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끄러운 비탈길에서 무너지지 않기

규제에 대한 신중한 접근과 그 한계 설정의 중요성

by 날개

'미끄러운 비탈길 논쟁'(slippery slope argument)은 어떤 행동 A를 허용하면 결국 통제력을 상실한 채 B, C...로 일련의 연쇄 반응을 거쳐 도달해서는 안 될 최악의 결과 Z에 이르게 된다고 경고하는 논증 방식이다. 이는 흔히 논리적 오류, 즉 A와 Z 사이의 인과적 필연성이 경험적으로 입증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감정적 공포를 유발하여 정책의 변화를 막으려는 수사적 장치로 비판받는다. 그러나 이 논증은 특정 근본적인 가치나 제도의 훼손 가능성이 높을 때, 그 초기 단계를 방어하기 위한 신중하고 합리적인 정책적 경고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생명 윤리 논쟁에서 안락사의 합법화가 결국 비자발적 안락사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나, 사소한 규제가 시민의 자유를 위협하는 전체주의로 변질될 것이라는 정치철학적 경고 등이 이 논쟁을 활용한다.


이러한 미끄러운 비탈길 논쟁이 가장 첨예하게 맞서는 영역 중 하나는 바로 언론의 자유이다.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기본권으로, 정부의 권력 남용을 감시하고 건전한 공론장을 형성하는 필수 조건이다. 워버턴 교수는 이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는데, 언론의 자유에 대한 '거의 모든 축소는 반대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정부가 이러한 기본적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허용하는 순간 그것이 '거의 필연적으로 전체주의로 끝나는 미끄러운 비탈길을 내려가는 것'이라는 인식에 기반한다고 말한다. 이 논쟁은 언론의 자유를 보존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궁극적인 이점이 바로 전체주의 체제로의 추락을 방지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권리장전과 같이 헌법적으로 자유를 보장하는 강력한 장치가 부족한 국가일수록, 정부의 사소한 검열 능력조차 장기적으로는 통제 불가능한 언론 탄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강한 동기가 된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주장의 맹점도 동시에 지적한다. 언론의 자유를 조금 축소하는 것, 예컨대 국가 안보를 위해 정부가 일부 정보를 제한한다고 해서 이 민주 정부가 필연적으로 전체주의로 변모할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는 발뒤꿈치를 파고들어 '여기서 더 이상은 안 된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경계가 존재하는가에 대한 경험적 질문이다. 즉, 경사면의 미끄러움이나 가파름은 상황에 따라 다르며, 민주주의 사회가 이미 완전한 언론의 자유가 보호되는 상태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주의로 치닫지 않는 사례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미끄러운 비탈길 논증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초기 단계의 규제가 결국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개연성이 높다는 경험적 증거가 필요하다.


실례로, 영국에서 2005년 국회의사당 주변 시위를 금지하는 법(중대 조직범죄 및 경찰법)이 시행된 사례는 이 논쟁의 실질적인 위험성을 보여준다. 워버턴은 이 법이 처음에는 1킬로미터 이내의 시위 금지 구역을 설정했지만, 이러한 선례가 만들어지면 이 제외 구역을 2킬로미터, 3킬로미터로 확대하거나, 다른 잠재적 테러 표적 근처에 유사한 법을 시행하는 것이 훨씬 쉬워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여기서 미끄러운 경사면은 전체주의라는 궁극의 파국으로 이어지지는 않더라도, 시민들의 정치적 항의와 표현의 자유라는 핵심적 권리를 점진적으로 억압하고 희석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설득력을 가진다. 이러한 점진적 법률의 발의와 확장을 어렵게 만드는 '헌법적 장치'의 가치가 바로 이 논쟁의 핵심 보호 수단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언론 자유와 규제에 대한 미끄러운 비탈길 논쟁은 최근 한국에서 첨예하게 논의되었던 '가짜뉴스(허위 조작 정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논의와 연결된다. 가짜뉴스가 사회적 불신을 증폭시키고 선거에 개입하여 민주주의를 훼손한다는 문제의식 하에, 언론의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한 허위 보도에 대해 일반적인 손해액의 몇 배에 달하는 징벌적 배상액을 부과하자는 언론중재법 개정 법안이 발의된 바 있다. 이 법안에 대한 반대론은 정확히 미끄러운 비탈길 논쟁의 구조를 따른다. 즉, '피해자 구제'라는 정당한 목적으로 시작된 징벌적 배상제가 일단 도입되면, 권력자가 자신에게 비판적인 보도를 '허위 사실'로 간주하여 과도한 소송을 제기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으며, 이는 결국 언론사들이 권력 감시나 비판적 보도를 스스로 위축하게 만드는 '냉각 효과'(chilling effect)'를 낳아, 궁극적으로 언론 자유의 위축이라는 부정적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경고이다.


결론적으로, 미끄러운 비탈길 논쟁은 '규제는 반드시 파국을 낳는다'는 단순한 숙명론이 아니다. 이 논쟁은 '초기 규제가 후속 규제를 낳는 문턱을 낮추어 중요한 자유를 침식할 개연성이 있는가'에 대한 신중한 검토를 요구하며, 이는 곧 민주주의의 방벽(防壁)을 어디에 세울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다. 우리나라의 가짜뉴스 규제 논쟁에서 보듯이, 명예와 프라이버시 보호와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가 충돌할 때, 우리는 규제가 권력에 대한 비판을 억압하는 도구로 변질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규제 원칙과 명확한 법적 경계를 확립해야 하는 절박한 과제에 직면한다. 미끄러운 비탈길 논쟁은 우리에게, 자유를 제한하는 모든 첫걸음은 가장 파국적인 결과까지 염두에 두고 가장 신중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영원한 경고등이자, 자유의 수호자들이 절대 물러서지 않아야 할 최후의 선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엄중한 사유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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