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이 끝나고 난 뒤

by 날개

무대 위에서의 순간만큼 피아니스트는 무아지경에서 완벽한 자유를 경험한다. 그런데, 연주가 끝나고 막이 내리면, 박수의 잔향 속에서 그는 다시 한 사람의 고독한 인간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는, 강렬한 몰입 상태와 공연 중 분출된 도파민, 아드레날린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급격한 감소로 인해 뇌과학적으로는 일종의 '화학적 공백' 상태에 빠지게 된다. 또한, 최고조에 달했던 성취감과 공연자와 청중의 교감(연결감)이 순간 사라지면서 목적 상실감과 함께 급작스러운 우울감이 밀려오며 허무함을 느낄 수 있다. 나아가 극도의 '현존'(present) 상태에서 일상이라는 '부재'(absence)의 세계로 돌아오며, 그 대비에서 삶의 의미나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공허함에 맞닥뜨린다.


몰입 상태(flow state)에서 경험하는 강렬한 쾌감과 성취감은 도파민 보상 시스템을 강력하게 활성화시키기 때문에, 무대 후의 허무감은 이 '최고의 경험'을 다시 찾도록 만드는 중독적 메커니즘처럼 작동할 수 있다. 특히 일상이 상대적으로 무미건조하게 느껴질 때, 그 강렬한 몰입감을 갈망하며 다음 공연이나 더 큰 자극을 추구하는 '플로우 중독'(flow junkie) 경향을 보일 수 있다.


무아지경 후의 공허함은 '극도의 쾌감을 다시 얻어야 한다'는 무의식적 강박을 낳는데, 이는 다음 몰입(성공적인 공연)을 보장하기 위한 완벽주의적 연습 집착으로 표출되기도 하고, 최고의 도파민 보상을 재현하려는 욕구가 다음 공연의 실패에 대한 불안을 증폭시키기도 한다. 이는 다시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강박적이고 비자비적인 연습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만들 수 있기도 하다.


이러한 몰입 후의 급격한 감정에서 스스로를 일상에로 연착륙 시키려면, 이와 같은 감정의 변화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즉시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기보다 휴식과 자기 연민(self-compassion)을 통해 흥분했던 신경계를 천천히 이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동시에, 공연의 경험을 기록하거나 동료와 나누는 등 의미를 리마인드 하는 행위를 통해 에너지를 일상으로 점진적으로 통합해나가야 한다. 즉, 공허감을 성장의 여백이나 동기 부여로 활용하여 건설적으로 성찰하는 과정은,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는 모티브가 될 수 있다.


아무튼 궁극적으로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 피아니스트는 포기하지 않고 피아노 앞에 다시 앉는다. 그들은 완벽을 종착지가 아닌, 존재의 결핍을 인식하고 채우려는 순환 과정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끊임없는 재몰입은 자아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아를 확장하고 존재의 형태를 새기는 행위이다. 따라서, 성공적인 예술적 삶을 위해서는 이 몰입과 공허의 '냉온탕' 과정을 적절히 조절하고 통제하는 자기 배려가 핵심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삶 또한 다르지 않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연구실에서, 혹은 일상의 사소한 장면 속에서도 우리는 각자의 음악을 연주한다. 이러한 일상적 삶의 궁극적인 지혜는 '몰입'(flow)과 그 후의 '공허감'(void)을 다루는 순환의 리듬을 조절하는 데 있다. 강렬한 몰입을 통해 자아를 확장하고 성취의 정점에 도달한 후, 급격히 찾아오는 공허는 신경계의 자연스러운 반작용이자 다음 도약을 위한 필수적인 '여백'이다. 이 여백을 불안에 사로잡혀 집착 속에 매몰되지 않고, 의도적인 휴식과 자기 배려를 통해 이완시키며 다음 몰입을 준비해야만 번아웃 없이 지속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극과 극을 오가는 자기 조절이야말로 일상과 예술 모두에서 높은 경지에 오르기 위한 핵심 능력이다. 이러한 몰입과 공허의 순환을 조절하는 능력은 마치 숙련된 서퍼가 파도의 정점에서 내려와 다음 거대한 파도를 타기 위해 체력과 균형을 재정비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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