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ff Jung Jul 07. 2024

물은 정말 내게로 흐르지 않아

Weyes Blood 와이즈 블러드 [Titanic Rising]

음악이란 게 시대에 맞는 감성이란 게 있고, 장르가 있고, 트렌드란 물결이 있기 마련이다. 때로 어떤 뮤지션들은 이런 흐름에 동승하지 않고 자신만의 시간 대역을 걸어가기도 한다. 뭐 새로운 게 없냐 두리번거리다 복고란 이름으로 시류에 편승하는 얕은 것 말고 말이다. 예를 들어 한국에는 이영훈 / 이문세 조합 4집, 5집으로 통칭할 수 있는 80년 대 정서란 유산이 있다. 눌러적은 가사와 서정으로 대변되는 목소리, 한 겹의 실루엣을 더 가지고 있는 작법 같은 것. 때로 사람들은 그런 유산이 과거로만 머무르고 있는 상황을 아쉬워하기도 하였는데 이때 등장한 이들이 2010년대 최정훈의 잔나비였다. 이들은 옛 정서를 정확하게 갈무리한 후, 자신의 음악을 현시점의 언어로 제대로 표현해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어떤 부분에 더 끌리는지를 기꺼이 보여준다.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에서 창공을 향해 울려 퍼지는 피날레는 실로 그가 기댄 정서에 대해 감사함을 표현하는 오마주라고 봐도 될 것이다.

그렇게 현재의 시간을 살아가는 와중 우리가 과거의 문법을 진정성 있게 확인하게 되는 순간은 꽤 중요하다. 현재의 새로움을 끊임없이 모색하는 것 못지않게, 소중한 어떤 것이 시간에 이지러 지지 않는 것은 내가 항상 원하는 그림이다. 예술을 향유한다는 것은 이런 순간을 일상에서 한 번이라도 더 마주하게 되는 기회와 같아 늘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그런 비슷한 감정을, 고풍스런 목소리로 노래하는 어느 젊은 미국 여성 뮤지션에게서 다시 느낄 줄은 생각도 못했다.  


Weyes Blood 와이즈 블러드 라고 한다. 지혜로운 피?  혈통?

뭔가 성스럽고 목가적인 예명을 선택한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동안 만약 당신이 과거의 어떤 누군가를 떠올린다면 그게 맞다. 굳이 특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녀의 목소리가 2010년대 젊은 여가수가 부르는 창법과 거리가 멀다는 것은 확실할 테니. 그리고 무엇을 연상하든 그녀의 고전적인 목소리가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서서히 젖어드는 피날레가 심장을 벅차게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이 전략이 단순한 복고를 선택한 가벼움이 아니란 것은 그녀가 그간 이어 온 앨범들의 발자취를 보면 알 수가 있다. 초창기 좀 더 어두운 팝으로 시작했던 여정은 2016년 [Front Row Seat to Earth]를 지나며 현재의 얼개를 완성해 간 것으로 보인다. 이젠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음악을 할 때 평안함을 느끼는 지를 알아가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이 고리를 계속 다듬어간다. 그리고 2019년 마침내 [Titanic Rising] 앨범으로 현명한 이정표를 찍게 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떤 옛 정서가 현시점에도 아름답게 빛난다는 것을 새삼스레 알게 된 기쁨이었을까? 이후 꽤 많은 이들이 그녀의 이 결과물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다. 물론 나 역시 이 대열에 합류할 수 있게 된 것이 행복하기만 하다.


앨범의 곡들은 개별로도 예스럽게 아름답지만, 전체에서 부분으로도 잘 기능한다. 자켓부터 곡의 배치, 음악의 정서까지, 앨범 전체의 컨셉을 가지고 작업을 했다는 것을 단박에 느낄 수 있다. 마지막 곡이 수미쌍관으로 다시 처음의 정서를 환기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앨범 단위로 음악을 듣는 나로서는 이런 부분이 무척 반갑기만 하다.

특히, 음악은 멜로디 작곡에서 극히 빛난다. 이런 고색 찬란한 멜로디와 목소리를 2019년에 들을 줄이야 라니.... 누구나 깜짝 놀라지 않았을까 싶다. 마치 오래된 가죽 가방을 시간의 퇴적을 건드리지 않은 채 리폼해서 재탄생시킨 것만 같다. 그럼에도 음악이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은 보다 다채롭다. 작은 미세한 소리들이 온 방안을 떠다니고 있다. 팝 적인 것 같으면서도 다른 음악적인 구조를 보여주니 그녀만의 유니크한 앨범이 탄생한 것이다.

앨범은 막 서른을 시작하는 여성이 가질 법한 설레고 동시에 불안한 정서를 기저에 깔고 있다. 앨범 자켓을 보면 수면 밑 깊은 곳에 침잠하고 있는 그녀가 무언가를 얘기하고 싶은 눈빛이다. 신디사이저의 잔물결이 때론 불안하게 흔들리는 가운데에서도 그녀의 의연한 목소리가 공간을 채워 나간다. 결국 발돋움을 하여 수면 우로 올라서야 하겠지만 그 자리에 머물르고 싶기도 하다. 물은 때론 죽음과도 같지만 너그러운 어머니의 양수와도 같다. 앨범을 들으며 상반되는 두 가지의 질문이 계속해서 흐른다. 슬프면서도 기쁘고, 쓸쓸하면서도 우아하고, 흐르다가도 멈추게 되는. 앞에 남겨진 미래와 뒤로 나아갈 과거와 같은.

현 시대 굉장히 드문 표현법을 활용하여 이토록 찬란하게 성취한 앨범이기에 한참을 곱씹었었다. 그리고 그녀는 코로나를 관통하며 2022년 또 다른 아름다움으로 우리에게 다가왔으니 현재 진행형인 그녀를 충분히 얘기해 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앨범을 시작하는 곡을 넣어 보았지만 알다시피 모든 곡이 빛을 굴절하고 있다.

나도 함께 흔들린다.

그리고 마지막 곡이 끝난 순간 어슴푸레 무언가 솟아오르는 것을 본 것도 같다



Weyes Blood [Titanic Rising] 2019년 <A Lot’s Gonna Change>

https://youtu.be/7OrVUk61wHE?si=0OiOIfVHRN7qwg5s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너의 푸른 새벽을 알고 있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