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이기가 멈춘 한 달
평소라면 몇 초 만에 나를 원하는 높이로 손쉽게 수초만에 데려다주었을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다. 노후 승강기 교체 관련 규제와 안전 진단이라는 법적 절차는 나에게 ‘한 달간의 강제 운동’이라는 처방을 내렸다. 처음에는 당혹감이 앞섰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일상생활을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일 층층의 계단을 헉헉대며 오르내리는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기괴할 정도로 당연하게 여겨왔던 문명의 안락함 너머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계단을 한 칸씩 딛고 올라갈 때마다 내가 얼마나 높은 곳에 고립되어 살고 있었는지를 새삼스럽게 실감한다. 버튼 하나로 소거해버렸던 수직의 거리감이 종아리의 통증과 가쁜 숨으로 고스란히 치환된다. 엘리베이터라는 상자 안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중력을 거슬러 오르는 자의 자연스러운 각성이다. 너무나 자연스러웠던 문명의 이기가 멈추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내가 땅과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었는지를 깨닫는 것이다.
문득 이 모든 불편함이 자연스러워지는 지점이 찾아왔다. 반드시 엘리베이터가 있어야만 삶이 영위될 것 같았던 강박이 느슨해진 자리에는, 없어도 살 수 있겠다는 기묘한 해방감이 들어앉았다.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기술의 보조 장치들에 의존하고 살았던 것일까. 계단을 오르며 마주치는 층층의 현관문들, 그 문 너머에서 숨죽인 채 모여 사는 타인들의 존재가 전보다 더 가깝고도 생경하게 다가온다. 콘크리트를 층층이 쌓아 올리고 그 좁은 칸막이 속에 각자의 몸을 밀어 넣은 채, 서로의 발소리를 층간 소음이라 부르며 사는 우리는 도대체 무엇일까.
이 수직의 성채는 인간의 욕망이 만든 가장 기괴하고도 효율적인 군집 형태다. 우리는 더 높은 곳을 점유하는 것이 곧 더 나은 삶이라는 환상을 공유하며, 그 높이를 손쉽게 오가게 해주는 기계 장치에 영혼의 일부를 맡겨왔다. 하지만 기계가 멈춘 한 달 동안 나는 비로소 땅을 딛고 서는 법과, 내 근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높이의 한계를 느낀다. 시스템이 강요한 불편함이 오히려 잊고 있던 실존의 감각을 깨우는 역설을 마주한다.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사라진 틈새로, 우리가 쌓아 올린 이 문명의 탑이 얼마나 위태롭고도 인위적인 것인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결국 몇 주 뒤면 다시 새 엘리베이터는 매끄럽게 작동할 것이고, 나는 다시 종아리의 통증을 잊은 채 수직의 고립 속으로 빠르게 빨려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계단을 오르며 단련된 다리와 그 과정에서 마주한 층층의 풍경은 내 안에 하나의 추억으로 간직될 것이다. 문명의 가면이 벗겨진 계단실에서 내가 마주한 것은, 높은 곳을 열망하면서도 결국 중력이라는 근원적 규제를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투박한 진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