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자기결정권과 조력자살의 기본권성

독일 연방헌법재판소 판결(2 BvR 2347/15)의 법리적 분석

by 날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2020년 2월 26일 선고한 조력자살 금지에 관한 위헌 결정(BVerfG, Judgment of the Second Senate of 26 February 2020 - 2 BvR 2347/15)은 인간의 존엄성과 자기결정권의 범위를 죽음의 영역까지 확장한 현대 헌법학의 획기적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 본 사건의 발단은 독일 연방의회가 2015년 신설한 독일 형법(Strafgesetzbuch, 1871년 5월 15일 제정) 제217조로부터 기인한다. 해당 조항은 타인의 자살을 도울 목적으로 반복적인 기회를 제공하는 행위, 즉 '영업적 조력자살(geschäftsmäßige Förderung der Selbsttötung)'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3년 이하의 투옥 또는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였다. 여기서 '영업적'이라는 용어는 이윤 추구뿐만 아니라 행위의 반복적 의사를 의미하며, 이는 조력자살을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단체와 이에 참여하는 의료진의 활동을 형사 처벌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입법적 의지의 산물이었다.


이러한 입법 배경에는 조력자살의 제도화가 자살을 사회적 정상 규범으로 고착시키고, 고령자나 중증 환자 등 취약 계층에게 '죽어야 한다'는 무언의 사회적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이른바 '미끄러운 경사면(Slippery Slope)' 이론에 근거한 생명 보호의 국가적 의무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본 조항이 시행됨에 따라 죽음을 앞둔 말기 환자들은 물론, 이들을 돕고자 했던 의사들과 조력자살 단체들은 자신들의 기본권이 중대하게 침해되었다고 주장하며 헌법소원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청구인들은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종결지을 권리가 인간의 존엄성에서 비롯되는 가장 원초적이고 인격적인 권리임을 강조하였고,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안드레아스 포스쿨레(Andreas Voßkuhle, 1963-) 당시 재판소장을 필두로 하여 조력자살 금지 조항의 위헌성 여부를 심층적으로 검토하였다.


헌법재판소는 먼저 독일 기본법(Grundgesetz, 1949년 5월 23일 시행) 제1조 제1항에서 보장하는 인간의 존엄성과 제2조 제1항의 일반적 인격권으로부터 '자결적 죽음을 선택할 권리(Right to a self-determined death)'가 도출된다고 판시하였다. 재판소는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과 존엄의 실현은 개인이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그 종결에 대해서도 자율적인 의사를 형성하고 집행할 수 있을 때 완성된다고 보았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러한 자결권의 행사가 반드시 말기 질환이나 불치병과 같은 객관적인 의학적 상태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재판소는 개인이 자신의 삶이 더 이상 살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는 주관적 기준은 국가나 타인이 간섭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며, 생명 보호라는 공익적 가치가 개인의 본질적 자결권을 완전히 배제하는 수단이 될 수 없음을 명확히 하였다.


나아가 재판소는 조력자살을 '영업적'으로 수행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 실질적으로는 개인의 자결적 죽음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분석하였다. 대다수의 개인이 스스로 자살을 실행할 신체적·심리적 역량을 상실한 상태에서, 제3자의 전문적이고 반복적인 조력을 금지하는 것은 자결권을 사실상 '이론상의 권리'로 전락시킨다는 논리다. 즉, 개인이 죽음을 선택할 자유를 가진다면 그 선택을 실현하기 위해 타인의 도움을 구할 자유 역시 필연적으로 수반되어야 하며, 이를 원천 봉쇄하는 형사 처벌 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어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이는 국가가 자살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는 보호 의무보다 개인이 죽음의 순간과 방식을 결정할 자율권이 헌법적 우선순위에 있음을 선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판결은 단순히 형법 제217조를 폐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결권 행사가 유효하기 위한 엄격한 '자율적 의사'의 요건을 제시하였다. 재판소는 죽음의 선택이 일시적인 충동이나 외부의 압력, 혹은 정신질환에 의한 인지 왜곡이 아닌 '자유롭고 확고한 의사'에 기반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국가는 조력자살을 원칙적으로 금지할 수는 없으나, 개인의 의사가 진정한 자율성을 갖추었는지 검증하기 위한 절차적 규제는 도입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논리는 조력자살의 규제 패러다임을 '실체적 금지'에서 '절차적 보호'로 전환시킨 것으로, 독일 정부가 2025년과 2026년에 걸쳐 상담 의무화와 숙려 기간 설정을 골자로 하는 새로운 법안을 논의하게 된 법리적 근거가 되었다.


이 판결은 조력자살을 단순한 형사 정책적 관용의 대상이 아닌 헌법상 '기본권'으로 격상시켰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스위스 형법(Swiss Criminal Code, 1942년 1월 1일 시행) 제115조가 '이기적 동기'가 없는 경우에 한해 자살 방조를 비범죄화하고 있다면,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국가가 조력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소극적 방어권은 물론, 개인이 자신의 종엄을 지키기 위해 타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적극적 권리의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이는 조력자살이 법적 진공 상태에서 민간단체의 자율적 영역으로 남아있던 스위스 방식과 달리, 독일은 국가가 기본권을 보장하는 동시에 오남용을 막기 위한 공적 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할 입법적 의무를 지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2020년 결정은 죽음을 삶의 권리로부터 분리된 단절적 사건이 아니라, 한 인간의 자율적 일생을 완성하는 최후의 인격권적 행위로 정의하였다. 이는 규제 당국에 대해 생명 보호라는 명분으로 개인의 주관적 삶의 가치 평가를 대체하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역시 이를 참고하여, 단순히 '죽음을 돕는 것'이 범죄인가라는 차원을 넘어 '어떻게 인간의 마지막 존엄을 법적으로 보호하고 절차화할 것인가'라는 입법적 과제에 답해야 할 시점에 도달해 있다. 독일의 판례는 그 과정에서 국가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와 최대한의 자율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법적 지침으로 활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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