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승진, 전혀 다른 느낌

성과가 아닌 내면의 만족으로

by 오늘의 민철

23살에 순경으로 경찰 조직에 들어왔다.

계속해서 빠른 성과를 내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었고,

스스로 만족할 만한 삶을 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만족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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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채용 시험. 그리고 두 번의 승진 시험 모두 한 번에 합격했다. 내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갈아 넣은 결과라 생각했기에 오만해지기도 했다. 좋은 결과로 인해 기뻐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가짜 기쁨이었다. ‘이번에도 증명했다’는 안도감에 가까웠다. 그리고 곧이어 “이제 또 뭘 해야 하지?”라는 압박이 찾아왔다. 아무도 압박하지 않았는데, 늘 조급했다. 또래들보다 앞서가고 싶었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어야만 안심이 됐다.

하지만 무엇을 해도 안됩니다. 모든 성공의 이면에 우울, 공허감, 자기소외, 생의 무의미가 침전되어 있습니다. 자신은 위대한 존재라는 환각에서 깨어나고 ‘정점’이 아니게 되거나 슈퍼스타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혹은 돌연 자신의 이상적인 상에 합치하지 않는다고 느끼면 숨겨져 있던 것이 즉각 머리를 쳐들게 됩니다.

그러면 불안 발작, 맹렬한 죄책감, 치욕감에 고통받기 시작합니다. 왜 이만큼 재능이 풍부한 사람들이 이만큼 깊은 장애를 안게 되는 걸까요?

<‘단단한 삶’ 중 앨리스 밀러 ‘천재가 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의 드라마’ 인용 글>

경찰 채용 시험, 두 번의 승진 시험 모두 만약 떨어졌다면 극도로 낙심하고 쪽팔려 했을 내 모습이 떠오른다.

합격을 해서 남들과 비교하며 뿌듯해하고 어깨가 올라간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나는 결과에 좌우되는 인간이었다.

운 좋게 결과가 좋은 쪽으로 나왔지만 결과가 좋았다고 인생 전체에 좋은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겉으로 좋아 보이는 결과가 나를 원치 않는 삶의 방향으로 계속 이끌어 왔을지도 모르겠다.

조직 생활을 하며 아무리 어린 나이에 입직을 하고, 승진을 빨리하더라도 나는 결국 일개 직원이라는 알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부서에서 에이스가 되지 않으면 불안했고, 상사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 극도로 불행해지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나는 갈림길에 섰다.

더 열심히 승진하려고(인정 받으려고) 애쓰느냐,

아니면 실체가 희미한 ‘진정한 기쁨’을 찾아 헤매느냐.

직장에 소위 ‘잘 풀렸다’는 선배들을 보았다. 그들은 나와 계급 출발지부터 달랐고, 내가 상상하기조차 힘든 계급을 달고 있었으나 여전히 불안해 보이고 조급해 보였다.(물론 그렇지 않은 선배들도 있었다.) 우리 조직에서 가장 높은 계급에 있는 사람의 모습도 내가 보기에는 마찬가지였다.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 높은 계급을 다는 게 아니라는 건 그들을 보며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상사들에게 크게 잘 보일 필요가 없었고, 할 말 다 하는 폭탄 같은 존재가 되었다. 평소엔 예의 바르고 깍듯하지만 불합리한 지시가 있으면 목소리를 높였다. 잃을 것이 많은 상사들은 이런 나를 두려워해 함부로 불합리한 일을 시키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세 번째 승진을 했다.

이번에는 시험 승진이 아닌 특별 승진이었다. 정말 우연히 (상사에게 인정받지 못해 도망) 홍보 부서에 오게 되었고, 정말 우연히 영상 담당이 되었다.(영상 담당자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갑자기 보직을 바꿔달라고 함)

막상 영상 제작 업무를 담당하게 되니 입직 후 처음으로 일 욕심이 생겼다. 이 일을 잘하고 싶었다. 또한 정말 우연히 최고 수준의 영상 실력자가 같은 사무실에 있었고 그 형을 통해 많은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 정말 우연히 어떤 자기계발서를 읽고 2년 넘게 이어진 독서와 글쓰기가 콘텐츠를 만드는 데 코어 근육이 되었고 1년간 꽤나 호응이 많이 나온 영상들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특별승진이라는 결과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새로운 경찰청장의 바뀐 정책으로 ‘정량 조건(콘텐츠 조회수 등)’이 전국 1위를 달성한 것이다. 그야말로 미친 운으로 승진을 했다.

놀랍게도 이렇게 우연히 얻은 세 번째 승진은 그전의 성과들과는 달리 진심으로 기뻤다. 물론 여러 복잡한 운들이 엄청나게 작용하였고 동료들의 도움으로 얻게 된 결과이지만, 결과 그 자체보다는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주도했다는 사실이, 그로 인해 승진이라는 부산물까지 얻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신기하고 행복했다.

이러한 경험으로

성과가 아닌 과정,

인정보다 즐거움을 선택해도 괜찮다는걸,

아니 꼭 그래야만 의미 있는 삶을 살게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특진이라는 극적인 결과물이 없었더라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1년이었다. ​

하지만 사람들은 결과만 본다. 내가 특진을 했기에 만족을 느끼고 행복을 느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 승진은 단지 운에 따른 결과일 뿐, 중요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 방식대로 잘 풀어왔다는 사실이다. 아이러니하지만 특진을 했기에(결과물을 냈기에) 이 글에 힘이 실린다. 결과가 없이 과정만을 얘기한 글에 사람들은 반응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성과 없이 ‘성과가 없어도 괜찮다’는 말을 하는 사람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나 또한 그랬고.

그러나 이제 나는 성과가 없더라도 계속 그런 말을 하고, 글을 쓸 것이다. 왜냐면 이런 행위 자체가 즐겁기 때문이다. 즐거우면 보상이 없어도 지속할 수 있다. 사람들이 글을 읽지 않아도, 좋아요를 누르지 않아도 계속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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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 시험, 두 번의 시험 승진과 마지막 특별 승진은 하늘과 땅 차이다.

전자가 성과를 얻지 못하면 아니 얻게 되더라도 괴롭고 고통스러운 과정이라면, 후자는 성과와 관계없이 충만하고 즐거운 과정이었다.

남은 인생은 세 번째 승진을 했을 때처럼 살아가고 싶다.

어떻게든 성과를 내려고 조급해지는 삶이 아닌,

내가 정말 의미를 찾을 수 있고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삶.

부수물이 없더라도 그 자체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삶의 과정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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