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편. 환자의 존엄성, 변하지 않는 원칙

질병이 아닌 ‘존재’를 돌보는 학문

by 김주이

▣ 모든 환자를 평등하게 대하는 마음

간호학에서 '인간'은 늘 중심에 있었습니다. 프롤로그와 첫 번째 글에서, 우리는 간호가 ‘질병 너머의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이번에는 그 인간을 어떻게 동등하게 대할 수 있는가, 그 마음을 지키는 일이 왜 간호의 본질이자 원칙이 되는지를 함께 생각해 보려 합니다.

환자마다 질병도 다르고, 살아온 삶도 다릅니다. 그 중 어떤 환자는 보호받고, 또 어떤 환자는 두려움과 편견 속에서 조용히 외면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간호학이 지켜야 할 단 한 가지 기준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모든 사람을 ‘존엄한 존재’로 대하는 태도일 것입니다.


▣ 병명보다 먼저 보는 것

병동에서 근무하던 시절, 감염병을 진단받은 한 환자를 간호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조용하고 환자였지만, 자신의 진단이 알려진 이후, 주변의 반응이 달라졌다고 말했습니다.

“말투도 달라졌고, 시선도 달라졌어요. 기록은 똑같았지만, 대하는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어요.”

그는 일상적 접촉으로는 전염되지 않는 질병이었음에도, 마치 ‘위험한 존재’처럼 느껴지는 환경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 사실이 그를 더 깊은 침묵과 고립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저는 평소처럼 다가가 말했습니다.
“식사는 좀 하셨어요? 오늘은 통증이 덜하신 것 같네요.”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조용히 미소를 지었습니다.
“간호사님은 그냥… 사람처럼 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날 이후, 그는 조금씩 이야기를 시작했고 표정에도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치료가 달라진 것이 아니라,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을 뿐이었습니다.


▣ 존엄은 환자의 상태가 아니라, 우리의 태도에서 시작된다

감염병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때로, 그 병 자체보다 더 무거운 그림자를 환자에게 드리웁니다. 간호는 그런 편견을 넘어서, 환자를 하나의 삶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계속해야 하는 학문입니다. 감염 여부, 병의 이름, 그 사람이 가진 사회적 배경과는 무관하게 존엄은 언제나 간호가 지켜야 할 첫 번째 원칙입니다. 간호사가 먼저 존엄을 지켜낼 때, 그 환자도 자신의 인간다움을 회복해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두려움보다 먼저 이해와 존중을 선택할 수 있다면, 돌봄은 훨씬 인간적인 얼굴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환자뿐 아니라 돌보는 사람들 역시 두려움과 고립 속에서 치열한 시간들을 지나야 했습니다. 그때 우리가 배운 것은, ‘돌봄’이 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방호복 너머의 눈빛, 격리실 문틈 사이로 건네는 짧은 위로 한 마디, 그 모든 것이 누군가의 존엄을 지켜준 ‘진짜 간호’였다는 것을 잊을 수 없습니다.


☆ 간호학이 던지는 질문들

나는 병명보다 먼저 환자를 ‘사람’으로 보고 있는가?

질병에 대한 나의 태도는 정확한 정보에 기반하고 있는가?

나의 눈빛, 말투, 몸짓은 환자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가?


✉️ 간호학을 시작하는 당신에게

간호는 ‘돌봄’ 이전에 ‘존중’에서 시작됩니다. 당신이 앞으로 만나게 될 환자들 중에는, 당신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마음을 닫고 있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그 마음을 여는 건 특별한 기술이 아니라 차분한 말투, 편견 없는 눈빛,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태도일지도 모릅니다. 간호는 병과 싸우는 일이지만, 더 깊게는 사람을 향한 편견과도 조용히 싸우는 일입니다. 그 싸움에서 가장 강한 무기는 당신이 매일 쌓아가는 ‘존엄을 지키는 태도’입니다.


♥ 다시 읽는 간호학

간호는 병명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름을 가진 사람을 대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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