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법학 연구는 '검색'인가 '사색'인가

by 날개

요즘 법학 연구 환경은 이른바 ‘무료 조교’라 불리는 똑똑한 번역기와 AI의 등장으로 유례없는 정보기술적 호황기를 맞이하였다. 클릭 몇 번으로 미국과 EU 등 외국의 판례와 문헌을 실시간으로 검색하고 그 요지를 파악할 수 있는 ICT 환경은 연구의 물리적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과거 외국 문헌 하나를 확보하고 해석하기 위해 들여야 했던 물리적 시간은 소거되었으며, 자료의 접근성은 상향 평준화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적 진보가 연구의 질적 심화로 직결되고 있는지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오히려 정보의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맥락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파편화된 정보를 나열하는 방식의 논문들이 범람하고 있으며, 연구자들은 역설적으로 정보의 홍수 속에서 방향을 잃고 옥석을 가리기 위해 허우적대는 형국이다.


법학 논문에서 본질적인 가치는 정보의 총량이 아니라, 방대한 자료 중 보석을 찾아 핵심을 간파하고 이를 자신의 논리로 체화하는 과정에 있다. 법리라는 것은 단순히 문자의 조합이 아니라 사회적 갈등과 가치판단이 응축된 결과물이기 때문에 단편적인 읽기로는 그 맥락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따라서 연구자에게는 정보를 수집하는 속도보다 그것을 곱씹고 숙성시키는 사색과 숙고의 시간이 절실히 요구된다. 수많은 텍스트 사이에서 불필요한 노이즈를 걷어내고(걷어내고 나면 아무것도 없는 문헌들도 허다하다), 본질적인 법리적 쟁점을 추려내어 자신의 사유 체계 안에서 발효시키는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필수적이다. 이러한 인고의 과정이 어느 순간 임계점에 도달했을 때, 흩어져 있던 정보들은 비로소 하나의 견고한 논리 구조로 집약되며, 군더더기 없는 완결된 글로 분출될 수 있다. 이 순간의 지적 카타르시스는 연구자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보상이자 동력이 된다.


하나의 논문을 온전히 쏟아내어 투고한 직후의 연구자는 일종의 공동(空洞) 상태에 직면할 수 있다. 흡사 공연이 끝난 피아니스트처럼 아쉬움과 후련함이 교차하면서 극도의 긴장에서의 해방되지만 그 몰입 상태를 그리워하게 된다. 남김없이 배출했기에 다시 채우기 위한 휴지기가 필요해지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연구의 길은 단순히 글을 쓰는 행위의 연속이 아니라, 다시 무성한 정보의 숲으로 들어가 쓰레기더미 속에서 보석을 찾는 지루한 탐색하고 그것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반복하는 무한루프이다. 사색을 통해 자료를 선별하고, 숙고를 통해 논리를 숙성시키며, 다시 빈 잔을 채워가는 이 순환 구조야말로 법학 연구의 숙명이다. 결국 좋은 논문은 기술이 만들어내는 속도가 아니라, 연구자가 멈춰 서서 고민한 시간의 밀도에서 탄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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