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기만이다

마르크스 유령의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경고

by 날개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83)라고 하면 우리는 공산당 혹은 "빨갱이"를 떠올리면서, 흔히 이미 실패로 판명된 공산주의 체제의 사상적 배경을 제시한 사람 정도로 생각한다. 특히 분단국가인 우리 사회에서는 마르크스의 주저인 '자본론'은 한때 금서였을 정도로 그의 사상에 대한 깊은 거부감과 선입견이 존재해 온 것은 기정사실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철학적, 경제학적 이론을 집약한 이 책은 그의 마지막 망명지인 자유국가의 본산인 영국에서 집필되었는데, 1876년 출판과 동시에 완판 되고, 그 이후에도 전 세계적인 역작으로서 읽혀온 '경전'이다. 이 책은 단순한 이념을 넘어 자본주의의 본질을 분석한 탁월한 비판서로 평가된다.


마르크스주의 법철학은 공산주의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법과 이데올로기가 경제적 불평등과 착취를 은폐하고 정당화하는 방식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적 시각을 현대 자본주의에 제공한다. 그의 사상을 무조건 공산주의라는 틀로만 재단하는 것은 지적인 몰이해와 이념적 선입견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마르크스주의가 법과 사회, 그리고 오늘날의 극단적인 경제적 불평등 심화 현상에 던지는 시사점을 냉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제 마르크스의 사상을 Raymond Wacks 교수의 해제를 참고하여 들여다본다.


마르크스와 그의 평생의 동지(同志)이자 학문적 협력자이자 스폰서였던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95)의 이론은, 법을 경제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상부 구조의 일부로 파악한다. 그들에게 법은 경제적 토대, 즉 물질적 조건에 비해 열등한 위치에 있다. 마르크스는 '인간의 존재를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의식이 아니라, 반대로 인간의 의식을 결정하는 것은 사회적 존재이다.'라는 명제를 통해, 우리의 사고와 가치관, 법적 제도가 우리의 경제적 조건에 의해 형성된다고 역설한다. 법은 단순히 경제적 토대를 반영하는 '조잡한 유물론'의 산물이거나, 지배 계급의 의지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도구'라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논지이다.


그에 따르면, 법은 지배 계급의 이익을 '사물의 자연적 질서'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 사람들이 불평등한 현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이데올로기적 역할을 수행한다. 이탈리아 마르크스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 1891-1937)의 사상에 기반하고 프랑스 마르크스주의자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 1918-90)에 의해 정교화된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는 교육, 문화, 법과 같은 다양한 사회 제도를 통해 기득권의 지배적 가치관이 우세하도록 만들어 버린다는 것을 요체로 한다.


현대 사회의 사람들은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 속에서도 자본주의적 가치를 자연스러운 질서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처지를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에 따르면 이는 법적 평등과 기회균등이라는 형식적 외피 아래 실질적인 계급적 억압이 지속되는 구조를 정당화하는 '법률 물신주의'의 결과로 해석될 수 있다. 즉, 법은 독자적인 생명을 가진 것이 아니라 사회의 특정 조건에 의해 산출된 현상일 뿐인 것이다.


또한, 마르크스의 '인권'에 대한 비판은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개인주의와 사유재산 중심의 질서를 재고하게 한다. 그의 시각은 오늘날 당연시되는 자유와 평등의 개념이 사실은 자본주의적 이해관계를 숨긴 채 작동한다고 보는 데서 시작한다. 그는 "자유에 대한 인간의 권리의 실제적 적용은 사유재산에 대한 인간의 권리"라고 강조했는데, 이는 법이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것처럼 보장하는 자유가 결국 재산을 소유하고 교환하는 자유를 핵심적으로 보호하며, 결국엔 재산을 가진 자들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된다.


그에게 '법 앞의 평등'은 재산이 없는 이들의 경제적 불평등을 해결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물질적인 부(富)가 인간적인 가치를 지배하는 현실을 정당화하는 '형식적 속성'에 불과하다. 따라서 인권은 무한 경쟁과 능력주의가 착취를 낳는 현대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고통과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게 만들어버리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로 작용하게 된다.


특히,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생하는 노동의 소외와 '재화화'(reification)는 마르크스 이론의 유효성을 증명하는 부분이다. 마르크스는 노동자가 자신이 만든 생산물로부터 소외되고, 인간의 노동력 자체가 시장에서 교환되는 '상품'처럼 취급되어, 인간의 노동과 사회적 관계가 마치 '사물 간의 관계'처럼 보이게 되는 현상을 설명한다.


오늘날 우리의 삶이 끊임없는 소비와 경쟁에 의해 규정되고, 인간의 가치마저 재산이 얼마나 있는지 연봉이 얼마인지 어느 동네 아파트에 사는지로 측정되는 우리의 현실은 마르크스가 비판했던 물질적 세계가 인간적 요소를 압도적으로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강력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형식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나 권력을 위임받은 자가 일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선심성으로 개혁 법률을 제정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이는 국가가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발휘하는 기만행위일 뿐이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심화되는 경제적 불평등, 노동의 불안정성, 인간의 소외는 마르크스가 지적했던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모순이 여전히 그대로 살아있음을 보여준다. 법은 형식적으로는 중립적이고 자유를 보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재산과 권력을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사이의 '갈등 모델'을 유지하는 도구일 수 있음을 우리는 끊임없이 의식해야 한다. 마르크스주의의 교훈은 법적 제도의 형식적 가치(법치주의)를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실질적인 경제적 정의를 실현하고 있는지 비판적으로 감시하도록 촉구하는,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준엄한 경고로 아직 우리 곁에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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