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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세상 Apr 05. 2024

어느 긴 하루

엄마의 자리

밤새 비린내가 요동을 쳤습니다.

하늘은 구멍 뚫린 듯 물폭탄을 쏟아내는데 나는 비늘도 부레도 없이 하늘을 유영하고 있었습니다.

코끝을 찌르던 비린내는 어느새 천지에 퍼지고 누구라도 그러했을 듯 마스크를 하고 다녔습니다.


부레가 없어서 물속에는 못 들어가요.

하늘을 날던 내가 문득 쳐다본 곳은 바다였습니다.

하늘과 바다가 하나 된 그날이었습니다.

달이 차 오르고 하늘은 바다로 내려앉고 쉴 새 없이 숨을 몰아쉬며 헉헉거렸습니다.


어릴 적에는 방학과 점심시간, 그리고 집에 가는 길이 제일 좋았습니다.

책가방을 짊어지고 빈 도시락 가방을 휘두르며 대문을 여는 순간 엄마는 늘 그곳에 앉아 밝은 미소로 반겨주었습니다.

마루 한편, 마치 엄마의 고정 자리인 것처럼, 엄마는 늘 양지바른 그곳에서 나를 반겨주었습니다.

족보가 있는 개라던 '코티'가 쥐약을 먹고 죽던 그날도 엄마는 그곳에 앉아 눈물을 훔치고 계셨습니다.

아버지와 밤새 큰소리로 싸우던 다음날에도 엄마는 그곳에 앉아 넋을 빼고 계셨습니다.

그곳은 마치 우리가 앉아서는 안될, 엄마만의 성지였습니다.


동네가 재개발로 몸살을 앓던 그때도 엄마의 자리는 변하지 않았지만, 재개발 후 아파트로 입주 후 엄마의 고정석은 10층 베란다가 되었고, 여전히 양지바른 그곳이지만 땅을 디딜 수 없는 그곳에서 엄마는 늘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그렇게 치매가 왔고,  십오 년이 되었습니다.

이젠 엄마가 삶을 포기하려 합니다.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겨 다니며 정상인도 견디기 힘들 검사만 수십여 가지를 합니다. 그래도 엄마는 눈도 뜨지 않고  마른 숨만 헉헉 토해냅니다.


세상에나 피부는 마른 비닐처럼 바스락거려 만지기라도 하면 찢어져 피가 흐릅니다.

혈관은 이미 숨어 버려 주삿바늘이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고통스러운 시간입니다.

그래도 엄마를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다시 시간이 허락한다면 엄마의 의자를 만들어 양지바른 곳에 두고 싶습니다.

엄마의 땅이었던 그곳엔 발 디딜 틈도 없이 높은 빌딩이 들어섰지만, 엄마는 지금 어쩜 엄마의 성지에서 엄마만의 행복을 찾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비 속으로 뛰어든 오후의 음계를 밟으며 햇볕은 주책없이 부르스를 추자고 달려드는데, 나는 한 줌도 안 되는 알량함으로 이제 엄마를 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 조금이라도 그 고통이 멈출 수 있다면 이렇게 놓아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또 며칠을 엄마는 고통과 싸움을 할 것 같습니다. 엄마가 승자가 되기를 바라지만, 그것이 욕심이라면 그 욕심 또한 내고 싶습니다.


특별히 잘한 것도 잘못한 것도 없었던 나의 유년시절, 나는 엄마의 자랑거리였지만, 한동안 엄마의 짐으로 살아온 내가 이제 조금 엄마를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는데, 엄마는 내게 그 시간마저 허락하지 않는가 봅니다


지천으로 아름다운 꽃송이가 날리는 이 시간, 유난히 예쁜 꽃을 좋아하던 엄마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결국 저마다의 유배지로 떠나는 우리의 성장, 남긴다는 것과 남는 것은 하나도 없고 곧 잊히겠지만..

어둠과 잠 오지 않는 밤의 뒤척임 속에서 허공으로 빗방울이 난수표처럼 떨어집니다.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지상의 어둠 속에서 빛난 별들의 아름다운 부화를.


아침부터 비가 왔으므로 나는 일상보다 더 진한 커피를 마셔야 했고 누구에게든 가 편지를 써야 했고 취하는 듯 쓰러지는 내 마음의 활자들과 무수히 쓰러지며 만나야 했습니다.

마지막 소원이 무엇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엄마의 평온이라 답하겠습니다.

지금이 시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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