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결산부터 보름정도 기간이 제일 바쁠때라 일하면서 바쁘게 보냈어요.”
“지난 주 상담 때 많이 힘들어하셨는데 마음이 좀 어떠셨나요?”
“좀 힘들었어요. 지난 주 상담때문은 아니고…….”
“주로 어떤 생각을 했나요?”
“제가 2월말에 남경에 출장을 다녀왔거든요. 이번이 남경은 세 번째 출장고, 남경말고도 출장을 다녀온 경험은 많았는데 이번 출장때는 좀 다른 생각을 많이 했어요.”
“어떤 생각을 했나요?”
“예전엔 법인에 출장을 가면 아는 사람이 한 두명, 혹은 없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번에 남경에는 아는 사람들이 더 많았어요. 같은 사업장에서 관련 부서로 부딪히며 일했던 사람도 있고 업무로 감정 상했던 사람도 있고 바로 작년까지도 같은 사무실에서 같은 업무로 같이 고민하며 같이 일했던 사람도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 사람들이 나는 알지못하는 또 다른 사회에서 열심히 살고 있었어요. 소외감 같은 것이 들었어요.
제가 이 팀에 온지 12년 정도가 되었는데, 주재원들의 임기가 보통 4년이니 주재원이 세 번 정도 바뀔 기간이었던 셈이예요. 12년 동안 저는 계속 한자리에서 비슷한 업무를 하고 있는데 이 사람들은 두 번째 주재원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고 처음인 사람도 있고. 어찌됐건 또 다른 사회에서 또 다른 경험을 쌓고 살아가고 있는 모습들이 제 모습과 대조되어서 스스로 소외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동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거기에 가보니 저만 혼자 이방인이었던 거예요.
주말에 출근을 해서 이번 달 경영회의 자료를 만드는데 그런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12년이니까 한달에 한번, 140번정도의 경영회의자료를 만들었겠구나. 내가 140번의 경영회의자료를 만드는 동안 내 주변의 사람들은 계속 바뀌었는데 그러는 사이 가만히 한자리에 있었던 내가 정작 이방인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더라고요. 그래서 일도 하기 싫고 마음이 많이 힘들었어요.”
“어렸을 적 할머니집에서 살았을 때는 어땠어요?”
“할머니가 너무 무서웠어요.”
“언니들은 어땠어요?”
“큰언니도 너무 무서웠어요. 작은 언니는 저를 잘 챙겨줬어요. 친구들 만나는 데도 데리고 다니고.”
“마음 둘 곳이 작은 언니 뿐이었겠네요. 의지할 어른이 주변에 한 명도 없었던 셈이네요.”
“네, 맞아요. 그래도 큰 불만은 없었어요. 그냥 그렇게 살아야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아빠는 성격이 어떠세요?”
“불 같은 성격인데 저는 별로 혼난 기억은 없어요. 큰언니가 많이 혼났고. 학습지 안해서 맞기도 했어요. 저는 고등학교때 여름방학 보충수업 땡땡이치고 놀다가 선생님이 과수원에서 일하시는 아빠한테 전화하는 바람에 혼난 적 있었어요. 놀다가 저녁에 집에 가보니 아빠가 와있더라고요. 그 길로 바로 과수원으로 끌려갔지요. 너는 학교다닐 자격이 없다고 하시면서 과수원에 있으라고 했어요. 방에서 계속 울었는데 3일정도 지나니 아빠가 다시 할머니집으로 데려다주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학교에 나갔어요. 그런데 아빠가 밉거나 원망스러운 감정은 전혀 없었어요. 내가 잘못해서 벌받은 거니까. 아빠한테 혼나거나 아빠가 무슨 일로 화를 낼 때 저는 한번도 그게 부당하거나 짜증난다거나 한 적 없었던 것 같아요. 아무 이유도 없이 혼내거나 화를 낸 적이 없었어요.”
“어렸을 때 부모님과 같이 살던 기억이 거의 없겠네요. 유치원때부터 할머니집에서 지냈으면?”
“그렇긴 한데, 기억이 미화되어서 그런건지 7살 이전에 부모님과 같이 살때의 기억은 전부다 좋은 기억만 있어요. 아빠가 만들어주는 썰매를 가지고 가서 동생과 얼음썰매도 타고, 낚시대 만들어주면 낚시하고 물놀이하고. 가재도 잡고. 겨울에는 7살도 안된 꼬맹이가 무서운 줄도 모르고 뒷산에 혼자 밤도 주으러 다녔어요. 살짝 겁도 나고 긴장되면서도 탐험가가 된 것 같은 그 기분을 좋아했어요.”
“그렇게 시골생활을 하다가 할머니집으로 갔을때는 많이 답답했겠어요.”
“학교 마치면 하교길에 혼자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잠자리도 잡고 그랬어요. 초등학교 1학년때 잠자리를 잡고 있는데 같은 반 남자애가 와서 같이 놀았어요. 다른 친구들이 남자애랑 논다고 놀렸던 기억도 나고요. 저는 부모님이랑 살 때도 옆집에 동갑내기 남자애가 있어서 항상 걔랑 동생이랑 놀았었거든요. 친구들이 놀려서 당황했던 기억이 나요.”
“그때도 어쩌면 이방인의 감정이었을 수 있겠네요? 부모님과 살다가 할머니집에 가서, 익숙하지 않은 도시에, 친구들의 놀림도 많이 불편했겠네요.”
“그때는 많이 불편하다는 생각보다 그냥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부모님 집에?”
“네”
“결혼하고는 어땠어요? 남편은 이상형과 잘 맞는 사람이었나요?”
“음.. 아닌것 같아요. 저는 아빠 같은 사람이 제 이상형인데. 제 눈에는 아빠가 굉장한 능력자로 보였고 사고도 열려있고 공부도 꽤 잘했던 저한테 여상을 가라고 할 정도로 실용주의거든요. 제 가치관도 좀 비슷한데, 저는 똑똑하고 뚝딱뚝딱 뭐든지 만들어내는 사람, 사고가 열린 사람이 좋아요. 남편은 아이큐는 높지만 제가 생각하는 똑똑한 사람은 아니예요. 책임감이 강해서 일을 열심히 하고 능력있어 보이긴 해요. 사고는 매우 경직된 편인 것 같고.”
“지난번에 남편이 무섭다고 했는데 어떤 부분이 무서운가요?”
“그냥 무서워요. 저한테 말할 때 그 표정과 말투가 진짜 무서워요.”
“나이차이가 얼마나 나죠?”
“한 살 차이예요. 제가 호칭을 선배라고 부르는데 실수로 야 라고 한번 했다가 혼난 적도 있고 장난치느라 귀를 잡았다가 엄청 혼난적도 있어요.”
“화를 낸다거나 싸운게 아니라 혼났다고 표현하네요? 남편인데? 그것도 한 살차이밖에 안나는데 왜 혼났다고 하는거죠?”
“혼나는 느낌이예요 진짜로. 그 무서운 표정으로. 눈빛도 정말 무섭고. 남편은 저를 싫어해요.”
“어떤 점을 특별히 싫어하는 것 같나요?”
“음..본인을 비난하는 것? 이 세상에서 본인을 비난하는 사람은 저 뿐이라고 했어요. 저 때문에 인생이 망했다고도 했고.”
“어떤 걸 비난했어요?”
“그냥 큰 건 아니고 제가 사소하게 감정이 상해있거나 어떤 부분이 섭섭하다고 이야기하면 그런 걸 비난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본인은 누구랑도 싸워본 적이 없고 아주 여리고 좋은 사람이라 저와 다툼이 생기거나 제가 무언가 불만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제가 문제가 있기때문이라고 했어요.”
“불편했겠네요. 결혼생활이.”
“네,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생각해보니 7살 때 할머니집으로 간 이후로 저는 계속 집에 가고 싶어했네요. 요즘도 지금 살고 있는 집, 제 침대에 누워서도 아 집에 가고 싶다 라고 자주 중얼거려요.”