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의 계보 5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의 미학은 아름다움의 규범을 정식화하는 체계라기보다, 예술이 더 이상 세계를 하나의 의미 체계로 봉합해 제시할 수 없게 된 조건을 사유하는 작업으로 성립한다. 현대예술이 관객에게 남기는 지배적 인상이 조화나 형식미가 아니라 단절, 공백, 당혹, 충격이라면 ‘미(美)’는 이미 이 현상을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김상현이 지적하듯 ‘충격’이 현대예술의 두드러진 특징이라면, 미는 현대예술의 스펙트럼을 아우르기에는 협소하고 ‘숭고’라는 범주가 오히려 더 적절한 설명력을 갖는다.¹
리오타르는 이러한 전환을 칸트의 숭고 분석을 경유해 철학적으로 정식화한다. 그는 숭고를 자연의 압도적 크기나 대상의 고유한 성질로 이해하지 않고, 사유가 어떤 것을 생각할 수는 있지만 그에 상응하는 감각적 제시를 마련할 수 없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균열로 이해한다. 숭고는 사물에 “들어 있는” 성질이 아니라, 제시가 실패하는 자리에서 드러나는 능력들의 불화로 나타난다. 리오타르가 포스트모던을 말할 때도 구조는 동일하다. 그는 예술가가 이미 주어진 규칙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규칙이 아직 없는 자리에서 ‘만들어질 것’의 규칙을 만들어내기 위해 작업한다고 말한다.²
이때 규칙의 생산은 미학을 곧장 정치로 접속시킨다. 리오타르는 예술의 과제를 현실을 ‘공급’하는 데 두지 않고, 제시될 수 없는 것에 대한 암시를 발명하는 데 둔다. 그는 전체성(총체)의 환상이 차이를 지우고 폭력과 결합할 수 있음을 경고하면서, 전체성에 전쟁을 선포하고 제시될 수 없는 것의 증인이 될 것을 촉구한다.³ 숭고는 이 지점에서 단지 미학적 정서가 아니라, “전체”의 이름으로 차이를 말소하는 충동에 저항하는 감수성으로 확장된다.
리오타르의 ‘사건’ 개념은 이 확장에 구체성을 부여한다. 숭고는 “무엇이 일어나는가”를 설명하는 의미가 아니라, 의미가 도착하기 이전에 이미 “일어나고 있음”이 감각을 건드리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리오타르는 「숭고와 아방가르드」에서 숭고를 저 너머의 장면으로 유예하기보다 지금-여기의 발생으로 붙잡으려 하며, “여기, 지금, 무언가가 일어난다—그리고 그것은 이 그림이다”라는 취지로 숭고를 현재형 사건에 고정한다.⁴ 이때 숭고는 거대한 대상을 표현하는 능력의 과시가 아니라, 거의 아무것도 없었을 수도 있는 자리에서 “그럼에도 무언가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관객에게 선행하는 방식으로 성립한다.
이 논리에서 바넷 뉴먼은 중심 명제가 아니라 사례로 기능한다. 뉴먼의 표어 “The sublime is now”는 숭고를 낭만주의적 자연 감상의 저편으로 미루지 않고, 현재형 과제로 다시 묶어두는 선언으로 읽힌다.⁵ 리오타르는 이 표어를 그대로 받아쓰기보다, 숭고가 단지 “지금”이라는 일반명사에 머무르지 않고 “지금, 숭고는 이것이다”라는 지시로 고정될 때 비로소 작품 앞에서 사건이 성립한다고 본다.⁶ 이 관점에서 뉴먼의 회화는 재현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대상이 아니라, 관객을 지금-여기로 세우는 장치로 재위치된다.
뉴먼의 <Onement I>(1948)에서 수직의 ‘zip’은 화면을 설명하는 선이라기보다 화면을 하나의 장으로 성립시키는 최소 장치처럼 작동한다.⁷ 이 장치는 재현적 도상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관객에게 “무엇을 읽을지”를 안내하지 않고, 오히려 의미화 이전의 시간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Vir Heroicus Sublimis>(1950–51)에서 거대한 규모는 관객이 단일 시점에서 화면 전체를 요약하기 어렵게 만들고, 가까이 머무는 시간을 요구한다.⁸ 이때 색면은 의미의 도착을 돕지 않고, 의미가 도착하지 못하는 시간을 연장한다. 숭고는 잘 읽히는 의미가 아니라, 읽힘이 도착하기 이전의 발생과 긴장으로 남는다.
리오타르는 이 시간성을 “순간(instant)” 혹은 “지금(now)”의 개념으로 사유한다. 그는 뉴먼의 회화를 연대기적 시간의 한 지점으로 환원하지 않고, 발생 자체가 성립하는 방식으로 이해하며, 사건이 의미보다 먼저 도착한다는 점을 강조한다.⁹ 이와 나란히, 숭고의 ‘지금’이 연속적 시간의 안정된 현재가 아니라 붙잡는 순간 미끄러지는 극소의 현재라는 분석은, 사건이 의미화 이전의 층위에서 발생한다는 리오타르의 논지를 보강한다.¹⁰
따라서 리오타르의 숭고론은 현대예술이 재현을 포기하거나 최소화하는 이유를 ‘난해함’이나 ‘형식주의’로 환원하지 않고, 세계가 더 이상 하나의 설명으로 봉합되지 않는 조건을 정직하게 받아들이는 철학적 태도로 해석하게 한다. ‘부정적 제시’는 단순한 공백미학이 아니라, 제시될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형식의 한계로 증언하는 전략이 된다.¹¹ 이때 문제는 “유한한 감각적 대상(작품)으로 절대적인 것에 대해 어떻게 증언할 수 있는가”로 정식화되고, 숭고는 바로 그 증언이 성립하는 방식의 이름이 된다.¹² 결론적으로 숭고는 작품 안에 내재한 성질이 아니라 작품과의 대면에서 발생하는 체험이며, 리오타르의 미학은 이 체험이 왜 ‘미’가 아니라 ‘숭고’의 언어로 더 정확히 기술되는지를 철학적으로 정식화한 작업으로 남는다.
1. 김상현, 「숭고와 전체주의에 맞선 대항」, 『미술은 철학의 눈이다』, (서울: 문학과지성사, 2024), 288.
2. Jean-François Lyotard, “Answering the Question: What Is Postmodernism?,” in The Postmodern Condition: A Report on Knowledge, trans. Geoff Bennington and Brian Massumi,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84), 81.
3. Ibid., 82.
4. Jean-François Lyotard, “The Sublime and the Avant-Garde,” Artforum 22, no. 8 (April 1984): 36–37.
5. Barnett Newman, “The Sublime Is Now,” The Tiger’s Eye 1, no. 6 (December 15, 1948): 51–53.
6. Lyotard, “The Sublime and the Avant-Garde,” 36–37.
7. Museum of Modern Art, “Barnett Newman. Onement I. 1948,” collection entry, accessed January 11, 2026.
8. Museum of Modern Art, “Barnett Newman. Vir Heroicus Sublimis. 1950–51,” collection entry, accessed January 11, 2026.
9. Jean-François Lyotard, “Newman: The Instant,” in The Inhuman: Reflections on Time, trans. Geoffrey Bennington and Rachel Bowlby (Stanford, CA: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2), 78–88.
10. 박정자, 『숭고 미학』, (서울: 기파랑, 2023), 114–17.
11. Lyotard, “Answering the Question,” 81–82.
12. Rachel Zuckert, “Presenting the Unpresentable: Jean-François Lyotard’s Kantian Art-Sublime,” Kantian Review 26, no. 4 (December 2021): 549–565.
Lyotard, Jean-François. “Answering the Question: What Is Postmodernism?” In The Postmodern Condition: A Report on Knowledge, translated by Geoff Bennington and Brian Massumi, 71–82.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84.
Lyotard, Jean-François. The Inhuman: Reflections on Time. Translated by Geoffrey Bennington and Rachel Bowlby. Stanford, CA: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2.
Lyotard, Jean-François. “The Sublime and the Avant-Garde.” Artforum 22, no. 8 (April 1984): 36–43.
Museum of Modern Art. “Barnett Newman. Onement I. 1948.” Collection entry. Accessed January 11, 2026.
Museum of Modern Art. “Barnett Newman. Vir Heroicus Sublimis. 1950–51.” Collection entry. Accessed January 11, 2026.
Newman, Barnett. “The Sublime Is Now.” The Tiger’s Eye 1, no. 6 (December 15, 1948): 51–53.
Zuckert, Rachel. “Presenting the Unpresentable: Jean-François Lyotard’s Kantian Art-Sublime.” Kantian Review 26, no. 4 (December 2021): 549–565.
김상현, 「숭고와 전체주의에 맞선 대항」, 『미술은 철학의 눈이다』, 서울: 문학과지성사, 2024.
박정자, 『숭고 미학』, 서울: 기파랑,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