쎈 척과 진짜 깡

상호 존중의 관계 분위기 조성을 위하여

by 날개

인간관계의 복잡한 영역에서 우리는 비자발적으로 어쩔 수 없이 단호한 모습을 보여야 할 때가 종종 있다. 이러한 자질은 '강함' 혹은 '강단'이라는 모호한 자질과 뒤섞여 사용되기도 하는데, 어느 정도 선에서 표출되어야 적정한 수준인지도 처한 상황과 상대방에 따라 아주 다양할 수 있다.


목소리의 크기, 얼굴 표정의 근육까지 동원하여 '깡'을 표출해 줘야 강함을 인정하는 사회는 상호 존중과 합리성이 지배하는 이상적인 관계를 허락하지 않는 사회이므로, 매우 척박하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작동하는 갑을 관계나 서열 구분은 생존을 위해 일종의 동물적인 '아우라'를 필요로 하게 만들며, 결국 남에게 보이는 강단이 개인의 생존력에 중요한 변수가 된다는 유감스러운 상황을 부인할 수 없다.


'깡'은 표준어가 아닌 속어인데, 이 말의 어원은 '강단'이 '깡다구'로, 다시 '깡'으로 변형되어 오늘날에 단단한 마음, 오기, 배짱 등을 의미하는 말로 굳어졌다고 추정된다고 한다. 사실 깡의 본질은 단순히 물리적인 힘이나 표면적인 공격성이 아니라, 어떤 위협 앞에서도 스스로를 지탱하고 버텨내는 내면의 회복력과 결단력이다.


구분해야 할 것은, '깡패'의 '깡'은 어원상 '강단'을 뜻하는 '깡'이 아니고 '갱'(gang; 패거리)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직폭력배의 행동 양식에서 나타나는 무모하고 악착같은 '깡' 때문에 개념적으로는 깊은 연관성을 가진다. 아무튼, '자신감'(confidence)이 자기 능력에 대한 믿음이라면, '배짱'(guts)이나 '배포'(grit)는 손실을 감수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용기로서, 깡은 그 모든 것을 포괄하는 말로 쓰인다. 깡은 결국 승부가 아닌 "버티는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이 복잡한 정서를 이해하기 위해, 깡과 감수성의 매트릭스 속에서 네 가지 인간 유형을 탐색하도록 한다.


첫 번째 부류는 깡 있는 척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사실상 실제 자신감의 부족과 이용당할지 모른다는 불안에 뿌리를 둔다. 강한 척은 그들에게 있어 과거 무시당한 경험이나 사회적 압박에서 비롯된 약함이 낳은 갑옷과 같다. 이들은 인정 욕구가 강하며, 외피를 두껍게 만들어 방어하지만, 그 마음은 매우 약하다. 이들의 말투는 거칠고 눈빛은 경계하며, 모든 에너지를 방어와 허세에 소진하기 때문에, 정작 진짜 위기가 닥쳤을 때 가장 먼저 무너지고 만다. 허세는 두려움이 만들어낸 소음이며, 이 소란스러움 때문에 이들은 스스로의 약점을 타인에게 노출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인다.


두 번째는 진짜 깡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강함은 보여주기 위한 외연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체득된 내성이다. 이들은 허세가 없으며 조용하고 침착하다. 강함이 외부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목소리를 높이거나 과시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이들은 평생 스스로의 힘으로 버텨온 경험을 통해, "여차하면 다 잃어도 스스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라는 감각을 내면화했다. 실패, 상실, 굴욕을 견뎌본 기억이야말로 이들을 지탱하는 진정한 배포이다. 무너질 위기 앞에서 무너지지 않은 기억이 그들에게 인내와 침착을 가르쳤으며, 이들이야말로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싸우지 않는다.”는 격언의 산 증인이다. 그들의 강함은 타인을 이기는 데 있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능력에 있다.


셋째는 가장 흥미롭고,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유형인 깡이 있으면서 마음이 여린 사람들이다. 이들은 외적 생존력과 내적 감수성이 균형 있게 공존하는 인간형이다. 기본적으로 따뜻하고 공감 능력이 풍부하며 감정이 섬세하지만, 동시에 필요할 때는 단호하게 선을 긋고 물러서지 않을 단단한 멘털을 갖추고 있다. 이들에게 강함은 공격이 아니라 타인을 해치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지키는 경계이며, 여림은 약함이 아니라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성찰이다. 이들은 부드러움 속에 날을 감춘 채, 인간의 선함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세상에 밀리지 않는다. 이들은 “착하지만 바보가 아니다.”라는 문장을 가장 정확하게 구현하며, 평온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끝까지 갈 배짱도 있는 감수성과 강인함의 기묘한 공존이 그들의 특유한 힘이 된다.


마지막으로, 가장 위험한 유형이 존재한다. 이들은 깡이 없으면서 강한 척하고, 동시에 감수성도 없는 사람들이다. 이 유형은 자기감정조차 이해하지 못하며, 타인과 연결할 공감 능력이 전무하다. 그들은 약자를 밟아 자기 힘을 확인하고 배움을 얻으려는 최악의 패턴을 반복한다. 겉으로는 호기를 부리며 무리끼리 허세를 부리지만, 진정한 위기가 닥치면 가장 먼저 무너지는 비겁함의 후방화된 형태이다. 폭력성은 이들의 비겁함을 감추는 수단일 뿐이며, 감수성의 부재는 성장의 문을 닫아버린 무감각을 의미한다. 강함을 흉내 내는 동안 진정한 강인함이 무엇인지는 깨닫지 못하며, 그들에게 남는 것은 타인을 다치게 한 공허한 오기뿐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강함을 외연으로 판단하고 오해하는 경향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네 유형의 내밀한 풍경은 우리에게 강함이 목소리의 굵기나 말투의 공격성에 있지 않음을 깨닫게 한다. 진정한 깡의 본질은 두려움을 기반으로 한 허세가 아니라, 상실과 굴욕 속에서 스스로를 지탱해 본 경험을 기반으로 한다. 강함은 타인을 누르는 데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켜내고 타인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존엄을 유지하는 데서 비롯된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세게 보이는 법이 아니라, 남을 다치게 하지 않고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조용한 힘이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관계 속에서 오랫동안 평온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강인함의 진정한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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