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수호와 독점 규제 사이의 사법적 조율

CJEU Bronner 판결이 확립한 필수불가결성 원칙과 기업가적 자유

by 날개

유럽 경쟁법의 역사적 장정에서 1995년의 Magill 판결은 유럽 사법재판소(CJEU)가 물질적 상품의 시대를 넘어 무형의 정보와 지식권력이 지배하는 시대로 나아갔음을 알린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당시 CJEU는 법적 권리라는 이름 뒤에 숨은 독점의 탐욕을 꿰뚫어 보았으며, 소비자의 선택권과 시장의 역동성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지식재산권의 성역에 칼을 댔다. 하지만 이러한 사법적 결단은 곧 거센 반론에 직면했다. 기업이 막대한 자본과 위험을 감수하며 구축한 인프라나 지적 자산을 경쟁자가 손쉽게 공유하도록 강제한다면, 장기적으로 시장의 투자 유인이 고갈될 것이라는 법경제학적 우려였다. 이에 CJEU는 1998년 Oscar Bronner GmbH & Co. KG v Mediaprint (Case C-7/97) 판결을 통해 사법적 개입의 엄격한 경계선을 설정하며 '절제의 미학'을 보여주었다.


브로너 사건의 무대는 오스트리아의 신문 유통 시장이었다. 당시 소규모 일간지 발행인이었던 오스카 브로너는 오스트리아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거대 미디어 그룹 미디어프린트가 구축한 전국적 신문 홈 딜리버리 네트워크에 자신의 신문을 끼워 배달해 달라고 요청했다. 미디어프린트가 이를 거절하자 브로너는 해당 배달망이 시장 진입을 위한 '필수설비'이며, 거절 행위 자체가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이라고 주장하며 소를 제기했다. 이 사건은 마길 판결이 열어젖힌 '강제 접근권'의 논리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시험대였다.


CJEU는 판결문에서(para. 41) 마길 판결의 법리를 재확인하면서도 이를 적용하기 위한 요건을 극도로 정교화했다. 재판소는 단순히 어떤 설비가 사업 운영에 '유리하다'거나 '효율적이다'라는 이유만으로는 지배적 사업자의 재산권을 침해할 수 없음을 명확히 했다. 법원이 제시한 이른바 '브로너 테스트'의 핵심은 필수불가결성(indispensability)의 입증에 있었다. 해당 서비스나 설비에 대한 접근 거절이 요청자의 시장 내 모든 경쟁을 제거할 가능성이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그 설비를 복제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다(para. 43).


특히 CJEU는 브로너가 주장한 배달망의 독점성을 매우 좁게 해석했는데, 브로너가 비록 홈 딜리버리망을 갖지는 못했지만 우편배달이나 가판대 판매와 같은 대체 유통 경로가 존재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설령 이러한 대체 수단들이 홈 딜리버리만큼 효율적이지 않더라도, 그것이 사업을 영위하는 데 '기술적, 법적, 또는 경제적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면 지배적 사업자에게 공유를 강제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praras. 44-45). 이는 사법부가 기업의 경영 자율성을 존중하면서도, 시장이 스스로 기능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지가 있다면 개입을 자제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브로너 판결에서 가장 빛나는 법리적 통찰은 '경제적 생존성'(economic viability)의 기준을 세운 대목이다. CJEU는 미디어프린트와 유사한 규모의 사업자가 독자적인 배달망을 구축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의 장애가 있어야만 필수설비로 간주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para. 46). 이는 특정 기업의 영세함이나 무능력을 구제하기 위해 경쟁법이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 전체의 구조적 봉쇄를 막기 위해서만 작동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운 것이다. 마길 판결이 '신제품 출현'이라는 명분으로 개입의 문턱을 낮췄다면, 브로너 판결은 그 문턱을 다시 높임으로써 혁신과 투자의 가치를 보호했다.


결국 CJEU는 미디어프린트의 손을 들어주었다. 브로너가 주장한 홈 딜리버리망은 경쟁을 위해 '유용한' 것은 맞지만, 그것이 없다고 하여 신문 발행 사업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이러한 사법적 절제는 유럽 경쟁법이 '강자의 책임'을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투자자의 권리'를 포기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가 되었다. 만약 법원이 브로너의 손을 들어주었다면, 이후 유럽의 기업들은 새로운 네트워크나 기술 인프라에 투자하기보다 경쟁자의 성과에 무임승차하려는 경향을 보였을지도 모른다.


브로너 판결은 마길 판결이 자칫 초래할 수 있는 '사법 만능주의'를 경계하면서도, 독점 기구가 시장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임계점만큼은 확실히 감시하겠다는 유럽 사법부의 균형 감각을 보여주었다. 단순히 유리한 정보나 편리한 망이 아니라, 물리적·법적으로 복제가 불가능하고 그것 없이는 사업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경우에만 사법부가 개입한다는 엄격성을 더함으로써 기업가적 자유와 투자 유인을 보호한 것이다. 이러한 브로너의 엄격한 법리는 훗날 디지털 플랫폼의 '데이터 접근권' 논쟁에서도 매우 중요한 기준점이 된다.


1995년의 마길 판결이 유럽 경쟁법의 영토를 무형의 지식으로 확장했다면, 1998년의 브로너 판결은 그 영토 위에서 사법부가 휘두를 칼의 깊이를 조절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이 두 판결의 상호보완적 논리는 이후 Microsoft (2007) 사건에서 운영체제의 상호운용성 정보를 공개하라는 명령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변주된다. 마길이 던진 화두를 브로너가 정밀하게 다듬고, 그것이 다시 거대 빅테크 규제의 논리로 이어지는 과정은 유럽 경쟁법이 얼마나 정교한 사법적 진화를 거듭해 왔는지를 증명한다.


결론적으로 1995년의 마길 판결은 유럽 경쟁법의 시야를 물질적 상품에서 무형의 정보와 지식으로 확장시킨 기념비적 사건이다. 사법재판소는 법적 권리라는 이름 뒤에 숨은 독점의 탐욕을 꿰뚫어 보았으며, 소비자의 선택권과 시장의 역동성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지식재산권의 성역에 칼을 댔다. 이 판결 이후 유럽 경쟁법은 구글의 검색 알고리즘, 애플의 앱스토어 정책 등 복잡한 디지털 생태계를 규율할 수 있는 강력한 논리적 무기를 갖게 되었다. 마길 판결은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정보의 개방성과 기술 간의 조화가 결코 우연이 아닌, 독점을 거부하는 사법부의 치열한 논리 투쟁의 결과물임을 입증하고 있다.


그리고 브로너 판결은 그 투쟁이 '공정'이라는 이름 아래 '혁신'을 질식시키지 않도록 지탱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사법부는 브로너를 통해 "경쟁은 보호하되 경쟁자는 보호하지 않는다"는 현대 경쟁법의 대원칙을 다시금 상기시켰다.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는 빅테크에 대한 유럽의 강력한 공세와 그에 따른 법적 공방들은 모두 1990년대에 세워진 이 마길과 브로너라는 두 기둥 사이에서 전개되고 있다. 혁명을 선언한 마길과 그 혁명의 질서를 확립한 브로너의 조화야말로 유럽 경쟁법이 가진 진정한 힘의 원천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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