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시 Oct 23. 2023

에그타르트의 원조가 수도원이라니

은퇴한 부부의 좌충우돌 배낭여행기(10화)


▲  고즈넉함과 생동감이 공존하는 제로니무스 수도원

 ⓒ 김연순




'발견기념비'와 벨렝탑을 둘러보고는 제로니무스 수도원까지 걸어서 이동했다. 오후의 뜨거운 땡볕 아래 걷고 줄 서고 하다 보니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쳐 버렸다. 줄 선지 한참만에 드디어 제로니무스 수도원에 들어섰다. 순간, 더위에 지쳐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이 일시에 날아가 버렸다. 사방을 둘러싼 흰색의 고풍스러운 수도원 건물과 초록의 잔디밭을 보는 순간 청량감과 상쾌함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진정한 쉼을 준 이곳, 돌아가신 부모님이 생각났다

청명한 파란 하늘과 햇빛에 반짝이는 초록의 잔디밭, 그리고 수도원 건물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그늘. 고즈넉하면서도 파릇파릇 생동감이 느껴진다. 그늘진 회랑에 한참 동안 앉아 중정을 바라보았다. 오랜 시간이 읽히는 수도원의 벽들과 바닥, 길게 늘어선 회랑, 작은 분수를 보고 있자니 문득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났다.


돌아가실 때까지 성가를 부르다 임종하신 아버지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두 분은 하늘에서 잘 있으시려나, 여행 중인 우리도 보고 계시겠지 생각했다. 부모님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이 시간이 내겐 쉼이고 회복이었다. 찬란한 햇빛과 서늘한 그늘이 공존하는 이 공간에 언제까지라도 머물고 싶었다.


포르투갈에서는 에그타르트를 '나타'라고 부른다. 나타는 처음 제로니무스 수도원에서 시작되었다. 수도원에서 옷을 다릴 때 계란 흰자를 사용했는데 남은 노른자로 만든 것이 나타였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을 나오면 바로 근처에 나타의 원조라는 '파스테이스 드 벨렝'이 있다. 원조 나타집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파란색 어닝이 눈에 띄게 깔끔한 이곳에도 많은 사람들이 늘어서 있다.


          

▲  파스테이스 드 벨렝의 나타(에그타르트)  

ⓒ 김연순




그런데 매장에서 먹는 사람들의 줄과 사가는 사람들의 줄, 이렇게 두 종류의 줄이 있다는 걸 줄 서서 시간이 좀 지난 후에야 알았다. 다시 매장에서 먹는 줄로 바꿔 탔다. 한참을 기다려 드디어 매장에 들어섰다. 드넓은 공간에 사람들이 그득한데 좌석은 총 250개나 된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자리에 앉았다.


남편은 나타를 두 개만 먹겠다고 한다. 나타의 원조인 곳에 와서 달랑 두 개는 너무 적은 거 아닌가? 나타 다섯 개와 에스프레소, 주스를 주문했다. 물론 나타 세 개는 내 거다. 한 입 베어무는 순간, 그야말로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다'는 그 말은 이럴 때 쓰는구나 싶었다. 대만족이었다.


그 사이에 비밀번호를 다섯 번이나 틀려서 사용 정지된 월랫 카드에서 메일이 왔다. 상황을 설명하는 이메일을 보내두었는데 답이 온 거다. 다시 조치했으니 월랫 카드 앱에서 실물카드를 활성화시키라고 한다. 안내에 따라 그대로 해보니 드디어 카드 결제가 가능해졌다. '파스테이스 드 벨렝'에서 아주 당당하게 결제하며 문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지도를 검색해 LX팩토리로 갔다. LX팩토리는 아직은 한국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곳 같다. 낡은 건물들을 리모델링해 특이하고 재미있는 공간들로 재탄생된 곳이다. 식당, 서점, 카페와 술집, 공예품 가게들이 가득 들어서 있다. 이 골목 저 골목 공간을 둘러보는 내내 서정적인 음악이 흘렀고 건물들의 벽에는 재미있는 그림들이 가득하다.


높은 천장까지 책으로 쌓인 서점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곳곳에 책 읽을 수 있는 편안한 의자들도 놓여 있다. 인쇄소를 리모델링한 서점인데 2층으로 올라가면 예전에 인쇄하던 기계가 한편에 그대로 남아 있다. 활자 인쇄를 어떻게 했는지 살펴보며 흠뻑 담겨 있을 당시 사람들의 노고가 느껴진다. 오래되어 뚫린 벽을 그대로 살린 채 나머지를 세련된 공간으로 꾸민 카페에서 사람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커다란 오크통에 술잔을 올려 두고 큰 소리로 웃고 떠들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 사람들을 보니 나도 절로 즐거워지며 가벼워진다.

            

▲  LX팩토리에 있는 서점. 예전의 인쇄소를 리모델링한 곳이다. 2층에는 예전에 쓰던 인쇄기계가 그대로 놓여 있다. 

ⓒ 김연순




LX팩토리는 남편이 적극적으로 가보자고 한 곳이다. 나는 별로 들어보지 못한 곳이었는데 남편이 찾아둔 자료를 슬쩍 훑어본 순간 "아, 여긴 꼭 가봐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서울에 살면서 쇠락한 철물 공구의 거리 '세운상가'가 도시재생을 통해 '다시 세운'으로 재탄생한 현장을 보았고, 녹슨 철공소들 가득한 문래동을 비롯한 서울 곳곳의 동네가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힙한 공간으로 변모한 상황들을 접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부작용을 어찌 극복해야 할 지에 대한 고민과 함께 대안 모색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도시재생의 현장 빌바오'를 여행하면서도 짜릿짜릿했던 거다.


LX팩토리에 뉘엿뉘엿 해가 지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많아졌고 분위기는 고조되었다. 조금 더 여유있게 둘러보고 싶었지만 이제 떠나야 했다. 파두 공연과 함께 저녁 식사를 예약해 두었기 때문이다. 시간에 맞추려고 우버를 이용했고 서둘러 '카페 루사'에 도착했다. 파두 공연과 함께 코스 요리가 유명한 곳이다. 파두 가수 4명이 차례로 나와 노래하다가 마지막에는 다 같이 등장해 열창했다.


파두 가수가 노래할 때는 식당의 손님 누구나 대화도 식사도 멈추고 공연에만 집중했다. 그게 규칙이란다. 공연도 음식도 멋졌다.


포르투갈의 전통 음악, '파두' 아시나요 

           

▲  식당에서 공연하는 파두 가수

 ⓒ 김연순




파두(fado)는 1820년대 리스보아에서 시작된 포르투갈의 전통 음악이다. 초기에는 노래와 춤으로 이루어졌으나 점차 노래 위주로 정착되었다. 초창기 파두의 가사는 구전에 의해 전달되다가 1910년 이후 파두에 대한 정기간행물들이 출판되며 대중적으로 그 의미가 확산되었다고 한다.


파두는 운명, 숙명을 뜻하는 말로 애절한 멜로디와 가난한 이들의 삶을 다루는 가사가 많다. 한국에서 여행 준비하며 파두에 대해 접했고 궁금했다. 유튜브로 찾아보고 아말리아 로드리게스라는 파두 가수의 노래를 몇 번 들었다. 마음을 파고드는 애잔함도 있고 동시에 열정적이면서 격정적인 느낌이었다.


리스보아에 파두박물관이 있으니 직접 가서 보고 싶었다. 파두박물관은 관람객이 이해하기 쉽게 파두의 탄생 배경과 정착 과정, 그리고 파두를 이어온 가수들의 노래를 직접 들을 수 있도록 동선이 짜여 있다. 악기인 기타들과 파두의 배경이 된 생활사가 그림으로도 전시되어 있다. 한 공간에 들어서니 벽면에 파두 가수들의 사진이 가득 있고 각 가수들에게는 번호가 붙어 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관람객들은 입장할 때 받은 리모컨으로 그 번호를 누르면 해당 가수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번호 저 번호 눌러 여러 가수들의 노래를 들어 보았다. 편안한 의자에 앉아서 헤드셋으로 들을 수 있는 공간도 있다.

           

▲  파두박물관 벽에 걸려 있는 파두 가수들. 리모콘으로 각각의 번호를 누르면 그 가수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 김연순




            

▲  파두박물관 내부. 파두의 배경이 되는 그림 앞에서 설명을 듣고 있는 관람객

ⓒ 김연순





박물관 한편에는 '파두의 왕'으로 불리는 아말리아 로드리게스와 그의 동생 셀레스트 로드리게스의 삶을 읽을 수 있는 특별공간이 있다. 특히 셀레스트 로드리게스는 20세기 들어 파두의 부활에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인데 무려 50년 동안 가수로 활동하다가 2018년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적절히 어두운 조명아래 고요한 그 공간에 가만히 서 있으니 그에 대한 리스본 시민들의 자부심과 존경의 마음이 얼마나 큰지 느껴진다. 리스보아(리스본은 영어식 표기, 포르투갈어로는 '리스보아'라고 부른다.)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파두박물관을 놓치지 않으면 좋겠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시아두 광장을 지나게 되었다. 1905년에 만들어진 카페 '브라질리아'가 보였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에스프레소 한 잔씩 주문했다. 바로 옆 작은 광장에서는 늦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신나는 음악에 맞춰 길거리 공연이 펼치지고 있다. 둘러싼 관객들이 하나가 되어 손뼉 치며 열광한다. 춤과 노래에는 '젬병'인 나까지도 열렬히 박수를 치게 된다.


다음날 오전 10시쯤 숙소에서 나와 28번 트램을 타러 갔다. 가는 길에 200년 된 빵집에 들르기로 했다. 남편이 구글지도를 보며 안내했다. 그동안 대체로 내가 지도를 보는 역할을 맡았는데 그날따라 지겹기도 하고 귀찮기도 했다. 게다가 지도에 집중하다 보면 거리 구경을 제대로 못한다. 이번 여행 전반의 기획과 일정은 남편이 짜고 나는 모르쇠로 일관하며 묻어가는 전략이었다. 다만 지도 보는 걸 재미있어하는 내가 현지에서의 안내 역할을 해왔던 거다.


이날은 남편이 지도를 보고 안내하기로 했고, 나는 그런 남편을 믿고 따라갔다. 그저 거리를 둘러보며 넋 놓고 다니니 마음이 편안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부작용은 곧 나타났다. 남편의 안내에 따라 푸니쿨라 타고 200년 된 빵집에 가기로 했는데 가도 가도 내릴 정류장이 안 보인다. 잘못 탄 거다. 어쩔 수 없이 언덕 어디쯤에선가 내렸다. 한참 동안을, 그것도 발목 부러진 후유증 있는 사람에게는 쥐약인 계단을 아주 오래도록 걸어 내려왔다. 남편을 향한 눈이 절로 도끼눈이 된다.


돌아 돌아 간신히 찾아온 '콘페테이라 내쇼날'은 피게이라 광장 앞에 있다. 1826년에 개장한 빵집이다. 빵 굽는 향이 가득했다. 부드럽고 바삭해 보이는 페스츄리와 아메리카노 커피를 주문했다. 200년이나 된 전통 있는 빵집에 앉아 있다는 것 자체가 감동이었다. 분위기에 흠뻑 젖은 채 빵을 집어드는 순간, 발 밑으로 비둘기들이 몰려온다. 바닥에 떨어진 빵 부스러기들을 주워 먹으려는 거다.


그런데 비둘기가 한두 마리가 아니다. 사람 반, 비둘기 반일 정도로 많다. 햇빛을 좋아해 야외 테이블을 선호하는 문화이다 보니 카페든 식당이든 발아래로는 비둘기들이 흔하다. 새들 무서워하는 나는 발을 들고 이리저리 피했다. 빵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혼미했다. 그 맛있는 빵을 대충 먹고 서둘러 일어섰다.




▲  시아두 광장에서 펼쳐지는 길거리 공연

ⓒ 김연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