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도 버텨야 한다는 자기학대적인 신념
나는 강박이 있다. 뭐든 잘 해내야만 한다는 집착, 힘들어도 끝까지 버텨야 한다는 자기학대적인 신념. 그런 강박이 나를 채찍질하며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웃긴 건, 그게 좋다. 성취감이라는 달콤한 보상 때문이다.
하지만 뇌는 아프다. 마음도 따라간다. 끊임없는 두통과, 이유 없는 무기력함, 잠들기 직전까지도 쉴 새 없이 휘몰아치는 생각들. 잘해야만 한다는 그 생각은 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잘 못 해도 되는 삶, 대충 살아도 괜찮은 삶, 그런 건 내 존재 이유와 어긋나는 일처럼 느껴진다. 그런 강박은 분명 나를 성장시켰지만, 동시에 조금씩 병들게 했다.
가끔은 강박이 자랑스럽기도 하다.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니까.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성취, 냉정하고 이성적인 사고방식, 철저한 자기 관리. 이 모든 것들이 나를 만든 것이다. 그래서 더 놓을 수 없다. 강박을 버린다는 건 곧 나를 버리는 일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너무 힘이 들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피로감, 모든 것을 스스로에게 기대하게 만드는 삶이 너무나도 무겁게 다가왔다. 그때 처음 정신과 약을 먹기 시작했다. 약은 효과가 있었다. 생각이 줄어들었다. 머릿속이 한결 조용해졌다.
하지만 그건 마치 내가 멍청해지는 느낌이었다. 예전엔 늘 논리로, 이성으로 판단하던 나였는데, 이제는 감정이 앞서는 순간들이 생겼다. 말이 느려졌고, 판단이 유해졌고,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 전보다 부드러워졌다. 처음엔 그게 싫었다. 이게 과연 나인가, 나는 내가 아닌 사람으로 변해가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점점 깨닫는다.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이렇게 살아간다는 걸. 나만이 병적으로 치열했고, 나만이 자신을 갈아 넣으며 하루를 보냈다. 그런 내가 이제야 조금은 숨을 쉬는 법을 배우는 것일지도 모른다. 약을 먹으면서 나는 가족들과 조금 더 웃을 수 있게 되었고, 애인과도 갈등이 줄었다. 이전의 나는 나로 인해 주변 사람들도 지치게 만들었다. 강박이 만든 나, 자랑스러운 동시에 외로웠던 그 모습은 결국 타인에게도 벽이 되었다.
요즘 나는 정말 힘들다. 아무리 노력해도 만족스럽지 않고, 아무리 성취를 해도 공허하다. 무너지는 느낌이 들고, 내가 나를 갉아먹는 소리가 머릿속에 울린다. 쉬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쉼을 죄책감으로 여기는 이 모순된 마음이, 나를 더 지치게 만든다. 강박은 때로 칭찬받지만, 그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상처와 외로움이 자리 잡고 있다. 나는 그 길 위에서 혼자 고군분투하고 있다.
누구에게도 쉽게 말할 수 없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내가 스스로의 리듬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잠시 쉬어가도 괜찮다는 사실을, 멈춘다고 해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나를 다그치지 않고, 조금은 다정하게 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
강박은 나를 만든 동시에 나를 무너뜨리는 존재다. 나는 그 강박을 사랑하고, 두려워하고, 또 매일같이 맞서고 있다. 그리고 그런 내가, 점점 더 나다워지고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