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여기서 제일 행복한 사람, 자신 있어 진짜로
나는 한동안 행복이란 걸 오해하고 있었다. 이건 무슨 고급 레스토랑 예약처럼 대단한 타이밍과 조건이 맞아야 가능한 줄 알았다. 여행을 가도, 사진을 찍어도, 무언가를 성취해도 그 순간 '행복하다'는 감정이 선명하게 찾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래, 뭐 이 정도면 나쁘지 않네" 같은 냉소가 더 익숙했다.
그런데 세상에는 라면 한 젓가락에 감탄하고, 햇볕 좋은 날 땅에 누워 ‘아, 인생 잘 살았다'는 눈빛을 짓는 사람들이 있었다. 무슨 성스러운 비법이라도 있는 걸까. 특히 한 유튜브 영상이 강렬하게 박혔다. 발 마사지를 받던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거다.
"내가 여기서 제일 행복한 사람인 거 같아, 자신 있어, 진짜로"
솔직히 좀 웃겼다. 동시에 부러웠다. 아니, 발 좀 주물렀다고 그렇게 확신 있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어? 나 같았으면 그 순간에도 '근데 이거 얼마짜리지? 잘하고 있는 거 맞나?’ 같은 생각이나 하고 있었을 텐데.
그때 문득, 내가 행복을 너무 값비싼 개념으로 만들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었다. 마치 행복이란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 야만 등장하는 귀빈 같은 존재처럼, 근데 정작 행복을 제대로 즐기는 사람들은 그것을 편의점 삼각김밥처럼 대하고 있었다. 아무 데서나, 아무 때나 꺼내 먹는 거다, 확신에 차서.
생각해 보면, 내 일상에도 그런 순간이 없었던 건 아니다. 퇴근길에 이어폰으로 듣는 익숙한 노래, 갑자기 시원하게 부 는 바람, 혹은 커피 한 잔의 온도, 단지 나는 그것들을 행복'이라는 라벨로 인식하지 않았을 뿐. 거창하지 않으니 무시한 거다.
'행복은 능력이 아니다. 그냥 허락이다. 스스로에게 지금 이거, 좋아해도 돼'라고 허락하는 순간, 그게 곧 행복이었다.
그래서 요즘은 연습 중이다. 행복을 눈치채는 법. 맛있는 걸 먹으면서 맛있다고 말하고, 좋은 순간에 '좋다'라고 느끼는 것. 말하자면 이건 철학이 아니라 생활 습관이다.
아직도 발 마사지를 받으며 "내가 제일 행복하다"라고 말할 용기는 없다.
하지만 나는 한국 최고의 애플파이를 찾으려고 돌아다닌다. 그 시간들이 요즘 내 작은 사치고, 아마 그게 내가 찾던 행복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행복은 자격이 아니라 감각이다. 그리고 감각은 연습할수록 더 잘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