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내가 갑자기 충동적으로 육아휴직을 쓴 줄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지금의 내가 가진 수많은 미시적 동기들에 따라 철저하게 계산하고 내가 생각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선택을 내렸다.
구구절절하게 그 이유를 작성하는 이유는 기록하려는 목적도 물론 있겠지만, 이러한 선택을 하게 된 자세한 머릿속 회로와 나의 상황과 감각을 보여줌으로써 당신도 얼마든지 이러한 ‘선택’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주기 위함이다.
-
일반적으로,
사회적으로,
겉으로 봤을 때 나의 선택은 매우 비합리적이다.
경제적 이유가 우선적으로 그렇게 보인다.
외벌이 공무원 아빠다. 육아휴직을 하게 되면 당장 실수령액이 절반 정도로 줄어든다. 그렇다고 내가 모아둔 돈이 많은 것도 아니다. 10년째 공무원 월급쟁이로 살아왔고, 부모님에게 경제적으로 크게 지원받은 적도 없다.
사회적 이유로 봐도 부적절한 판단으로 보인다.
창창하던 직장 생활에 급브레이크가 걸리는 것처럼 보인다. 23살에 경찰 조직에 순경으로 입직해 작년 말에 경위로 승진했다. 가까운 가족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한다. 멈추지 말고 더 빨리 고삐를 당겨 더 높은 곳으로 향하라고 말이다. 경찰대 출신 계장님은 육아휴직을 쓰겠다는 얘기를 듣고 열심히 육아를 하며 지금부터 미리미리 경감 시험승진 준비를 병행하라고 말씀해 주시기도 했다. 나를 깊이 생각해주시는 모습에 감사한 마음도 살짝 들었지만, 그러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이제 내가 육아휴직 선택을 하게 된 내면의 이유,
다크호스에서 말하는 '미시적 동기들'에 대해 얘기해 보겠다.
“충족감을 얻고 싶다면 남들이 강요하는 열정이 아니라 당신의 항해에서 순풍을 타게 할 열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당신의 미시적 동기는 무의식 속 자아에 뿌리박힌 강하고 지속적인 감정들의 집합이다. 이런 감정 중에는 미묘한 선호와 솔직한 욕구, 내적인 열망도 있다.
‘자신의 미시적 동기 깨닫기’의 문제에서는, 어떤 경우든 ‘세심히’ 파헤치는 것이 관건이다.“
<다크호스 - 토드 로즈, 오기 오가스>
다크호스를 첫 번째로 읽다가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육아휴직이 지금 나에게 최적화된 선택지라는 것을 느낌적으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아내에게 얘기했더니 좋아했다. 그러고는 바로 회사에 '하겠다'라고 알렸다.
어찌 보면 인생의 중요한 문제를 이렇게 순식간에 선택을 내리는 내 모습을 보고 스스로도 놀랬다.
이런 내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육아휴직을 선택하게 된 이유를 '정확히' 알고 싶어서 멘토님에게 코칭을 받았고, 그 결과 내가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두 가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1. 삶을 진하게 느끼고 싶음
인생이 너무나도 짧다고 느낀다. 다른 사람들도 다들 이렇게 생각하겠지만 나는 이러한 감각이 더욱 살아 있는 것 같다. 벌써 30대 초반을 넘어 중반으로 달려가고 있다. 100살까지 산다고 했을 때 벌써 1/3을 살았다.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죽는 순간 '잘 살았다'라고 느끼고 싶다. 요즘은 하루하루 '잘 살았다'라는 감각을 느끼고 있지만 죽을 때 만족할 수 있는 정도일지는 잘 모르겠다. 삶의 밀도를 더 높게 올리고 싶다. 남들이 깔아놓은 '표준화 레일'을 따라가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외부적 조건에서 벗어나 진짜 내가 원하는 선택을 내리고 싶다. 그 표준화 트랙에서 벗어나는 첫발이 나에게는 이 육아휴직이다.
'그럼 휴직말고 바로 퇴사하면 되잖아?'라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럴 순 없다. 나에게 중요한 가치 다른 한 가지가 바로 '관계'이기 때문에 그렇다.
2. 소중한 관계
사랑하는 사람을 즐겁고 기쁘게 해주고 싶다. 현재 직업은 가족의 생존과 편안함에 직결되어 있다. 이 안정적인 직장을 아무 대책 없이 그만두면 당장 우리 가족이 고생하게 될 수도 있다. 아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고, 아이가 엄마가 아닌 다른 곳에 맡겨질지도 모른다.
현 상황에서 급격한 변화를 주는 무리수는 두고 싶지 않다. 3년 전 역행자를 읽고 나서 그런 무리한 생각을 하기도 했었지만 그때는 정말 동생들 말대로 메타인지가 낮았다. 내가 퇴사를 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몰랐고, 무엇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 퇴사가 아닌 육아휴직은 많은 것을 충족시켜주는 선택지다.
회사도 그만두지 않으며 일정 수당을 받을 수 있고, 가족과의 시간을 최대치로 늘릴 수 있다. 특히 둘째를 임신한 아내가 몸과 마음이 힘들 때 함께해줄 수 있고, 아이가 어릴 때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낸다는 것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또한 육아휴직은 반복되던 내 삶에 변화를 가져다준다. 10대 후반부터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며 살아왔다. 공부를 하고, 취업 준비를 하고, 일을 하면서 말이다. 그것들이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공부, 일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휴직을 통해 '무엇을 하지 않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물론 육아를 위한 절대적인 시간과 에너지는 들어가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가고 싶다.
기회비용은 확실히 존재하지만, 내 삶에 중요한 이 두 가지 가치를 잘 충족시켜줄 수 있는 선택지가 '육아휴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결정은 직감으로 했지만, 이렇게 보니 내 직감은 꽤나 현실적이고 충분히 계산된듯하다.
-
이 두 가지 이유 말고도 복합적이고 세밀한 미시적 동기들이 더 있다.
특히 제주살이를 결정하게 된 것, 육아휴직을 예상보다 급작스럽게 앞으로 당긴 것은 중요한 현실적 문제가 작용했다. '집' 문제이다. 올해 초 입주 예정이던 신축 아파트가 하자 문제로 입주가 지연되고 있다. 집을 팔고 나가기로 한 3월에는 해결될지 알았는데, 여전히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수도권 인근에 월세방을 살며 출퇴근을 하는 선택지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둘째를 임신 중인 아내는 몸과 멘탈에 엄청난 타격을 받을 것이다.
이왕 상황이 이렇게 된 거 휴직을 과감하게 쓰고 '제주도'로 떠나기로 했다. 아내의 오랜 버킷리스트가 '제주살이'이기도 하고, 이때가 아니면 언제 제주도에 살아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 하자 입주 지연의 고통을 기회로 만들었다. 나와 아내 모두 성숙해지고 시야가 넓어졌기에 가능한 결정이라 생각한다. 예전 같았으면 육아휴직으로 수입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한 푼이라도 아낄 생각에 이런 생각은 떠올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돈이 없는 건 마찬가지이지만 지금은 마음의 여유가 조금은 생겼나보다. 돈을 쓰는 것이 예전만큼 두렵지 않다. 오히려 가진 돈을 내가 정말 필요할 때 쓸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다.
휴직을 하다 보면 모아둔 돈이 똑떨어질 수도 있고, 그 고통이 꽤 클 수도 있다. 그때는 그냥 복직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다.
육아휴직은 나에게 '욕심'을 조금 내려놓는 용기이다.
안정적 수입도, 승진도 조금 포기해 보며 '욕심'을 조금 내려놔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해 보고 싶다.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더라도 그런 욕심에 가득한 '나'를 발견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정리해 보면 육아휴직이라는 하나의 선택지를 택함으로써 '욕심(욕망+탐욕)'을 조금 내려놓고 '욕구'를 향하기로 선택했다. "내가 바라는 방향으로 성장하고 싶은 욕구"말이다. 육아휴직이라는 키워드는 이 욕구를 반영할 수 있는 수많은 선택지 중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다.
이러한 욕구를 충족해주는 또다른 선택지가 있다면 나는 또 그 길을 따라갈 것이다. 아직 내가 발견하지 못한 미시적 동기들도 분명 존재할 것이고, 하나씩 하나씩 알아갈수록 선택지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이 거대한 세상에서
'선택지'는 언제나 있었다.
단지 욕망과 탐욕이 나를 눈멀게 해서 '나에게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리고 있었을 뿐. 이제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