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장이 좋다.
봄에는 쑥과 냉이가 올라오고,
여름에는 참외와 복숭아가 쌓이고,
가을에는 밤과 고구마가 굴러다니고,
겨울에는 군밤과 붕어빵의 고소한향이 있다.
시장은 그렇게 사계절을 먼저 보여주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청년상회’라는 가게를 특히 좋아한다. 간판 이름처럼 건장한 젊은 청년들이 직원들이다. 셋 중 한 명은 몸에 타투가 있고, 목소리는 확성기다. 목을 많이 써서인지 흡연때문인지 걸걸하지만 쩌렁쩌렁하다. 어떤이는 검지로 한 콧구멍을 막고 다른 쪽으로 코를 탁 풀어낸다. 신기하게도 옷에는 묻히지 않는다. 대신 아무렇지 않게 바지 옆에 한번 쓱 문지른다. 누군가는 눈살을 찌푸릴 장면이겠지만, 시장에서는 흔히 지나가는 생활의 한 장면이다.
그곳은 싱싱한 청과물인데도 가격이 말도 안 되게 저렴해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
“오늘만 사과가 천 원~!”
"이거 한번 잡쏴봐~"
“엄마, 오늘은 여기서 사!”
모여드는 손님들을 모두 ‘엄마’라고 부르며 은근히 말을 놓는다. 그러면 나도 모르는 사이 ‘엄마’가 되어, 그곳에 배치된 꼬질꼬질한 파란 플라스틱 바구니를 자연스럽게 집어 들게된다.
그 청년들은 물건만 파는 사람들이 아니다.
바구니에 담긴 과일을 툭툭 치며 “엄마 이게 달아” 하고 먼저 골라주기도 하고, 계산대 위에서 굴러다니는 동전을 아무렇지 않게 손등으로 밀며 눈짓과 손짓으로 좋은 물건을 권하기도한다.
손님과 상인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그 순간, 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이 아니라 잠깐이나마 서로의 삶을 스쳐 지나가는 관계가 된다. 그래서 나는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발걸음이 느려진다.
조금 더 발걸음을 옮기다보면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무릉도원을 만난다. 바로 서서먹는 '부산오뎅'이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그곳에는 이미 사람들이 떼로 모여있다.
나는 어느새 오뎅을 한 꼬치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일회용 컵에 담긴 국물을 호호 불며 마시고 있다. 뜨거운 김이 얼굴을 스치고, 꼬치 끝에서 국물이 한 방울 얼굴에 튀어도 좋다. 그러면서 양념이 빨갛게 잘 밴 떡볶이와 뿌연 비닐을 뒤집어쓴 순대를 슬쩍 훑어보며 ‘무얼 더 먹을까, 말까’ 하는 인생 최대의 딜레마에 빠지곤 한다.
그곳에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함께 찍어 먹는 큰 간장종지가 놓여 있다. 오래 담겨 있었는지 색은 이미 간장색이 아니다. 지친 파 조각 몇 개와 깨가 둥둥 떠 있다. 간장통 옆에는 습기 가득한 화장실 두루마리 휴지가 걸려 있어, 사람들은 한 칸씩 뜯어 입을 닦는다.
우리는 아마도 보았어도 모른 척했던 장면들도 있었을 것이다. 주인과 손님이 거스름돈을 주고받다가 동전이 빠져 국물 안으로 굴러가기도 했을 것이고, 어떤 손님은 오뎅 국물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재채기를 하기도 했을 것이다. 생각할 게 너무 많고 의심도 자꾸 늘어나는 세상이다. 그나마 가장 솔직한 건 내 식욕일까.
지금 생각하면 위생이라는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풍경이다. 하지만 그때는 누구 하나 그것을 불편해하지 않았다. 그 어수선함과 불결함마저도 시장의 온기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던 시절이었다.
코로나 이후 일상이 회복된 지도 벌써 몇 해가 지났다. 하지만 그 시간을 지나며 사람들의 마음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하나씩 생겼고, 의식도 바뀌었다. 이제는 공동 간장종지 대신 뿌리는 간장병이 놓이고, 냅킨통에서는 물 묻은 손으로 잡으면 금세 녹아질 만큼 얇디얇은 종이 냅킨이 한 장씩 뽑혀 나온다.
그래도 이상하게 오뎅집 앞에는 늘 사람들이 모여 있다. 손님들과 오뎅 국물통 사이의 거리는 여전히 가깝다. 조심스러운 마음은 남아 있어도, 따뜻한 국물 앞에서는 발걸음이 멈추는 모양이다.
청년상회도, 부산오뎅도 결국 같은 이유로 사람을 붙잡아 두는 곳이다. 한쪽에서는 '엄마'라는 말로 사람을 불러 세우고, 다른 한쪽에서는 김이 오르는 국물로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시장에는 물건보다 먼저 사람의 온기가 흐른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시장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