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커버리 제도의 유래와 경쟁법적 함의

상생협력법에서 K-디스커버리로의 진화와 전망

by 날개

미국 민사소송 절차의 핵심인 디스커버리 제도는 재판이 시작되기 전 당사자들이 서로 가진 증거와 정보를 강제적으로 공유하는 절차로, 그 유래는 1938년 제정된 미국 연방민사소송규칙(FRCP)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미국 사법부는 소송의 본질이 법정에서의 화려한 변론이나 기습적인 증거 제시를 통한 승패 결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매복에 의한 재판(Trial by Ambush)'을 지양하고 양측이 모든 정보를 대등하게 보유한 상태에서 공정하게 다투도록 하는 철학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배경하에 확립된 디스커버리는 관련성이 인정되는 정보라면 영업비밀이라 할지라도 원칙적으로 공개해야 한다는 강력한 강제성을 띠게 되었으며, 이는 미국 사법 제도를 전 세계에서 가장 투명하면서도 가혹한 입증 책임을 요구하는 체계로 변모시켰다.


이러한 디스커버리의 정신은 정보의 비대칭성이 극심한 경제적 영역인 경쟁법 분야로 자연스럽게 이식되었다. 카르텔이나 시장지배력 남용 행위는 기업 내부의 은밀한 공모나 전략에 의해 이루어지므로 외부의 수사기관이나 피해자가 이를 입증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이에 미국은 경쟁법 위반에 대해 3배 배상 제도를 도입함과 동시에, 광범위한 디스커버리를 통해 피고 기업의 내부 이메일, 회의록, 하드디스크 등 모든 디지털 기록을 낱낱이 파헤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이는 기업들로 하여금 어차피 모든 증거가 드러날 것이라는 공포를 심어주어 스스로 위반 사실을 고백하게 만드는 리니언시(자진신고 감면제도)의 실효성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지렛대로 작용하였다. 결국 디스커버리는 단순한 증거 확보 수단을 넘어 시장의 공정 경쟁을 감시하는 사법적 파수꾼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사법 주권을 독점하고 법관이 증거 조사를 주도하는 대륙법계 사법 체계에서 디스커버리는 매우 이질적인 제도로 간주되어 왔다. 독일, 프랑스, 한국 등 대륙법계 국가들은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기업의 영업비밀 보호를 중시하며, 민간인인 변호사가 상대방의 서류함을 강제로 뒤지는 행위를 공권력의 침해이자 남용으로 보아 극도로 경계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산업 구조가 고도화되면서 기술 탈취나 지식재산권 침해 소송에서 발생하는 '입증의 불능'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이에 따라 대륙법계 국가들은 모든 소송에 디스커버리를 전면 도입하는 대신, 특허나 공정거래 등 고도의 전문성과 정보 편중이 심한 특정 분야에 한해 제한적으로 미국식 제도를 변형하여 수용하기 시작하였다.


대한민국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2026년 1월 29일 상생협력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통해 소위 '한국형 증거개시제도(K-Discovery)'를 공식화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기존의 자유심증주의와 당사자주의를 근간으로 하던 국내 민사소송 지형을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획기적인 변화다. 특히 법원이 지정한 전문가가 피고의 영업 현장에 진입하여 설비와 디지털 자료를 실사하는 '전문가 사실조사제도'는 기업의 내부 보안 경계를 공적으로 무력화하는 조치로 평가받는다. 또한 소송 제기 가능성만으로도 자료의 멸실을 금지하는 '자료보전명령'과 이를 위반할 시 부과되는 7년 이하의 징역형 및 불이익 추정은 기업에 전례 없는 법적 대응 부하를 안겨주고 있다. 이는 과거 서면 중심의 소송 구조가 인적·물적 증거의 실시간 검증 단계로 완전히 전이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제도적 변화는 기업 경영의 패러다임 자체를 수정할 것을 요구한다. 과거에는 불리한 증거가 현출되는 것을 최대한 방어하는 것이 소송 전략의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비밀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모든 경영 활동의 기록을 투명하게 관리해야 하는 시대로 진입하였다. 미국식 데포지션을 벤치마킹한 '법정 외 당사자 신문'의 도입으로 임직원들의 일상적인 메일과 메신저 대화까지 증거의 대상이 된 만큼, 기술자료의 수취와 활용 전 과정에 대한 정밀한 로그 기록 관리와 접근 통제 시스템의 재정비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결국 K-Discovery의 도입은 우리 기업들에게 소송 기술의 연마가 아닌, 자사의 행위가 언제 어디서든 정당했음을 입증할 수 있는 '실증적 준법 거버넌스'의 확립이라는 무거운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앞으로 K-Discovery가 상생협력법을 넘어 하도급법과 특허법 전반으로 확산됨에 따라, 우리 사법 체계는 정보의 비대칭 해소를 통한 정의 구현과 기업의 영업비밀 보호라는 두 가치 사이의 치열한 접점을 찾아나갈 것이다. 기업은 강화된 사법 환경 속에서 단순히 법적 리스크를 회피하는 수준을 넘어, 데이터의 투명성과 무결성을 바탕으로 한 고도화된 기술적 인프라를 구축해야만 한다. 증거가 강제로 개시되는 시대에 진정한 방어는 증거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현출된 증거 속에서 스스로의 정당성을 증명해내는 능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는 대한민국 사법 제도가 대륙법적 전통의 틀을 깨고 실질적 평등을 향해 나아가는 거대한 전환점이자, 기업들에게는 투명 경영의 완성을 요구하는 엄중한 시대적 요구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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