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가 써주는 보고서

by 감성기복이

"우와 정말 잘했네요!! 제가 한 것보다 훨씬 잘했어요!!"

"아니에요.. 저기.. 사실은.. 챗 GPT 가 한 거예요.... 절대 비밀이에요..."

"............"






나는 그동안 무얼 한 것일까. 누군가는 하루종일을 쓴 것을 누군가는 1분도 안 걸리는 시간에 완성해 버렸다. 내가 바보인 것인가. 아니면 현시대를 따라가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이건 편한 일이 아니라 아주 위험한 일이다. 지금은 챗 GPT를 돌려 보고서를 뚝딱 써냈다고 박수칠지 모르지만 결국 그만큼 '나의 자리'가 위협당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열정 페이..

요즘에는 잘 쓰지 않는 단어인 것 같지만 내가 20살 때만 해도 유행했던 말이다.

열정페이는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 준다는 구실로 청년 구직자에게 낮은 보수나 무급을 강요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주로 대기업 인턴, 방송, 예체능계에서 발생하며, "경험 자체가 자산"이라는 명목으로 노동력을 착취하는 관행을 비꼬는 표현이다.

라고 AI 브리핑이 말해준다. 웃기게도 AI 시대를 비판하고자 하는데 AI를 사용하고 있는 나 자신이다. 여하튼 간 그래서 라떼는 열정페이가 당연하게 취급되곤 했다. 물론 부당한 줄은 그때도 알았지만 부당함보다는 '자산을 쌓는 경험'이라는 쪽에 무게가 더 실렸던 것 같다. 나 역시 이런 면을 보면 꼰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열정페이를 어느 정도 수긍하며 받아들이는 쪽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게 아닌 것 같다. 열정페이라는 말은 퇴화한 지 오래다. 요즘 그런 말을 꺼냈다가는 바로 신고를 당할지도 모른다. 아니 꼰대라고 손가락질을 당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과연 열정페이는 정말 나쁜 제도일까? 그렇다면 그 많은 사람들이 불합리한 줄 알면서도 그렇게도 치열하게 달려들어 일했을까? 모든 일에는 명과 암이 있다. 열정페이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그때의 열정페이를 기억하며 그래도 그때 그렇게 경험을 쌓고, 경력을 쌓을 수 있었던 게 지금 약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무엇이 맞고 틀리다고는 할 수 없다. 이는 모두 개인의 경험 영역일 뿐이니까 말이다.



기회

인생을 살면서 기회라는 것은 참 중요하다. 오죽하면 인생에서 세 번의 기회는 있다고 말할 정도로 기회라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의 전환점이 될 만큼 정말 중요한 것이다. 열정페이에 대한 내 생각을 조금 보태보고 싶다. 그전에 혼란을 방지하게 위해 해 둘 말이 있다. 절대 열정페이가 정당한 행위라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많이 된 데에는 당연히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대적 흐름에 있었단 한 현상으로 보고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나는 열정페이를 기회라는 단어로 치환하고 싶다. 나의 어렸을 때를 생각해 봐도 나는 항상 그 기회가 고픈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은 분야는 많은데 써주는 데가 없었다. 당연하다. 그래서 마음속에는 항상 적은 돈을 받아도 많은 경험을 쌓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아마 열정페이로 일했던 사람들도 대부분 이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열정이 있었다는 뜻이다.




열정을 대신해 주는 AI

요즘은 그 열정을 AI 가 대신해주고 있다. AI 가 써준 보고서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의 직장 생활에서 남는 것은 무엇일까. 직장 생활의 목적은 오직 편하게 하는 데 있는 걸까? 온갖 생각이 다 들어왔다. 무언가를 열심히 했다는 것은 개인에게 큰 자산을 남긴다. 누군가는 뿌듯한 마음 그뿐이겠냐 하지만 그게 세상을 살아가고 또 다른 일을 함에 있어 얼마나 큰 무기가 되는지는 모를 것이다. 한 가지를 잘하는 사람이 다른 아홉 가지도 잘한다. 이건 그 사람의 능력 때문보다도 그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 태도 때문에 나온 말일 것이다. 무슨 일을 하는지도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일을 어떻게 하는지이다. 작은 일을 시켜도 해내는 방법은 천자 만별이다. AI에게 맡겨도 될 만큼 의미가 없고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서라고 답하면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그 사람 인생에 그보다 더 의미 있고 자신의 시간을 써야 할 무언가가 있을 테니 말이다. 어느 순간 이런 것이 관행처럼 되어 버린 요즘이다. 그리고 나 역시 우선순위에서 밀린 일들은 AI의 도움을 받을 때가 있으니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요즘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스스로 생각한다. 내 인생에 남는 게 뭘까. 내 손으로 했다는 뿌듯함도 없고 머리에 남는 것도 없다. 그런 걸 보면 나도 어쩔 수 없는 '옛날 사람'인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그저 이런 현상들이 편하고 무작정 좋아 보이지만은 않는다. AI가 아무리 가까워져도 굳이 손잡지 말아야 할 때도 있는 것 같다.







나를 위한 직장생활

aI 보고서에 희의감을 가지는 나의 모습이 회사생활을 돈 받는 만큼만 일하고 온 힘을 쏟지 말라고 말한 그동안의 주장과 상반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오버하지 말라는 것은 주어진 일조차 최선을 다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너무 신경병적으로 매달릴 필요는 없지만 나에게 주어진 임무에 대한 책임감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건 회사를 위해서도 아니고 상사에게 혼나지 않기 위해서도 아니다. 오직 나를 위해서다. 내가 내 스스로에게 당당할 만큼의 노력은 해야한다. 일을 잘하고 못하는 것은 그 다음 문제이다. 일단은 주어진 일을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해내고 그 다음이 평가의 영역이다. 평가의 영역은 그들의 몫이고 일단 나는 열심은 다해야 한다. 그 누구도 아니는 오직 나 자신에게 떳떳하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