 닫히지 않고 미끄러진다. 칸트가 말하는 숭고의 논리에서 중요한 것은 이 실패 자체가 곧 이성의 요구를 드러내는 매개가 된다는 점이며, 감각적 척도가 불충분하다는 사실이 오히려 ‘절대적 크기’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만든다는 점이다.³
역학적 숭고는 자연을 “힘(권능)”으로 표상하는 데서 출발한다. 거센 파도가 치는 바다, 폭풍과 번개, 폭발하는 듯한 천둥, 밀려드는 검은 구름은 인간의 신체적 취약성을 강하게 환기한다. 그러나 역학적 숭고는 공포에 압도되어 도망치게 되는 상태가 아니라, 일정한 안전거리 속에서 자연의 위력을 관조할 때 성립한다. 칸트에게 결정적인 것은 자연이 위협적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그 위협을 표상하는 순간에도 인간이 자신을 단지 감각적 존재로만 규정하지 않는다는 의식이 함께 발생한다는 점이다. 자연의 힘은 감각적 자아를 위축시키지만, 그 위축은 인간이 자연의 인과성에 환원되지 않는 차원, 곧 이성적 자율성과 도덕적 자기이해의 지평을 의식하게 하는 방식으로 반전된다. 또한 숭고 판단이 미적 판단인 한에서 어떤 보편타당성의 요구를 포함한다는 점, 그러나 동시에 타자의 동의를 아름다움처럼 손쉽게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은 역학적 숭고의 논의에서 정리된다.⁴ 이때 ‘자연의 위력 앞에서도 자신을 단지 자연적 존재로만 규정하지 않는 의식’이 바로 숭고가 도덕의 문제와 접속하는 지점이 된다.⁵
이렇게 보면, 광활한 수평선과 별빛의 총체가 “다 담기지 않는” 경험은 수학적 숭고의 핵심을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폭풍우의 바다와 번개가 “거부할 수 없는 위력”으로 다가오는 장면은 역학적 숭고의 핵심을 보여준다. 두 경우 모두에서 숭고는 자연물의 속성이 아니라, 자연물을 매개로 상상력과 이성이 충돌하고 재배열되는 주관 내부의 사건으로 성립한다.⁶
이 점에서 숭고는 『판단력비판』 전체 기획과 결합한다. 숭고를 둘러싼 논의가 단지 자연 묘사나 감정 분류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유한성과 이성의 요구를 함께 겨냥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메릿은 칸트가 숭고를 “절대적으로 큰 것”으로 규정한다는 출발점 자체가 하나의 난점을 포함한다고 정리한다. 자연 안에는 사실상 ‘절대적으로’ 큰 것이 있을 수 없고, 자연물은 다만 특정한 표상 방식 속에서만 ‘절대적’으로 나타날 뿐이라는 점이 그 난점이다. 메릿은 이 난점 때문에 칸트가 숭고를 자연물의 속성으로 두기보다, 엄밀히 말해 숭고한 것은 인간의 소명(Bestimmung), 곧 도덕법칙이 제시하는 덕의 기준에 따라 이성적 능력을 완성해야 한다는 인간의 과제 쪽으로 귀착된다고 요약한다. 그리고 숭고가 윤리·도덕심리와 연결된다는 점은 해석자의 덧붙임이 아니라, 텍스트 내부의 근거가 강하게 지지하는 연결이라는 논지가 여기서 강화된다.⁷
1. Immanuel Kant, Kritik der Urteilskraft, in Kants gesammelte Schriften, vol. 5 (Berlin: Georg Reimer, 1913), §§23–24 (AA 5:245–247); Immanuel Kant, 『판단력비판』, 백종현 옮김 (서울: 아카넷, 2009), §§23–24.
2. Kant, Kritik der Urteilskraft, §25 (AA 5:248–50).
3. Kant, Kritik der Urteilskraft, §§26–27 (AA 5:251–57).
4. Kant, Kritik der Urteilskraft, §§28–29 (AA 5:260–64).
5. 숭고가 도덕과 연결되는 이유는, 숭고 경험이 자연의 위대함을 대상 속에서 확인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자연 앞에서 감각적 자아가 눌리는 순간에도 이성이 스스로의 우위(자유/자율성)를 의식하게 만드는 주관 내부의 반전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특히 역학적 숭고에서 자연의 위력은 공포를 환기하지만(안전거리에서 관조될 때), 그 공포는 곧 “나는 자연적 존재로서 약하다”는 인식과 동시에 “그럼에도 나는 자연의 힘에 전적으로 예속되지 않는다”는 자각을 낳고, 이 자각은 도덕법칙이 전제하는 자유의 감각과 맞닿는다. Kant, Kritik der Urteilskraft, §§28–29 (AA 5:260–264); Melissa McBay Merritt, The Sublim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8), 3–5.
6. Kant, Kritik der Urteilskraft, §§24–29 (AA 5:247–264).
7. Merritt, The Sublime, 1, 3–5.
Kant, Immanuel. Kritik der Urteilskraft. In Kants gesammelte Schriften. Vol. 5. Berlin: Georg Reimer, 1913. First published 1790.
칸트, 임마누엘. 『판단력비판』, 백종현 옮김, 서울: 아카넷, 2009.
Merritt, Melissa McBay. The Sublim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