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있는 이별

by 날개

우리는 당연히 곁에 있는 누군가에 대하여는 그 사실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 존재가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을 까맣게 잊고 살아간다. 그러나, 누군가와의 이별 혹은 세상과의 이별은 언제든 불쑥 찾아올 수 있고, 언제나 그 가능성은 열려있다. 몽테뉴는 “죽음은 삶의 일부로서 매일 조금씩 우리 곁에 다가온다.”라고 말했다. 인간의 관계는 끝을 전제로 유지되는 것이며, 우리가 그 끝을 의식하는 순간 비로소 그 관계의 깊이가 드러날 수 있다. 따라서 언젠가 찾아올 이별의 순간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것은 체념이 아니라, 삶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이다.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Lev Nikolayevich Tolstoy, 1828–1910)는 “죽음과 이별은 인간의 삶을 가장 진실하게 비추는 거울”이라 말했고,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는 “삶은 부조리하되, 그 부조리를 사랑할 수 있을 때 인간은 비로소 자유롭다”라고 했다. 이별은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부조리한 사건이지만, 그 부조리 속에서도 우리는 함께했던 시간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조금씩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일본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Yoshimoto Banana, 1964–)는 “사람이 죽는다는 건 슬프지만, 누군가를 잃는다는 건 그와 함께했던 모든 기억이 내 안에 여전히 살아 있다는 뜻”이라 했다. 즉, 부재는 끝이 아니라, 기억의 또 다른 형태일 뿐이다.


한편, 이별에 대하여 우리는 예술이라는 도구를 통해,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을 시도해 볼 수 있다.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는 “나는 슬픔을 통해 별을 본다”라고 말했는데, 예컨대 그림 그리는 행위를 통해 상실을 미(美)의 형식으로 전환하여 이별이란 기억을 아름답게 다시 품을 수 있다.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브렌델'(Alfred Brendel, 1931–)은 “음악은 잃어버린 것들을 기억하는 방법”이라고 했는데, 상실을 견디기 위해 자신의 내면에서 그것을 바라보는 새로운 감정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것이 슬픔을 완전히 지워주진 못하겠지만, 슬픔을 감당할 수 있는 새로운 마음속의 질서를 재편해 줄 수 있다.


이별의 슬픔은 회피하거나 억누를수록 깊어진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sabeth Kübler-Ross, 1926–2004)는 인간이 상실을 받아들이는 다섯 단계인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을 제시했다. 이별에 직면한 우리는 여러 번에 걸친 반복되는 파동을 통하여, 조금씩 부재와 상실에 대한 감정과 생각을 재구성해나가게 된다. 위대한 시간의 흐름은 우리가 그것을 감당하도록 만들어 준다. 결국 회복이란 단순히 잊는다는 것이 아니고, 그 슬픔과 더불어 사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상실을 통한 슬픔을 통해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사랑했는지 배우게 되는 과정인 것이다.


이별을 준비한다는 것은 누군가가 언제든 떠날 수 있음을 알고도, 그 사람을 온전히 덤덤하게 사랑하는 것이다. 이별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보이지 않는 무엇'을 깨닫게 해주는 과정이며, 남겨진 자에게는 살아간다는 의미를 새롭게 새겨주는 시간이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이별하게 되겠지만, 이별에 대한 준비가 현재를 사는 우리를 조금 더 따뜻하고 성숙한 인간으로 만든다면, 그것은 결코 슬픈 일만은 아니다.


다음은, 시인 김초혜(1943-2020)의 '어머니'라는 시집에 수록된 52편의 연작시 중 하나이다.

어머니

그 굳센 사랑의 기둥이 내 마음 깊은 곳에 꽂혀 있는 것을 나는 이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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