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병에 효자 없다는 옛말이 진짜였습니다.
수십 년을 키워준 부모에게 자식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이만하면 된 거 같아...
뭘?
그런데 더 이상 해 줄 것도 없는 게 안타깝기만 합니다.
부모는 끝까지 희생만 하는군요.
부모의 생명줄을 가지고 자식들과 주변은 이리왈 저리왈 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선택을 강요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 목숨에 대한 선택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내 목숨에 대한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참 좋을 거란 생각을 해 봅니다. 안락사가 필요한 것일까 잠깐 고민도 해봅니다.
이젠 그만하자고 결론을 내리자니 자식으로 너무 마음이 무겁고, 계속 무의식으로 연명을 하자니 현실을 잊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아버지는 연명의료 포기각서를 미리 작성해 놓으셨지만, 역시 자식들은 일일이 사인을 해야 하는 눈물 나는 시간이 있었지요. 그래서 마음이 무겁고 아팠지만 그래도 눈물을 흘리며 한편 감사하기도 했었지요.
엄마는 건강하실 때 난 절 때 화장하지 마, 뜨거울 거 같아, 난 아프면 약 먹고 죽을 거야 긴 시간 병상에 누워있고 싶지 않아,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지만,
막상 자신의 목숨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살아있어도 산 것이 아닙니다
그저 초점 잃은 눈동자가 먼 곳을 응시할 뿐입니다.
고개를 놓으면 놓는 대로, 팔을 잡으면 잡는 대로, 고통이 있지만, 어찌할 수 없는 내 몸을 내가 컨트롤 못하는 엄마는 이젠 자식들에게조차 포기가 되어 갑니다.
그러면 안 되는데. 조금 더,, 영차영차 힘을 내라고 애써 말해도 엄마는 반응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땐 눈을 뜰 기력이 없었는데, 엄마는 눈뜨는 걸 보니 아직은 떠날 시간이 아니라고 해도 나만 그러는가 봅니다.
그런데.. 진짜 부여잡고 있는다고 뭔 의미가 있을까 싶습니다.
코로 흡입되는 식사 때문에 연결한 호스가 말썽인지 밤새 코로 피가 흘렀습니다.
그 덕에 식사 중단, 그나마 찔끔 위로 넣는 식사가 중단되고 허연 액체만 혈관을 통해 이동합니다.
그 때문에 엄마는 그나마 지르던 고통의 소리도 못하고 그저 끙끙 소리만 한두 번입니다.
이게 의미가 있는 걸까?
정답을 모르겠습니다.
어찌해야 할까요?
이럴 때 아들은 냉정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딸들은 동동거리며 울기만 할 뿐인데 아들은 어쩜 저럴까 싶을 정도로 의연히 장례절차를 진행하고 있었지요.
어차피 진행해야 하는 과정임에도 한편 서운하기도 했지만 누군가는 정신 차리고 해야 할 몫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러네요.
아들은 저럴 때 너무 냉정 해서 정나미가 떨어집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치매인 엄마를 잠시 모시고 살았던 칠순을 바라보는 큰언니도 이번에는 아버지를 보낼 때와는 다르게 냉정합니다.
오늘은 이제 마지막으로 수혈을 한번 더하기로 했습니다. 수혈을 해서 조금의 정신이라도 들면 다행이지만 이 역시 아무 효과 없이 그저 생명연장이지만 병원에서는 매출상승이겠지요.
그나마 이것도 안 해서 병원매출에 별도움을 주지 못하면 이젠 요양병원 외엔 답이 없다고 합니다.
요양병원..
난 그 요양병원이 무섭습니다.
그곳은 왜인지 한번 들어가면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곳인 거 같아 겁이 납니다.
평소 겁 많았던 엄마가 머물 곳은 아닌 것 같아 끝까지 일반병원을 고집해 보지만 이도 길게 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어젠 둘째 언니가 상복 입은 꿈을 꿨다고 합니다.
상복을 입는 건 좋은 꿈이니 엄마가 회복될 것 같아
애써 스스로를 다독여보지만, 이 역시 큰 위로는 되지 못합니다.
태어나는 것도 죽는 것도
어차피 시작과 끝을 스스로 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도
그렇더라도...
긴병에도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