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쥐의 게임

빅테크의 ‘악의적 준수’와 규제의 역설

by 날개

유럽연합에서 디지털 시장법(DMA)이라는 강력한 창이 만들어지자, 빅테크 기업들은 이를 방어하기 위해 더욱 정교하고 교묘한 방패를 깎기 시작했다. 법의 문구는 철저히 준수하되 법의 취지는 교묘하게 무력화하는 이른바 '악의적 준수'(malicious compliance)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는 규제 당국과 플랫폼 거인들 사이의 끝없는 '고양이와 쥐의 게임'으로 치닫고 있다. 규제가 구체화될수록 쥐는 더 좁은 구멍을 찾아 숨어들고, 고양이는 그 구멍 입구에 새로운 덫을 놓는 형국이다. 이 게임의 핵심은 빅테크가 규제의 '독소'를 피하기 위해 어떤 기술적·경제적 수법을 동원하고 있는지를 파헤치는 데 있다.


가장 대표적인 전장은 애플이 아이폰의 폐쇄적 생태계를 개방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벌어졌다. DMA는 애플에게 "자사 앱스토어 외에 제3자 앱스토어 설치를 허용하라"라고 명했다. 애플은 이를 수용하는 척하며 '핵심 기술 수수료'(Core Technology Fee, CTF)라는 기묘한 경제적 장벽을 세웠다. 외부 앱스토어를 통해 앱을 배포하더라도 연간 설치 횟수가 100만 회를 넘기면 건당 0.5유로의 수수료를 애플에 납부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이는 겉으로는 생태계를 개방한 듯 보이지만, 무료 앱이나 저가 앱을 배포하는 개발자들에게는 대박이 날수록 파산에 가까워지는 '독이 든 성배'를 건넨 것과 다름없다. 결국 개발자들은 경제적 자살을 피하기 위해 다시 애플의 통제권 안으로 발을 들여놓게 된다.


구글의 저항 수법은 더욱 시각적이고 심리적이다. 구글은 검색 결과에서 자사 서비스(쇼핑, 호텔 예약 등)를 상단에 노출하여 경쟁사를 배제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DMA 이후 구글은 자사 서비스 노출을 줄이는 대신, 검색 화면에 '비교 사이트'라는 새로운 단위의 UI(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도입했다. 하지만 이 새로운 화면 구성은 사용자가 원하는 정보에 도달하기까지 더 많은 클릭을 요구하는 '마찰'(friction)을 발생시켰다. 사용자가 피로감을 느껴 다시 구글의 기본 검색 결과나 자사 광고 링크를 클릭하게 만드는 고도의 심리적 설계다. 법적 의무인 '비차별'은 지켰으나, 사용자 경험(UX)을 복잡하게 꼬아놓음으로써 경쟁사로의 트래픽 유입을 기술적으로 차단한 셈이다.


메타(Meta)가 선택한 전략은 '권리의 유료화'다. 규제 당국이 사용자의 동의 없는 맞춤형 광고를 금지하자, 메타는 '지불하거나 동의하라(pay or consent)' 모델을 제시했다. 광고 없는 쾌적한 환경을 원한다면 매달 일정액의 구독료를 내고, 그렇지 않다면 데이터 수집에 동의하라는 이분법적 선택지를 강요한 것이다. 이는 개인정보 보호라는 기본권에 '가격표'를 붙임으로써, 경제적 약자일수록 자신의 데이터를 상납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구조다. 법적으로는 '사용자의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외피를 입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데이터 착취를 정당화하기 위한 교묘한 우회로에 불과하다.


이러한 빅테크의 저항은 단순히 법을 어기는 '불법'의 차원을 넘어선다. 이들은 규제 당국이 행위의 위법성을 입증하기 위해 다시 고통스러운 '효과 분석'의 늪으로 들어오기를 유도한다. 예를 들어 애플은 CTF 수수료가 "아이폰의 보안과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정당한 대가"라고 주장하며, 이것이 경쟁을 저해한다는 사실을 당국이 직접 증명해 보라고 요구한다. 규제를 피하기 위해 세운 기술적 장벽을 '혁신과 보안'이라는 프레임으로 포장하여, 사법적 논쟁을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려는 전략이다.


고양이인 규제 당국도 가만히 있지는 않는다. 유럽 집행위원회는 최근 애플과 구글, 메타를 상대로 DMA 위반 여부에 대한 전방위적인 조사를 개시하며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당국은 이제 "법 문구를 지켰는가"를 넘어 "법의 목적이 실현되었는가"를 묻기 시작했다. 즉, 외부 앱스토어가 허용되었음에도 실제 이용률이 0에 가깝다면, 그 형식적인 개방 자체가 위법이라는 논리다. 이는 빅테크의 '악의적 준수'에 맞서 규제 기관이 '실질적 준수'라는 더 높은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결국 이 고양이와 쥐의 게임은 디지털 시장의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에 대한 근본적인 싸움으로 수렴된다. 빅테크는 자신들이 구축한 기술적 제국을 지키기 위해 법의 틈새를 끊임없이 발굴할 것이고, 규제 당국은 그 틈새를 메우기 위해 더 촘촘한 그물을 짤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은 결국 소비자 후생의 정체나 혁신의 지연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 싸움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플랫폼이 공정한 규칙이 작동하는 '장소'가 아니라 누군가의 '사유지'로 남게 될 때 시장 경제의 역동성 자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글로벌 온라인 플랫폼 시장의 미래는 이 지루하고 치열한 게임의 끝에서 결정될 것이다. 사법부가 거대 플랫폼의 교묘한 기술적 방어 논리에 휘말리지 않고 공정성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안목을 갖추느냐, 그리고 입법부가 시장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는 유연한 대응 체계를 유지하느냐가 관건이다. 쥐는 끊임없이 도망칠 것이고 고양이는 끈질기게 추격하겠지만, 이 게임의 진정한 승자는 어느 한쪽이 아니라 그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공정한 기회를 얻게 될 수많은 혁신적 도전자들과 소비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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