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불안한 법치주의의 현실

칼 슈미트의 경고

by 날개

세계 곳곳에서 포퓰리즘이나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전염병이나 전쟁과 같이 예측 불가능한 '비상사태'가 빈번해지는 요즘의 시대에서, 우리는 '법치주의'라는 믿음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직접 목격하고 있다. 법과 규칙이 사회를 안정적으로 이끌어갈 것이라는 우리의 믿음은, 때때로 강력한 지도자의 '결단' 앞에서 아주 쉽게 무력해지곤 한다.


20세기 초 독일의 법학자였던 '칼 슈미트'(Carl Schmitt, 1888-1985)는 '법결단주의자'(dezisionismus)로 잘 알려져 있는데, 논란 많은 그의 이론이 지금의 혼란의 시기에 다시 한번 주목받는다. 그의 이론은 민주주의와 법치라는 '규칙'이 무너지는 '예외'의 순간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그는 법치주의의 근본적인 한계를 지적하고, 궁극적인 권력은 '예외적인 상황'에서 법을 넘어선 결정을 내리는 '주권자'(sovereign)에게 있다고 주장했는데, 그의 이론을 후크 교수의 해제를 통하여 살펴보고, 작금의 우리나라의 상황에 비춰본다.


슈미트 이론의 가장 핵심적인 주장은 "주권자는 예외를 결정하는 사람"이라는 명제에 담겨 있다. 그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법치주의(rule of law)가 사실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법은 전쟁, 대형 재난, 혹은 극심한 경제 위기와 같은 예상치 못한 '비상사태'(ausnahmezustand)를 모두 포괄할 수 있는 일반적인 규칙의 체계가 아니므로, 이러한 예외적 상황이 발생했을 때, 법을 초월하여 "실제로 비상사태인지, 비상사태라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궁극적인 힘, 즉 '주권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주권자의 '결단'은 문서화된 법이나 도덕적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듯 내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유의해야 것은 슈미트에게 주권자는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존재가 아니라, 법이 마비되는 '비상사태'에 궁극적인 결단을 내리고 질서를 재확립하는 구체적인 권력 행사자로서, 이는 당시의 위임받은 통치자(독재자를 포함)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에 따르면 결국 법질서는 주권자가 예외를 선포하지 않고 '규칙을 지키겠다'고 결정할 때만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법이 스스로 작동하는 자율적인 기관이라는 자유주의적 이상은 허구이며, 법은 주권자의 권위에 의존한다는 것이 슈미트의 핵심 주장이다. 이와 연결하여 슈미트에게 정치는 단순히 의견 차이를 조정하는 협상이 아니라, 공동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실존적 적'(existential enemy)과의 "적극적이고 치명적인 갈등의 문제"라고 말한다. 즉, 정치는 적을 규정하는 행위이며, 주권자는 그 규정 행위를 통해 법적인 제약을 넘어서는 자신의 궁극적인 권위와 존재 이유를 증명하게 된다는 것이다.


슈미트의 이론은 그가 1933년 나치당에 입당하여 히틀러의 폭력적인 조치와 인종법을 정당화하는 데 앞장섰다는 역사적 사실 때문에 깊은 도덕적 논란에 휩싸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크 교수는 슈미트의 법치주의 비판이 현대에도 중요한 영향력을 지닐 수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슈미트의 주장은 법치주의의 가장 취약한 지점을 정확히 짚어내는데, "법치주의의 적들이 정치적 권력을 획득하고 그 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권위에 대한 법적 제약을 해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지적하며, 문서화된 법 시스템으로는 이러한 가능성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다고 보았다. 법 시스템은 결국 정치적 헌법이라는 기반 위에 서 있으며, '현실에서의 정치적 합의'와 '책상 위의 법' 사이에는 언제나 파열의 위험이 존재한다는 핵심을 지적한다. 즉, 법을 너무 믿은 나머지, 법을 무력화할 수 있는 정치적 힘의 존재를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무거운 '경고'를 날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비상사태가 잦아지고 포퓰리즘적 리더십이 부상하는 대한민국의 법적 규제 환경에도 중대한 시사점을 던진다. 한국은 냉전의 잔재가 아직 남아있는 분단상황에 있어 전쟁과 같은 비상사태에 취약하며, 정치세력 간의 이념 논란으로 계엄령이 선포되기도 하였다. 또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신기술 규제, 대형 재난 발생 시 '규제 샌드박스'나 특별법의 형태로 기존 법규를 유연하게 적용하거나 일시적으로 무효화하는 조치를 취해 오기도 했다. 이는 슈미트가 말한 '예외를 결정하는 주권자(이를 위임받은 정부나 국회)'의 결단이 '일반 규칙(기존 법률)'을 쉽게 넘어서는 순간을 보여준다. 이는 아무리 정교한 법규를 만들어도 팬데믹이나 심각한 안보 위기 같은 '치명적인 충격' 앞에서는 법의 효력이 일시적으로 무력화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이를 대비해야 함을 시사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슈미트의 이론이 나치즘을 정당화했던 것처럼, '예외'를 빌미로 한 결단이 독재나 폭압적인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논리로 이어지는 위험한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튼, 슈미트의 이론은 우리에게 법치주의의 이상을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대신, 법의 시스템이 언제든 강력한 '정치적 결단'에 의해 도전받을 수 있는 취약한 구조 위에 서 있다는 점을 냉철하게 인식하도록 촉구한다. 그의 이론은 법치주의의 취약점을 간파하고 '법의 무력화'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게 함으로써, 21세기 비상사태 시대의 규제와 법 집행이 갖는 근원적 정치성을 되새기게 하는 강력한 성찰적 도구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법을 수호하기 위해서 법의 한계를 정확히 알아야 하며, '예외적 상황'을 이유로 한 권력의 남용을 견제할 수 있는 "무엇"이 절실히 필요하다. 법은 평온한 일상을 지키는 튼튼한 방파제이지만, '예외'라는 해일이 닥쳤을 때 권력이라는 고양이는 시민의 '생선'을 모두 가로채 갈 수 있다. '예외적 상황'을 이유로 한 권력 남용에 맞서는 길은 결국 '감시와 불신'이라는 견제에 있다고 하지만, 그마저 무너질 때는 이에 대비한 시민의 정치적 의지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무거운 책임감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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