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그나 카르타의 신화와 현실

마그나 카르타에 대한 후크 교수의 비판적 고찰

by 날개

영미 법률 전통에서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 1215)는 종종 법치주의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중요한 효시(嚆矢)로 숭상된다. 특히 헌장의 제39조에서는 봉건 계급상 동등한 지위의 사람들의 합법적인 판단이나 해당 국가의 법률에 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개인의 투옥이나 왕의 강압을 제한하고 있는데, 이는 휴고 블랙(Hugo Black) 판사와 같은 법률가들에 의해 '적법 절차'(due process)의 기원으로 찬양받아 왔다. 그러나 후크 교수는 마그나 카르타를 법치주의의 시원(始原)으로 보는 것은 너무나 단순하고 신화적인 해석이라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실제 마그나 카르타의 역사적 맥락과 영향력은 이러한 현대적 해석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그 상징적 지위는 후대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재구성된 산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점을 역사적 사실을 통해 설명한다.


이 헌장은 영국 왕 '존'(King John)과 그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킨 남작들 사이의 정치적 거래를 기념하기 위해 제정되었는데, 이는 왕권에 대한 제한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역사적 연속선 상에 있었다. 이미 앵글로색슨 왕들도 자신의 미덕을 알리고 국가의 평화를 증진하기 위해 일련의 헌장을 발표해 왔으며, 국왕의 권한은 대관식 선서에서도 오랫동안 암시되어 왔다고 여겨져 왔다. 마그나 카르타는 이러한 널리 공유된 무언의 이해를 공식화한 것 중 하나에 불과했으며, 근본적으로 왕권에 대한 새로운 혁명적 제한을 가한 문서가 아니었다. 더욱이 이 헌장은 제정된 지 불과 몇 달 후인 1215년 9월이 되자마자 사실상 '죽은 문서'(dead document)로 전락했으며, 그 실제적인 법적 효력이나 영향력은 미미했다.


마그나 카르타가 다시 소환되어 신화화된 것은 160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이 시기는 왕권의 절대적인 권위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며 폭력적인 헌정 발효가 난무하던 시기였으며, 당시의 정치적 위기를 극복할 법적 위안이 절실했다. 이때 판사였던 '에드워드 코크'(Edward Coke)는 영국 법률사에 대한 새로운 버전을 제시하며 마그나 카르타의 지위를 격상시켰다. 코크는 왕이나 왕실로부터 내려온 규칙(왕실 헌장)이었던 마그나 카르타를, 공동체로부터 비롯된 관습법(common law)으로 잘못 규정했다. 이후 1760년대에 영향력 있는 법학자인 '윌리엄 블랙스톤'(William Blackstone)은 이러한 코크의 주장을 따라 마그나 카르타를 "원시 영국인만큼이나 오래된, 변하지 않고 순수한" 고대 법(ancient law)의 일부로 해석했다. 비록 이는 명백히 잘못된 역사였지만, 왕의 권위가 치명적인 의심을 받던 정치적 순간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며 마그나 카르타를 주권 권력에 대한 법의 영원한 승리를 상징하는 문서로 둔갑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실질적인 관점에서 볼 때, 마그나 카르타는 주권 권력에 대한 법의 초월적 승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 문서는 명백히 왕과 귀족들이 대다수 봉건 인구에 대한 지속적이고 수익성 있는 착취를 보장하기 위해 체결한 극히 정치적인 협상 문서였다. 헌장의 어느 부분도 그것이 인구 전체에게 보편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암시하지 않았으며, 봉건 질서의 테두리 안에서 왕과 남작의 권리를 조정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더욱이 마그나 카르타에는 그 자체의 시행을 위한 구제책이 존재하지 않았고, 이는 향후 왕과 남작 간의 분쟁에서 단순히 하나의 협상 카드로 활용될 수 있는 도구적인 성격이 강했음을 보여준다. 마그나 카르타가 주권 권력에 대한 법의 우위를 상징하는 위대한 헌법적 문서로 기능했다는 인식은 역사적 실체보다는 후대의 필요에 의해 덧씌워진 신화의 옷이라 할 수 있다.


가장 신성시되는 제39조 조차도 '적법 절차'나 '공정한 재판권'의 모태가 아니었다. 이러한 현대적, 보편적 덕목들은 17세기에 이르러서야 등장했으며, 이후 코크와 그의 계보를 잇는 법률가들에 의해 마그나 카르타라는 상상의 법적 과거 속으로 다시 읽히고 투영된 것이다. 즉, 법치주의와 적법 절차를 확립하고자 했던 후대 사람들이 그들의 이념적 필요에 따라 1215년의 헌장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것이지, 헌장 자체가 그러한 이념을 처음부터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마그나 카르타의 위상은 실질적 효력이 아니라, 왕권에 대한 투쟁이 절실했던 순간에 위안과 정당성을 제공하는 상상의 역사적 뿌리로서 기능함으로써 확립되었다.


후크 교수의 이와 같은 분석은 현대 법치주의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마그나 카르타의 사례는 법적 문서의 의미가 고정불변이 아니라, 시대의 정치적, 이념적 맥락에 따라 끊임없이 해석되고 재구성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특정 법이나 헌법적 원칙을 '고대부터 내려온 불변의 진리'로 숭배할 때, 그것은 종종 과거의 실제 역사라기보다는 현재의 필요에 의해 구축된 신화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는 곧 법치주의의 진정한 가치가 과거의 영광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시민적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이성적인 논쟁과 제도적 설계를 통해 법을 다듬고 적용하는 능동적인 과정에 있음을 일깨워준다. 법치주의는 역사의 유물이 아니라, 자의성과 열정을 제어하려는 현대의 지속적인 노력에서 그 정당성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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