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부부의 좌충우돌 배낭여행기(7화)
2023년 4월부터 42일 동안 스페인(바르셀로나, 산세바스티안, 빌바오, 마드리드, 세비야, 그라나다), 포르투갈(포루투, 리스본), 모로코(마라케시, 페스, 쉐프샤우엔, 탕헤르)의 12개 도시를 여행하며 경험한 이야기 공유합니다.
포르투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포르투갈의 뿌리라 할 수 있는 곳으로, 수도 리스본 다음으로 큰 도시다. 마드리드에서 비행기 타고 포르투에 도착했다. 스페인에서 포르투갈로 입국하는 거라 당연히 포르투 공항에서 입국 심사를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입국 수속 절차가 따로 없다. 마치 김포공항에서 제주공항 가듯이 그저 짐을 찾고 나오면 그만이었다. 얼떨떨했다. 가입국들끼리 국경 검문을 없애 자유로운 이동을 가능케 한 솅겐 조약(Schengen Agreement) 덕분이고, 대부분의 EU 국가들이 가입되어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공항에서 점심을 먹고 유심 칩을 사러 공항 이리저리 찾아 다녔다. 10일 정도 머물 예정이라 5기가짜리 용량으로 달라하고 10유로에 결제했다. 지도 검색해 공항버스를 타고 40분 정도 걸려 정류장에 내렸다. 숙소까지는 7분 정도 걸으면 도착하는데 의외의 복병을 만났다.
여행한 지 보름, 나는 뻗었다
여태까지 다녀본 편안한 도로와는 달랐다. 울퉁불퉁 그야말로 험난하기 그지없는 길이었다. 유럽의 돌 바닥, 보기엔 너무도 예쁘고 감성 돋는 길인데 걷다보니 불편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바닥이 고르지 않고 여기저기 툭툭 불거진 길을 커다란 캐리어까지 끌고 가다보니 너무도 힘들었다. 심지어 하필 오르막 길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택시를 탈 걸, 후회하며 앞장 서 걷는 남편의 뒤통수를 째려 보았다. 남편도 몰랐겠지만 누구라도 원망할 사람이 필요했다.
후덜거리는 다리 부여잡고 호텔로 들어와 체크인 하고 5층 방으로 들어왔다. 드넓은 하늘이 보이고 한켠에 높은 종탑까지 보인다. 종탑은 클레리구스 성당의 탑이다.
대충 짐을 풀고 침대에 앉았는데 몹시 피곤했다.
여행 시작한 지 보름쯤 되었다고 그동안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듯했다. 몸살이 났는지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일단 나는 쉬기로 했다. 남편은 동네 탐방을 하고 그동안 나는 잤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나니 산책에서 돌아온 남편이 백합미역국에 밥을 넣어 끓여 준다. 한국에서 준비해 간 즉석식품이다. 뜨끈한 미역국에 밥까지 먹고나니 으슬으슬 추웠던 게 좀 사그라들었다. 한숨 푹 잔 데다 뜨거운 국과 밥을 싹싹 비우고 나니 정신도 들고 힘도 났다.
▲ 아줄레주 기법으로 장식된 알마스 성당.
ⓒ 김연순
▲ 포르투 시내 야경. 마치 고흐의 그림 '카페테라스'가 연상되는 풍경.
ⓒ 김연순
원기회복 재충전하여 저녁이지만 밖으로 나갔다. 문을 나서자 눈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다. 온 세상이 파란색이다. 해가 진 하늘은 짙푸른 코발트블루 빛이고 곳곳에 파란색 아줄레주 장식의 성당과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푸른빛 가득한 골목을 돌면 또다시 푸른빛 골목이 나타난다. 광장 한켠 분수대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물을 뿜는 분수대도 새파랗고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도 파랗다. 온통 다 파란색이라니 너무도 놀라웠다. 파란색 좋아하는 내 눈에 더없이 경이롭고 아름다웠다.
▲ 포르투 대학의 파란색 분수대.ⓒ 김연순
파란색 분수대 앞에 젊은 청년들이 웃고 떠들고 있다. 가만 보니 그 중 몇몇은 한국의 대학 졸업식 때 입는 검은색 망토를 두르고 있다. 그리고는 다같이 둘러서서 장난을 치며 한 명을 들어 물에 빠뜨렸다. 큰 웃음소리가 나며 주변의 사람들도, 우리도 덩달아 같이 웃었다. 분수대 앞 광장과 건물은 포르투 대학이었다.
문도 없고 담도 없는 건물을 어찌 대학이라 생각이나 했겠나. 낯선 풍경이자 부러운 광경이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대학에 들어가면 신입생을 환영의 뜻으로 분수대 물에 빠뜨리는 게 전통이란다. 게다가 포르투 대학생들은 검은색 망토를 교복으로 입는다고 한다. 그것도 신기했다.
거리를 걷다가 아이스크림 가게가 보여 들어갔다. 안내 책자에 나온 유명한 아이스크림 집이다. 젤라또 두 개를 주문했다. 몇 가지 맛으로 주문했더니 여러 색깔의 장미꽃 모양 아이스크림이 나왔다. 한 입 베어 먹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지며 "이게 뭐야"란 말이 절로 튀어 나왔다. 내가 알던 아이스크림이 아니었다. 그리 달지 않으면서도 입 안 가득 진한 느낌으로, 왠지 모르게 건강해지는 맛이다.
포르투를 관통하며 흐르는 도루 강
▲ 상벤투역 내부. 노란색 천정과 파란색 아줄레주로 장식된 벽면
ⓒ 김연순
다음날 아침 상 벤투 기차역으로 갔다. 기차역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현재도 기차가 운행되고는 있지만 기차 타러 온 사람 보다는 내부의 벽면 장식 아줄레주를 보러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아줄레주는 세라믹 타일 장식을 말한다. 흰 바탕의 타일에 파란색 안료로 그림을 그려 구운 뒤, 다시 투명 유약을 칠하는 방식이다.
포르투갈에서 아줄레주는 주로 흰 바탕에 파란색 그림이 있는 타일인데, 초기 북아프리카에서 유입된 아줄레주는 파란색 뿐 아니라 수많은 다양한 색깔로 표현되었다고 한다.
상 벤투역 노란색 천정에는 도루(DOURO)와 미뉴(MINHO)라고 씌인 글자가 보인다. 포르투갈 북부를 흐르는 두 개의 강 이름이다. 벽면엔 파란색 아줄레주 장식의 그림들이 가득한데 포르투갈의 역사적 사건들을 담고 있다. 이 타일 작업은 1905년부터 1916년까지 11년 동안 화가 조르주 콜라수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약 2만여 개 타일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 상벤투역 내부에 장식되어 있는 아줄레주 그림. 포르투갈의 역사적 사건들을 담고 있음.
ⓒ 김연순
세밀하게 묘사된 여러 그림 중 누군가 무릎을 꿇고 있는 장면이 특히 궁금했다. 찾아보니 포르투갈 건국의 일등 공신인 에가스 모니스가 레온 왕국의 알폰소 7세 앞에 용서를 빌고 있는 모습이다. 옆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들은 그의 가족들이다.
레온 왕국에 대한 충성 맹세가 지켜지자 않자 에가스 모니스는 가족들까지 데리고 알폰소 7세를 찾아 찾아와 용서를 구했다. 이에 감동한 알폰소 7세는 이들을 모두 살려주고 포르투갈의 독립도 인정해 주었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에가스 모니스는 포르투갈 건국의 주요 인물이 되었다.
세밀하게 묘사된 타일 그림은 파란색이라도 다 같은 파란색이 아니다. 농담의 조절로 명암과 원근을 잘 살렸고 옷의 주름과 무늬 하나 그리고 등장인물의 표정까지 살아있어 마치 그 시절 그 시간으로 순간 이동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나저나 본인은 서 있으면서 왜 가족들만 무릎을 꿇게 했을까, 그건 좀 궁금하다.
▲ 도루 강변. 강변으로 사람이 산책하거나 걸터앉아 담소를 즐기고 있음.
ⓒ 김연순
포르투를 관통하며 흐르는 도루 강으로 갔다. 유람선을 타고 강 하류로 내려가 대서양이 보이는 지점을 반환점으로 다시 되돌아 왔다. 강변에 줄지어 있는 색색깔의 건물들은 생동감 있어 보인다. 강을 따라 산책하는 사람들도, 강변에 걸터앉아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도 많다.
웃고 떠들며 다이빙 하는 꼬마들도 있다. 모두 시름을 잊은 듯 평화로워 보였다. 유람선 타는 내내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영어로 안내방송이 나왔지만 못알아 들으면 또 어떠랴. 흐르는 강물처럼 나도 평화로워졌다.
▲ 루이스 다리에서 본 도루강 야경
ⓒ 김연순
해 질 무렵 도루 강의 루이스 다리에서 노을을 보았다. 시시각각 붉은색에서 보라색으로, 어둠이 깃든 검푸른색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조용히 감상했다. 불현듯 남편과 둘이 이 시간, 이 장소에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서로의 일을 존중하며 살아온 시간들이 떠오르며 한동안 찡했다. 서로 별 말 없이도 편안한 사이, 그게 진짜 좋은 관계라고 한다. 우리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