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발적 동승과 강요된 연대보증

형제자매라는 제로섬 게임과 혈연에 귀속된 잔존 채무

by 날개

부모-자식 관계가 수직적인 ‘비자발적 초대’라면, 형제자매 관계는 한정된 공간과 자원을 공유하도록 강제된 ‘무단 동승’의 결과이다. 같은 생산자로부터 유래했다는 생물학적 우연은 이들을 실존적 연대로 묶기보다는, 오히려 서로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가장 가까운 타자로 설정한다. 법적·관습적 체계는 이 관계에 ‘우애’라는 당위적 수식어를 부여하지만, 냉소적인 관점에서 이는 자원 배분의 갈등을 봉합하기 위한 사회적 마취제에 불과하다.


형제자매는 태생적으로 부모의 제한된 자원—경제적 지원, 시간, 정서적 에너지—을 나누어 가져야 하는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의 경쟁자들이다. 양육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부모와 관리 비용을 절감하려는 사회 시스템은 이 경쟁 구도를 은폐하기 위해 ‘양보’와 ‘희생’이라는 윤리적 규범을 주입한다. 여기서 우애는 형제간의 본질적 유대에서 기인하기보다, 가정 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고안된 관리 지침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특히 성인기에 접어든 형제자매 관계는 사회가 개인에게 부과한 ‘상호 부양의 연대보증’ 체계로 변모한다. 국가는 복지의 책임을 공적 영역에서 사적 영역으로 전가하기 위해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활용하며, 형제 중 일방의 낙오를 다른 구성원이 감당하게 함으로써 시스템의 안정성을 꾀하려 한다. 이러한 구조 안에서 개인의 자율성은 ‘혈연’이라는 이름의 집단적 책임 아래 저당 잡히게 된다. 자본(재산)이라는 실질적 가치 앞에서 이 ‘윤리적 포장’은 극명한 한계를 드러내며, 상속을 둘러싼 갈등과 소송은 형제자매가 본질적으로 서로의 지분을 잠식하는 타자임을 증명하는 가장 정직한 순간으로 표출된다.


그러나 이토록 건조한 계산기 위에서도 ‘혈연’이라는 이름의 잔상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 기묘한 실체로 남는다. 과거 농경 사회에서 형제는 생존을 위한 최소 단위의 노동력이자 집단 방어의 핵심 일꾼이었다. 현대의 고도화된 개인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도구적 가치는 소멸했으나, 한국 사회 특유의 혈연 중심 사고는 여전히 강력한 비공식적 안전망으로 작동한다. 이는 합리적 계약 관계로는 설명되지 않는 일종의 ‘형이상학적 닻’이며, 국가의 공적 복지가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서로를 구제하게 만드는 최후의 보험이 되거나, 반대의 입장에서는 우발채무가 되기도 한다.


결국 인간은 독립된 주체로서의 욕망과, 유전자라는 쇠사슬이 부여한 본능적 신뢰 사이에서 끊임없이 방황한다. 혈연은 때로 개인의 삶을 옥죄는 폐쇄적 감옥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원치 않게 던져진 이 황량한 우주에서 유일하게 나를 증명해 주는 생물학적 증거이기도 하다. 사회적 가스라이팅을 객관화하고 각자가 독립된 인격체로서 서로의 타자성을 명확히 인식할 때, 비로소 우리는 강요된 굴레에서 벗어나 이 '질긴' 혈연의 끈을 관조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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