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

by 동틀무렵

며칠 전 신문에서 「OO그룹 차남, XX사장 비공개 결혼, 배우자는 일반인」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았다. 평소 무심코 사용하던 ‘일반인’이라는 말이 오늘따라 유독 거슬린다. 굳이 일반인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렇다면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도 따로 있다는 뜻이 되지 않는가.


흔히 재벌, 정·관계 인사, 연예인 등과 나머지 사람들을 가를 때 ‘일반인’이라는 표현을 쓴다. 과연 타당한가. 우리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사람들이 ‘일반인’이라면, 앞서 언급한 이들은 ‘특별인’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어릴 적 어른들의 대화를 떠올려 보면 집안에 공무원이 몇 명인지, 어느 관청에 있는지를 두고 집안의 격을 가르곤 했다. 조선 시대의 벼슬과 현대의 공직을 동일시하던 사농공상의 계급 인식 같은 것이, 그때까지도 무의식에 남아 있었던 셈이다. 그런 것처럼 제도적 계급은 사라졌지만, 계층의식만큼은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비슷한 예는 또 있다. 유명인의 혼사 기사에서 상대가 회사원이면, 으레 ‘평범한’이라는 수식어를 관습처럼 붙인다. 회사원은 곧 평범한 사람인가? 누군가에게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자 전문적인 영역인데, 단순히 '특권층이 아님'을 설명하기 위해 그 삶의 고유성을 '평범'이라는 단어로 뭉뚱그려버린다. 평범한 기자, 평범한 아나운서, 평범한 연예인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으면서, 왜 유독 회사원에게만 ‘평범한’이라는 설명을 붙이는가. 주부에게도 항상 ‘평범한’이라는 말이 앞에 선다. 어떤 기준에서는 누구보다 비범한 회사원이나 주부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공인’이라는 말 또한 모호하긴 마찬가지다. 본래는 공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뜻하지만, 요즘에는 단지 인지도가 높다는 이유로 무분별하게 쓰인다. 국립국어원 역시 인지도가 높다고 해서 모두를 ‘공인’이라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취지로 설명한다. 더구나 이 말은 대개 좋지 않은 상황에서 더 자주 쓰인다. 도덕적 문제나 범죄와 관련해 사과할 때 “공인으로서 죄송하다.”라는 말을 관용구처럼 반복한다. 그러나 스스로 공인이라 규정하는 순간, 그 말은 책임과 반성보다는 특권의식과 방어의 언어처럼 들리기도 한다. 잘못을 저지르고 스스로 공인이라고 말하는 것이 민망하지도 않은가?


인류는 오랫동안 계급사회를 유지해 왔다. 근대 이후 제도적 계급은 사라졌지만, 그 잔재는 여전히 우리의 언어 속에 남아 있다. 굳이 일반인, 평범한 회사원, 평범한 주부라는 표현이 왜 필요한가. 이런 표현에는 타인의 사생활을 구분하고자 하는 시선이 반영된 것인지도 모른다. 과거 장애인이 아닌 사람을 ‘정상인’이라 부르던 관행이 ‘비장애인’으로 바뀐 것처럼, 일반인이라는 말 역시 특정하지 않은 다수를 낮추는 뉘앙스를 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 관습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일반인’이라는 말을 계층을 구분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다시 생각해 보자. ‘공인’과 ‘일반인’ 같은 모호한 이분법 대신 회사원, 연예인, 운동선수처럼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명칭을 사용하는 편이 더 적절하다. ‘일반인’, ‘평범한’과 같이 일반적이고 평범한 단어가,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의 계층을 은연중에 나누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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