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성 원칙의 확립과 부작용의 경계

Verizon v. Trinko 판결: 본 렌퀴스트 법원의 반독점 철학

by 날개

1980년대 시카고학파의 법경제학적 훈풍을 타고 재편된 미국 사법부의 보수적 기조는 21세기 초반, 연방대법원의 기념비적 판결을 통해 그 정점에 도달했다. 2001년 마이크로소프트 사건이 항소심 차원에서 기술 혁신의 가치를 인정하며 규제 완화의 서막을 알렸다면, 2004년 연방대법원이 내린 Verizon Communications Inc. v. Law Offices of Curtis V. Trinko, LLP, 540 U.S. 398 (2004) 판결은 독점 기업의 권리와 시장의 자율성에 관한 사법적 확신을 종결지은 사건이다. 윌리엄 허브스 렌퀴스트(William Hubbs Rehnquist, 1924-2005) 대법원장이 이끌던 당시 대법원은 이 판결을 통해 '소비자 후생'과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잣대가 반독점법 해석의 절대적 기준임을 천명했다.


트린코 사건의 발단은 1996년 제정된 미국 통신법(Telecommunications Act of 1996)에서 비롯된다. 당시 미 의회는 통신 시장의 독점을 해소하기 위해 기존 사업자인 버라이즌(Verizon)이 후발 경쟁사들에게 자신의 네트워크 시설을 의무적으로 임대하도록 강제했다. 그러나 커티스 V. 트린코(Curtis V. Trinko) 법률사무소는 버라이즌이 경쟁사 고객들에게 제공되는 서비스 연결을 고의로 누락하거나 지연시켰다며, 이것이 셔먼법(Sherman Act) 제2조에 위반되는 독점 유지 행위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특정 산업의 특별법(통신법) 위반 행위가 동시에 일반 반독점법(셔먼법) 위반으로 처벌될 수 있는지, 그리고 독점 기업이 경쟁자에게 자신의 자산을 공유하지 않는 거래거절이 위법인지에 집중되었다.


이 사건의 주심 대법관인 앤터닌 그레고리 스칼리아(Antonin Gregory Scalia, 1936-2016)는 시카고학파의 핵심 논리를 사법 언어로 완벽하게 구현해 냈다. 스칼리아 대법관은 판결의 서두에서 독점 그 자체에 대한 도덕적 비난을 거부했다. 그는 "독점력을 획득하거나 독점적 이익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는 자유시장 경제 체제에서 투자와 혁신을 이끌어내는 핵심 동력"이라고 선언했다. 즉, 기업이 높은 가격을 책정하거나 시장을 지배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악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기업들이 그 이익을 뺏기 위해 더 나은 혁신을 하게 만드는 유인책이라는 것이다. 이는 시장의 자기 교정 능력을 신뢰하는 렌퀴스트 법원의 보수적 철학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판결의 가장 중요한 법리적 기여는 독점 사업자의 거래거절에 대한 엄격한 제한이다. 원고인 트린코 측은 독점 사업자가 필수적인 시설을 경쟁자에게 제공하지 않는 것은 반칙이라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스칼리아 대법관은 법원이 기업에게 거래를 강제하는 행위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만약 법원이 독점 기업의 인프라를 경쟁자와 나누라고 명령한다면, 기업들은 스스로 인프라를 구축하려 노력하기보다 법에 의존해 '무임승차'하려 할 것이며, 이는 장기적으로 시장 전체의 투자 의욕을 꺾어 소비자 후생을 저해한다는 논리다. 법원은 이를 '필수 설비 이론'(essential facilities doctrine)의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방식으로 표현했다.


또한 렌퀴스트 법원은 사법부의 한계를 스스로 인정하는 '사법적 절제'를 강조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시장의 경쟁 상태를 일일이 감시하고 적정한 임대 가격을 책정하는 것은 법원의 영역이 아니며, 오판할 경우 시장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줄 수 있다. 특히 이미 통신법이라는 행정적 규제 체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반독점법이라는 '거친 칼'을 중복해서 휘두를 필요가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었다. 이는 "규제가 없는 것보다 잘못된 규제가 더 해롭다"라는 규제 완화 기조의 핵심을 찌르는 판단이었다. 결과적으로 대법원은 버라이즌의 행위가 반독점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결하며 원고 패소를 확정 지었다.


트린코 판결은 2001년 마이크로소프트 사건 이후 형성된 규제 완화의 흐름을 대법원 차원에서 법적 공식으로 굳힌 사건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사건이 기술적 결합의 효율성을 인정했다면, 트린코 사건은 독점 기업이 경쟁자를 돕지 않을 권리, 즉 '배타적 경쟁의 자유'를 승인했다. 이로써 미국 반독점법은 기업의 규모나 독점적 행위 그 자체보다는, 그 행위가 명백하게 소비자 가격을 올리거나 품질을 떨어뜨리는지 여부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이러한 기조는 이후 20년 동안 구글, 아마존, 애플과 같은 거대 플랫폼 기업들이 독점 논란 속에서도 사법적 제동 없이 거대하게 성장할 수 있는 법적 토대가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렌퀴스트 법원과 소비자후생의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